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우수 의원상 수상'같은 경력을 거론하지 않아도 김진애 의원의 18대 의정 활동은 발군 중의 발군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밀어붙였던 4대강 사업이 역시 특정 기업, 특정 지역 배불리기 토목 사업으로 전락하고, 환경 운동가들이 분신하는 상황에서 등원한 김 의원은 전격적으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 배치돼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4대강 최전방 공격수'가 됐다. 의정활동 내내 "주택 문제, 환경 문제 등 국토위에서 다룰 게 얼마나 많은데, 4대강 사업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푸념할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무분별한 토건 사업이다. '국가 재산 이용권'은 대표성을 상실당한 토건족들에 의해 휘둘리고, 난개발은 당장 시민들의 피해를 낳는다. 일부 복지 부동의 관료들, 부패한 관료들의 뻔뻔함과 토건족의 야비함이 결합될 때, 파이시티 비리, 4대강 사업 비리가 탄생한다. 파이시티 비리나, 4대강 사업 비리의 본질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연루' 따위가 아니다. 부패의 거미줄을 걷고 시스템을 봐야 한다. 시스템 개혁은 국회 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김진애 의원이 18대 국회 2년간 겪은 국토위의 모습, 나아가 19대 국회의 국토위 개혁, 토건 개혁 방향에 대한 그의 제언을 가감 없이 싣는다. 편집자 주
▲ 민주통합당 김진애 의원 ⓒ뉴시스 |
개혁의 첫째는 언제나 '사람'이다!
최악의 18대 국회, 2년의 짧은 의정, 4대강 사업이 온통 집어삼킨 국토해양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연재를 쓴다. 토건 세력의 탐욕으로부터 우리의 삶과 국토를 지키려면 국회 국토위부터 개혁해야 한다. 어렵다. 그러나, 또 그래서, 꼭 해야 한다. 비록 나는 19대 국회에 없지만, 눈에 불을 켜고 19대 국회를 지켜 볼 국민들의 힘을 믿는다. 사람-시스템-운영방식-가치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
최악의 18대 국회 중에서도 국토위가 최악이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4대강 사업 때문이다. 그 외에도 유독 MB정권에서 국토위를 통해 밀어붙인 논쟁거리가 많았다. 4대강사업 외에도 세종시 폐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LH공사 합병, 4대강 주변개발 친수구역특별법, 인천공항 민영화 등 국민적 이슈가 많았고, 18대 국회 막바지까지 KTX 민영화 강행추진 문제가 걸려있다. 이 외에도 뉴타운, 주택정책, 개발정책, 부동산정책, 해양정책, 공공기관 정책 등 민생에 직결되고 산업에 관련된 수많은 법안들이 국토위에 올라온다.
18대 국토위는 공룡같은 몸집에, 불건강하고 편향적인 위원회였다. 여당 몫 위원장 1인과 한나라당(새누리당) 18명, 자유선진당 2명, 민주당 9명,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1명의 구성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19대 국회는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으로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균형이 나아졌으니, 좀 더 나은 운영을 기대해볼 만하다.
연재 첫 회에는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 역시 사람이 첫째다. 사람이 일한다. 언제나 사람이 문제이고 또 사람이 해결책이다. 요점은, 제목 그대로 '개혁 성향의 의원을 국토위에 배치하라!'는 것이다.
물 좋다는 국토위, 들어가기도 힘들다!
상임위 배치는 의원들 간 전쟁이다. 이른바, 물 좋다(?)는 상임위원회는 박이 터지기 때문이다. 단순화 위험을 무릅써보자면 대체로 아래와 같다.
- 박 터지는 상임위: 국토위, 지식경제위, 교과위, 보건복지위 - 괜찮다는 상임위: 문방위, 환노위, 행정안전위, 농수산위, 정무위 - 별 인기 없는 상임위: 법사위, 기재위, 국방위, 외교통상위 - 박 터지는 특위: 예결특위 - 인기 좋은 특위: 국회운영위, 정보위원회 - 인기 적은 특위: 여성가족위, 윤리특위 특위는 근본적으로 인기가 있다. 중복 소속이 가능하거니와 수당, 언론 노출 등의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결특위는 노른자위라 불리며 경쟁이 가장 치열하고, 국회운영위와 정보위원회도 인기가 만만찮다. |
박 터지는 상임위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상임위가 국토위일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두 아시는 대로다. 법안 또는 예산을 통해 지역사업을 따낼 수 있다는 것, 지역 민원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산하기관과 관련 기관들이 많으니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건설관련 산업이 우리 산업 중 20여 %를 차지하니 접촉 면수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실리에 밝은 정치인'들을 끌어당길만 한 상임위다.
