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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에 독배를 들게 한 이정희와 당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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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에 독배를 들게 한 이정희와 당권파

[김민웅 칼럼] 통합진보당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낡은 진보의 무덤 VS 새로운 진보의 모태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는 진보정당의 역사적 대전환의 현장을 목격했다. 어제의 진보정치와 내일의 진보정치는 2012년 5월 12일로 확연히 갈라진다. 역사는 이 날을 "낡은 진보의 무덤과 새로운 진보의 모태"로 기록할 것이다.

더 이상 참담할 게 남아 있지 않다. 이로써 우리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패배주의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좌표 재설정이다. 우리는 진보정치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생각할 작정이다.

통합 진보당이 전 국민 앞에서 조롱당하고 있고, 보수 언론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맹폭을 가하고 있다. 다 자업자득이다. 물론 이러한 사태의 원인과 책임규명은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다.

잃은 것은 정당성, 얻은 것은 쪽박

그러나 여기서 확실한 것은 중앙위원회 폭력 충돌사태와 같은 상황이 뻔히 예견되는데도 무책임하게 사안해결의 방도를 악화시켜온 이정희 전 공동대표와 당권파에게 있다. 통합진보당의 일부세력은 진보정치 전체의 운명에 독이 묻은 비수를 꼽고 말았다. 결과에 대한 예측능력과 책임이 없는 정치는 누가 뭐래도 악덕이다.

우리는 진보통합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더군다나 진보정치가 보다 절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중들의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절망을 깊게 한 죄는 누가 질 것인가? 문정현 신부님이, "썩어빠진 진보정당은 없는 게 도리어 낫다"고 하신 말씀은 이 시대의 진보적 양심을 가진 이들 모두의 목소리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서 당권파가 얻은 것이 도대체 무언가? 잃은 것은 정당성과 주도권이요, 얻은 것은 쪽박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구걸도 하지 못한다.

무한책임을 외면한 당권파의 독선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에 대해 관련당사자들이 소명할 기회는 당연히 주어져야 하며, 오류가 있다면 교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백번 옳다. 잘못된 사실에 기초한 여론몰이는 정당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 기초를 먼저 바로 잡고 사태의 수순을 정하자는 논리는 잘못되지 않았다. 당권파의 항변과 논리는 이러한 점에서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첫째, 진상조사위는 조사결과에 대한 승복 시스템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작업을 벌였다. 책임져야 할 바다. 둘째, 조사 결과에 대한 항변은 정당하지만, 당의 파행을 막을 수 있는 수준과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채 대단히 거친 방식으로 사안에 접근한 당권파의 어리석음이다. 이 가운데 더 큰 책임을 묻자면, 단연코 후자다.

왜인가?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진상조사위인데 무슨 말이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놓고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당권파에게 그 주도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주도권을 스스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았다. 의도적 부정이 아니더라도 부실이 있었음은 누구나 인정했고, 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도 일부 부정이 있긴 했다고 당권파도 수긍했다.

그렇다면 이건 거듭 강조하지만 국민적 시선에서 부정으로 판단되고, 무한 책임을 져야할 사태였다. 그러니 먼저 깨끗하게 사과하고 경선과정에서 후보로 당선된 이들의 일괄사퇴로 국면을 전환하고 차분하게 사태를 관리, 정비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항변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누가 그걸 하지 말자고 했는가? 게다가 국민들의 시선이 호도되고 있다고 하면서 국민들의 눈높이를 경멸했다. 독선의 지존이다.

유아적 자폭정치의 원인은?

진상조사위의 결론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그걸 해결할 기구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구 설치가 당 전체의 파열을 가져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억울한 당원의 명예회복과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은 그걸 할 수 있는 당의 존립이 전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이들이 스스로 그 명예를 쓰레기통에 곤두박칠 치듯 버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명예회복의 기회를 자진해서 폐기하고, 자신들만의 논리로 고립을 자초했다. 대중정당의 일원으로서 국면전환을 위한 정치력이 전혀 없고, 대단히 "유아적 상태의 자폭정치(自爆政治)"를 벌이고 말았다.

