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성연대는 "지역 주민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규범이 바로 조례"라며 "2010년 지방 선거를 준비하면서,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여성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전국의 여성 관련 조례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여성 인권·가족·저출산·보육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여성 관련 조례의 현 실태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 전국여성연대와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의 여성 관련 조례를 분석해 발표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오른쪽). ⓒ프레시안 |
'말로만' 여성 인권…16개 광역단체 중 '여성 인권' 조례 제정은 '제주도 1곳'
최근 여성·아동에 대한 잇따른 성폭력 사건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성폭력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아동·여성 보호에 관한 조례' 등 인권 관련 조례를 분석한 사하가정폭력상담소 이필숙 소장은 "여성 인권 조례가 제정·운영되는 곳은 광역·기초 단체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8개 지역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이 조례를 제정한 곳은 제주도 1곳에 불과했고, 234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도 7곳에 그쳤다.
그나마 조례를 운영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의 업무를 대부분 지역 민간 상담소에 일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는 명시하지 않는 등, '위임 조례'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필숙 소장은 "중앙 정부에 여성 폭력 문제를 다 맡겨놓고 위임 사무만 처리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 자세가 아니다"라며 "해당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게 자치단체 차원의 여성·아동 폭력에 대한 종합적인 예방 및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성부가 발표한 '2007년 전국 가정 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07년 한 해 동안 가정 폭력 발생률은 40.3퍼센트로, 부부 2.5쌍 중 1쌍이 배우자로부터 가정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해 여성부가 발표한 '2007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를 결과를 보면, 성인 여성 1000명 중 2.2명이 강간 또는 강간 미수 피해를 경험했고,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7.1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가정'?…시대착오적 가족관!
'건강 가정 지원 조례'. '농어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 조례' 등, 가족 관련 조례에 대한 분석도 있었다.
이들 조례를 분석한 울산여성회 홍경미 정책위원장은 우선 "조례 제·개정에 앞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운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가정기본법이 "가족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전통적 관점을 내포"하기 때문에, 그에 근거한 조례 역시 획일적인 가족관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성애적 혈연관계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 가족'의 범주에 놓는 전통적 가족관이, 한부모 가족·동거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부정하고 이들을 지원 대상에서 소외시킨다는 것. 홍 정책위원장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도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촌 총각 국제결혼은 '대폭 지원', 다문화 가족 지원엔 '인색'
홍경미 정책위원장은 농어촌 거주 미혼 남성의 국제결혼을 지원하는 내용의 '국제 결혼 지원 조례'에 대해서도 "이 조례만으로 농어촌의 결혼 기피와 인구 감소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신매매적 국제 결혼을 조장하고 돈으로 여성을 사올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2006년 경상남도 함양을 시작으로, 2009년 현재 총 42개 시·군에서 '국제 결혼 지원 조례'를 시행 중이다. 조례는 없으나 국제 결혼 비용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자치단체만 해도 전국 58개 기초단체와 2개 광역단체(경남, 경북)에 이른다.
홍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농촌 총각의 국제 결혼은 예산까지 지급하며 장려하지만, 정작 농촌에 정착한 국제 결혼 가정에 대해서는 지원이 미비하다"며 "'국제 결혼 지원 조례' 같은 반여성적인 조례는 폐지돼야 하며,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의 경우, 국제 결혼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미혼 남성 1인당 300만 원씩 지원을 시작해, 2006년 총 2억8000만 원, 2007년 1억5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반면, 2007년 해남 지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을 위한 정착 지원 예산은 2100만 원에 그쳤다.
아울러 홍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결혼 이민자에 대한 폭력 발생률이 무려 47.8퍼센트로, 일부 국제 결혼 가정에서 가정 폭력·학대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자치단체의 다문화 정책에 '가족'만 있고 '결혼 이주 여성'은 없는 것 같다. 이들 여성에 대한 지원과 보호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저출산 대책', 실적 위주의 단기적 대책"
전국여성연대 장수경 정책위원장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 관련 조례에 대해 "단기적이고 실적 위주의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저출산 관련 조례는 전국 16개 광역, 234개 기초단체 중 160곳(70퍼센트)에서 시행 중이다. 지원의 종류는 대부분 출산 지원금, 양육비 지원, 신생아 보험료 지원 등이 주를 이룬다.
장수경 정책위원장은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여론화되자 (조례가) 경쟁하듯 조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체계적인 지원 대책없이 오로지 지원금 중심으로 짜여 있다"며 "지원금 규모 역시 각 자치단체별로 최고 148배나 차이가 나는 등,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상반기(6월 기준) 각 지방자치단체별 출산장려금 지급 현황을 보면, 경상남도 마산시가 셋째 아이 출산 축하금으로 740만 원(출산 시 200만 원, 월 3만 원 보험 5년, 월 10만 원 보험 3년)을 지급하는 것에 반해, 부산 영도구 등은 5만 원에 불과했다.
장 정책위원장은 "형평성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전국 차원에서 출산 지원금 제도를 체계화해야 하며, 공공 보육을 강화하고 여성 친화적인 노동 환경을 만들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불이익부터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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