상임위 배치에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수준의 묵계가 있을 뿐이다. 첫째, 각 권역을 골고루 배정할 것(제주-경남-경북-전남-전북-충남-충북-강원-수도권-서울. 서울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낮다. 예산 따기와 연관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경쟁이 치열하니 초선이 배치되기 어렵고 다선부터 배려하는 관행이 작용한다. 셋째, 더욱이 비례대표 의원은 배치되기 어렵다. 예산이나 민원과 큰 상관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국토위에 들어가기도 무척 어려웠다. 2011년 11월 5일 뒤늦게 등원한 나는 당연히 국토위에 배치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전문가 출신 비례대표고, 4대강사업과 세종시 폐기 등 큰 이슈가 걸려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마침 야당 몫 1석이 비어있었던 차였다.
어림도 없었다. 당시 이강래 원내대표는 재보궐선거로 막 당선된 김영환 의원에게 국토위 배치를 약속했고, 김영환 의원은 공약했던 수도권전철 문제를 해결한다고 국토위 배치를 강력 요청했다 한다. 나에겐 야당 몫으로 비어있던 '외교통상위'를 권하는 것이었다. 내가 등원 연설에서 '4대강사업-세종시 폐기-뉴타운 재앙'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뜨거운 호응을 얻자, 여성의원들과 비례대표 의원들이 나서서 나를 국토위에 배치하라고 적극 요청하였으나,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용섭 의원이 나에게 국토위를 양보하고 기획재정위로 옮기고 나서야 겨우 국토위에서 일할 수 있었다. 비례대표로서 국토위에 배치된 첫 교섭단체 사례라고 한다.
"만약 내가 국토위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민주당을 어떻게 보겠는가? 일할 사람, 싸울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는다면 무슨 욕을 먹겠는가?" 나는 이런 상식적 논리로 원내 지도부를 은근히 협박(?)도 했었지만, 불행히도 상식의 논리보다 관계의 논리가 우세하게 작용하곤 한다.
▲ 18국회 국토위 최대 이슈였던 4대강 사업 공사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
원내대표의 결단이 중요하다
19대 국회의 전반기 원내대표가 뽑히는 대로 곧 상임위 구성이 될 터이다. 원내대표의 막중한 권한 중 하나가 상임위 의원 배분이다. 물론 의원 각자가 원하는 상임위를 우선순위로 요청하지만 물 좋다는 상임위에 엄청나게 몰리기 때문에 조정은 필수다. 원내대표라 해서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계파 균형, 선수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야 하지만, 원내대표의 인선은 절대적이다. 불만이 있더라도 전반-후반 배정 등 후일을 약속하거나 다른 특위 자리나 당직 배분 등에 대한 협상을 하더라도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 번복하지 않는 것이 정당 운영의 묵계적 약속이다.
원내대표는 상임위 의원 배분 권한 뿐 아니라 '상임위 위원장'과 '간사'를 지목하는 권한도 가진다. '위원장' 자리는 여당 몫, 야당 몫이 대개 정해져있고(야당 몫: 법사위, 환노위, 교과위, 지경위, 농수산위, 여성가족특위 등), 본인이 사양하지 않는 한 대개 이전에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았던 위원에 대하여 선수에 따라 배정된다.) 반면 '간사'는 다르다. 대개 재선 급이 맡고, 경우에 따라서 초선이 맡을 때도 있다. 실무 역량이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이다.
국토위에서는 통상 야당 간사가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기 때문에 '간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국토위 위원장과 예산심사소위 위원장은 여당 몫이다.) 간사는 법안심사소위와 예산심사소위에 각 당 소속 의원을 배정하는 권한을 가지는 한편, 간사협의를 통해 상임위 운영을 협상하고 상임위 의제를 정한다. 간사로서 소속 의원들을 지휘하고, 집중할 쟁점을 도출하고, 국정감사 전략과 공청회 전략을 짜는 등 핵심적인 일을 감당해야 한다. 더욱이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서 법안 심의의 차례를 정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실제 상임위에서 일하다보면, 간사의 의지와 역량과 헌신에 따라서 상임위의 내공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상임위원장이 다소 '상징적'인 역할에 무게를 두는 반면, 간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리인 것이다.
