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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노동' 아니라 '불법고용'으로 불러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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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노동' 아니라 '불법고용'으로 불러야하는 이유"

[시민정치시평] 노동절에 다시 생각하는 '고용'노동부

조직이나 제도, 사건의 명칭은 그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본질과 동떨어진 이름을 지어 붙이게 되면 사람들은 당연히 혼란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가끔은 이런 혼란이 애초에 의도된 것일 때도 많아서 조심해야한다.

얼마 전 외국인과 한국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그 사람이 진보에서 보수까지 스펙트럼별로 어떤 당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길래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새누리당 이름이 나오자 외국인들이 다같이 웃음이 터졌다. 이름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보수정당이라면서 이름이 왜 그렇게 진보적인 뜻을 가졌냐고 하면서. 그제서야 '새로운 세상' 이런 말은 흔히 진보가 들고 다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정부에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꾼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알리려는 노력으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정체성 혼란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할까? 고용이나 노동이나 뭐가 다르다고 노동 앞에 고용을 붙였는지 궁금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보자면, 영국은 고용부이고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는 노동부이다. 누구는 고용부라고 쓰기도 하고 누구는 노동부라고 쓰기도 하는데, 우리는 왜 둘 다 갖다 붙였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느 편의 관점을 더 반영하는 행정을 펴느냐'를 전달하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원래 노동부가 주로 임금노동의 영역을 관장하기 때문에, 노동부라는 명칭에 이미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당사자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름이 지어진 듯하고, 노동을 시키는 사람은 명칭에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직하다. 또한 '고용' 즉, '일자리를 창출'이 노동부의 주요 업무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고용'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노동부는 스스로를 약칭으로 '고용부'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용을 창출하는 일은 정부부처로 보면 산업정책과 관련된 일이지 노동부가 어찌해 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아니다. 한편 일자리와 개인을 연결해 주는 역할,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일자리의 질을 관리하는 역할은 분명히 가장 중요하고도 일차적인 노동부의 책임이다. 이 역할은 노동부라는 명칭에 충분히 담겨있다. 고용이라는 단어를 앞에 갖다 붙인 것은 좋게 평가해도 기계적인 형평을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백번을 양보해도, 약칭으로 부를 때는 보다 핵심적인 기능인 노동부로 부르는 것이 맞다. (아니면 고노부라고 부르던지...) 다시 강조하건대, 노동부의 일차적인 역할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여 나쁜 일자리, 불법적인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정확한 명칭을 붙이는 일은 때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름이 우리의 판단을 이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이번 정부에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꾼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알리려는 노력으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정체성 혼란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할까? ⓒ프레시안(김봉규)
어떤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고용해 놓고 신고하지 않거나 축소하여 신고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비공식 노동'이라고 부른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도 그냥 '저임금 노동' 또는 '최저임금 미만 노동'이라고만 부른다. 학원강사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하여 학원에 속한 임금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경우를 비롯해서, 자기 회사 사람을 자영업자로 둔갑시켜놓은 상태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전형적으로 불리는 명칭도 없다. (물론 특정한 고용형태에 대해서 '특수고용'이라는 명칭을 붙여 면죄부를 준 바는 있다.) 자기회사 일을 시키고 지휘명령도 하면서 남의 회사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이라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한데 묶어 정확하게 명칭을 부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불법고용'이다. 명확하게 법 위반인 것을 놓고 비공식이니 뭐니 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유럽에서는 정부의 위원회에 '불법고용근절위원회(프랑스)'가 있고, '불법고용과의 투쟁 백서(독일)'를 펴내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미신고 일자리, 최저임금 미준수, 근로자를 자영업자로 등록하는 경우, 불법파견, 그리고 외국인노동자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모두 합하여 '불법고용'이라는 범주로 정의하고 이를 근절하겠다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법을 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는 분명한 의사표시가 된다. 반대로 지금 우리처럼 명백하게 법을 어기면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도 그저 '비공식노동'이라 부르며 두둔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불법적인 일자리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의사표시가 된다.

'불법'이라는 용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고용'이라고 쓰느냐 '노동'이라고 쓰느냐하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불법노동근절이라고 하지 않고 불법고용근절이라고 하는 것은 '고용'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비공식으로 일하는 것이 노동자의 책임인가?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것이 노동자의 책임인가? 사내하청 노동자로 들어가서 원청이 시키는 대로 일 하는 것이 어디 노동자의 잘못인가? 불법노동이라고 하면 이런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없어져야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되므로 이건 잘못이다. 이들을 합법적인 형태의 고용으로 전환하라는 것이 메시지이므로 불법고용이라고 불러야 맞는 것이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질이 낮다는 사실은 흔히 지적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첫걸음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데서 시작된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일자리의 고용주들이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인지하고나면, 묻게 된다. "노동부는 뭐 하고 있나?" 노동자를 보호하고 불법적인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게 해야 할 임무를 맡은 정부부처가 노동부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먼저 사건이나 현상을 부르는 명칭이 본질을 명확하게 드러내야한다. 불법고용은 근절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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