이게 다 뭣 때문인가? 진보정치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 결과다. 그래서 그걸 자신의 것으로만 독점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상조사위의 결론에 대한 억울한 심정도 자리 잡고 있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일 진보정치의 운명과 미래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 개별적으로 억울하고 항변할 것이 많다 해도 먼저 구할 것은 진보정치의 국민적 위상이다. 이를 깨닫고 그대로 실천했다면 사태는 다른 경로를 밟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진보정치의 주인은 자신만이라고 여긴 독점에 대한 욕망이 오늘의 비극을 낳고 말았다.

진보정치의 주역은 역사의 대의를 함께 하는 이들인데 그걸 못한다면 자격상실이다. 중앙위에서 이들은 중앙위원과 의장의 자격을 문제 삼은 모양인데, 그런 문제를 삼을 자격조차 이미 잃어버린 것을 모르는가?
이석기, 김재연 즉각 사퇴하라

자, 결론을 내려 보자. 통합진보당의 상태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이들은 정당정치를 할 능력과 자격을 스스로 상실했다. 누가 빼앗은 것도 아니며, 누가 버리라고 한 것도 아니다. 이제 이들은 통합진보당의 중심에 설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이들의 힘에 기초한 후보와 당선자, 그리고 당직자는 모두 물러나야 한다.

특히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석기, 김재연은 이 모든 사태의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도록 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분란이 일으킨 소용돌이가 찻잔의 태풍이 아니라, 진짜 태풍이 되게 한 핵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이젠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국민적 지지의 기반을 잃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존재가치와 이유가 없다.

이들은 이후 진상조사위 재조사 결과 명예회복이 된다고 해도, 이번 사태의 정치적 해결에 무능함과 파행을 자초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권파, 진보적 역사진행에 장애물

프랑스는 좌파정권을 정부로 선택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미 진보정치의 성숙을 향해 가고 있다. 이 나라 역시 그런 역사적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 무수한 이들이 희생해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걸 자신의 독점적인 정치적 자산인 줄로 알고 통합진보당의 현실을 이렇게 망가뜨린 이들은 이런 역사적 경로의 장애물이 되었을 뿐이다.

헤겔의 논법대로 하자면, 이들은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자기도 모르게 껍데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껍데기는, 신동엽의 일갈대로 "가라!". 그건 우리에게 필요없다.

동지인줄로 알았는데, 적이 된 자들이 있다. 자신들이 스스로 택한 길이다. 정치적 인격의 파탄이며, 역사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다.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성서에는 하늘나라는 이와 같다면서, 이런 말씀이 있다. 어느 현자가 창고에서 쓸 것과 버릴 것을 가려내는 일을 한다. 그건 평소에는 잘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느 것이 쓸모가 있는지,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 그런데 우린 그걸 이번에 너무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성서 이야기 또 하나.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여자들에게 왕은 칼을 가져와 반으로 갈라 나누라고 한다. 그러자 한 여자가 기겁을 하면서, 자신은 양보할 테니 저 여자에게 주라고 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성서의 이야기와는 달리, 현실에서 다른 여자는 "그래, 그 칼을 내게 달라." 그러고는 누구도 말릴 사이 없이 아이를 반으로 쫙 갈라 피투성이의 죽은 시신을 챙겨 자기 것이라고 기고만장해 한다.

새로운 시작

끝은 시작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번 사태는 그 자체로 답을 내놓았다. 청산해야 할 "용팔이 진보"가 있는가 하면, 견고하게 지지하고 세워야 할 "미래형 진보"가 있다. 진보의 길은 어렵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하면, 이 나라의 고난 받는 백성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진보의 허망한 껍데기가 드러난 날, 우리는 그 진보의 진정한 씨알을 채우는 훈련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도리어, 다행이다.

인간 꼴부터 되지 않은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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