개혁 성향 의원이 국토위에 필요한 이유 3가지
물론 모든 상임위에 개혁 성향의 의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토위에 꼭 필요한 이유 세 가지를 들어보자.
첫째는, 국토위를 '그저 물 좋고, 나눠 먹는 위원회'라는 인식이 워낙 팽배하기 때문이다. 국토위가 개혁적 행보를 보였던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겠으나, 국토위가 개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국토위야 말로 개혁 성향 의원들을 배치해야 해요!"라고 내가 주장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나, 실천까지 가기란 너무 힘들다. 지역예산의 배분 등으로 여야의 이해관계, 지역의 이해관계, 여러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풀어주는 정도의 상임위로 국토위의 역할을 한정하는 경향이 농후한 것이다.
둘째는, 국토위가 다시 태어나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환경보전, 착한 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오히려 국토위에서 치열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국토균형발전, 주거안정정책, 진취적 해양정책, 방재와 국토안전정책, 건설산업의 경쟁력, 개발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 노동권과 안전 등'의 전통적 과제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현장에서 실천되어야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대통령사업 전담부서로 전락한 국토해양부와 그 거수기 이사회로 전락한 국회와 국토위이기 때문에 국토위의 개혁은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된 형국인 것이다.
셋째, 국토위의 활동에서 대충 묻혀버리고 간과되는 법안과 사업예산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눈 바르고 발 재게 움직이는 개혁의원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사회 이목이 집중된 굵직한 이슈에 대해서는 당론도 정해지며 힘이 붙기 때문에(예컨대, 4대강 사업, 보금자리 주택, LH공사 합병, 세종시 폐기, 인천공항 민영화 등) 일정한 견제가 가능한 편이다. 그런데 국토위는 크나큰 대통령 사업들만 다루는 위원회가 아니다. 곳곳에 '민영화, 과잉 개발, 특혜 개발, 환경파괴, 주거복지 퇴행, 불공정 관행 등' 관련된 이슈들이 수없이 널려있는 지뢰밭이 국토위다. 상임위 일상 차원에서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할 이슈들이 너무도 많다.
▲ 원래 '여야 화합'이 가장 잘 되기로 유명한 18대 국회 국토위는 유독 파행이 많았다. ⓒ뉴시스 |
국토위를 이렇게 구성하라!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자. 모든 국회의원들이 마음 속 깊이 이 시대의 개혁과제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실천에 매진한다면 오죽 좋을까마는, 실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모든 의원들이 개혁성과 전문성과 성실성을 갖추고 집중력, 전투력, 설득력, 협상력, 팀업 능력을 발휘하면 오죽 좋으랴마는, 실제 그렇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다.
현실에서는 '횃불을 드는 의원', '총대를 메는 의원'이 있고, '그저 따라오는 의원'이 있고, '불통 의원'도 있게 마련이다. '앞에서 명분을 외치다가 막후에서 타협하는 의원'도 있고, '자기 사업, 자기 법안 통과에만 관심 쏟는 의원'도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18대 한나라/새누리당의 의원들처럼 '청와대 앵무새 의원(대다수 친이계)'들이나 '꿀 먹은 벙어리 의원(대다수 친박계)'들만 같지 않더라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원내대표와 지도부에 꼭 요청하고 싶다. 국토위에 개혁실천 성향 의원들을 전략적으로 포석해 주기를 바란다. 맘 같아서는 국토위 소속 위원들 중 적어도 1/3 이상이 개혁실천 의원들이면 좋겠고 특히 가장 중요한 '국토위 간사'와 '법안심사소위'에 개혁실천 성향 의원들을 배치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안타깝게도 또한 현실적으로는, 국토위에 배치될 상당수 여야의원들이 이른바 '토건 세력 수호자', '민영화 신봉자' 또는 '민영화 만능주의자', '맹목적 지역 이기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수이더라도 개혁실천 성향 의원들이 '일정한 그룹'으로 역할 하는 한, 국토위의 관성을 깰 횃불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19대 국회에서 부디 국토위가 '가장 개혁적인 상임위의 하나'로 떠오르기 바라며, 개혁 실천 성향 의원들이 국토위의 빛나는 횃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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