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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다"

[시민정치시평] 금융민주화의 최대의 적은 거대 금융권력

금융민주화는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금융민주화 논의는 경제민주화에 한참 뒤쳐져 있다. 재벌개혁이 핵심인 경제민주화 논의의 연장선에서 재벌소유 비은행 금융계열사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금융산업의 중심축인 은행산업에 대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재확인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경제적 권력의 집중과 권력관계의 비대칭에 대한 경제민주화의 문제제기를 금융영역으로 확장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개혁 이후 국내 은행산업은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금융민주화를 거론하려면 우선 금융시장에서 가장 막강한 시장권력으로 등장한 은행산업을 그냥 지나쳐 갈 수 없다. 소수의 대형은행이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지주회사의 지붕 아래에서 대마불사의 안전판에 기대어 "땅 짚고 헤어치기"가 가능한 과점시장이 국내 은행산업의 현주소이다. 최고의 이익집단으로 꼽히는 금융감독당국이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이익공동체를 이루어 금융권의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은행지주회사의 특권적 과점권력을 키워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부끄러운 낙인을 떨쳐내지 못했다. 가장 가깝게는 10조원을 훌쩍 넘긴 은행권의 순익에도 불구하고 2008년 말 제2의 외환위기 공포를 불러온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 또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부동산시장 몰락과 가계부채 시한폭탄 공포의 한복판에 은행이 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에 은행산업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사전소유규제 덕분에 재벌의 손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유일한 산업부문인데다가 관치로 맺어진 재벌과 은행의 유착관계는 끊어진지 오래된 탓에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또 정치권의 민생 챙기기 말잔치에서도 국내 대형시중은행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형시중은행은 금융 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서민층과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출은 재산, 소득, 직업에 따라 결정되는 신용등급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 여신시장은 대출자의 신용등급에 따라 서열화된 3단계 위계질서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영업 전략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소수의 대형시중은행이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전략은 고신용등급의 VIP, VVIP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신용에서 신용등급 상위 1-3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6월 말 현재 71.3%이며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5.2%에 불과하다. 즉 이미 주택을 소유한 고소득계층은 손쉽게 은행 빚을 얻어 제2, 제3의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다른 재테크 기회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저금리와 수수료 면제 등 온갖 혜택이 제공된다.

반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시중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기이한 이름의 온갖 재테크용 파생상품과 변액연금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상품 판매는 대출 중심의 전통적 은행업의 대안으로 시중은행이 사활을 걸고 있는 수익창출 전략이다. 시중은행은 타 금융권보다 훨씬 우월한 지점망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각종 투자상품의 위탁판매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 전국을 휩쓸었던 펀드 광풍에서 이미 입증되었듯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투자상품의 대중화에 은행창구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투자상품의 손실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다. 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로 금리위험을 모두 대출자에게 떠넘겼듯이 투자상품 위탁판매는 시중은행에게 파는 만큼 수수료 수익을 보장하는 무위험의 돈벌이다. 오늘의 은행은 과거의 은행이 아니다.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형태로 존재하는 시중은행은 자산이 많거나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사람들, 신용위험이 낮은 기업들을 위한 종합금융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했다.

시중은행의 뒤를 이어 위계질서의 중간단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소위 서민금융기관과 제2금융권의 여신전문업체이다. 그 명칭에 걸맞게 서민층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 대가로 신용등급에 따라 10-40%의 고금리를 요구한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으나 주로 신용등급 4-6등급의 중위계층이 주요이용자층이다.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비중은 캐피탈사와 신용협동기구가 각각 26.2%와 26.4%로 비슷한 수준이며 저축은행이 58%로 제도권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여신시장 위계질서의 가장 밑바닥에는 악명 높은 대부업체가 포진해있다. 신용불량자를 포함해 신용등급 하위 7-10등급의 최저층에게 묻지마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 살인적인 금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대부업체 이용자와 대출금 규모가 말해주듯이 대부업체는 국내 여신시장을 떠받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중은행이 고소득자와 고신용등급자를 위한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면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는 서민층의 생계자금 조달과 한계채무자들의 빚 돌려막기 수요를 전담하며 한편에서는 상부상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대부업체의 자금조달에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이다. 시중은행의 대출에서 다중채무 비중은 33.3%로 타 업권과의 연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고 중산층의 신용카드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와는 달리 제2금융권 대출금액의 70%이상이 타 업권과 중복되고 있고, 대부업체의 경우 그 비중이 82%에 이르고 있다. 빚이 더 큰 빚을 부르는 서민층의 빚 돌려막기가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동시에 살찌우고 동반부실 위험도 같이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를 중심으로 금융권에 빚을 지고 있는 개인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총 1700만 명의 개인채무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13만 명이 '신용 주의' 혹은 '신용 위험' 상태에 처해 있고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공식통계에서만 250만 명에 달한다. 이명박정부의 서민금융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빚 돌려막기를 권장하며 서민층을 더 깊은 부채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서민가계부채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채무조정, 개인회생, 개인파산제도를 과감히 개혁해 부채의 늪에서 서민층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치권은 시장소득의 양극화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대신 부동산이나 주식 등 금융시장의 재테크를 통해 자산소득을 불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왔다. 비록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전략,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명박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은 모두 정부가 앞장서서 불로소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자산증식정책을 부족한 임금소득을 보완하고 불안한 노후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한 것이다. 불로소득 권장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시중은행이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보험상품과 펀드상품, 최근에는 각종 파생상품까지 이르기까지 온갖 재테크 상품을 팔아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시중은행권에 발을 들이기 어려운 저소득계층이나 영세상공인은 금융소외 계층으로 전락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를 감당하며 빚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소득과 직업에 따른 "신분사회"적 차별이 구조화되어 있는 국내 여신시장이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깊은 골은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피해자보상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한판승부를 벌였던 금융감독당국이 여론을 의식한 선거철 군기잡기에 나섰다. 은행이용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내고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상승의 "합리성"을 점검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금리정책을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그로 인한 관치논란의 후폭풍을 어떻게 피해 가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권의 신경전에서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을까? 올해부터 내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46%의 거치기간이 끝나고 만기가 돌아온다. 시중은행이 만기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정부소유 은행의 팔을 뒤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마음에 드는 금리와 대출정책을 민간소유 은행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한다고 은행이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자본확충과 배당자제 요구도 아랑곳하지 않는 국내 은행지주회사는 이제 정부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력한 관치기관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도, 법도, 고객도 가벼이 여기는 철저한 이익추구집단이 되었다. 은행권과 일심이체의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의 압승에 고무되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KB지주의 연내 합병설이 나돌며 금융권이 술렁인다. 금융감독당국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공룡급 은행의 꿈을 이명박정부 임기 내에 이루겠다고 한다. 이미 현재의 규모로도 대마불사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자산 1위와 4위의 은행지주회사를 통째로 인수 합병시켜 국내총생산의 50%가 넘는 자산규모를 갖는 초대형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은행지주회사의 초라한 규모 때문에 2008년 말 또다시 외환위기의 철퇴를 맞은 것도 아니고 초대형 금융지주회사의 등장이 서민층이 겪고 있는 금융소외의 차별과 고통을 해결해 줄 리도 만무하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된 개념정의는 없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경제적 권력의 불평등한 배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경제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고통 자체보다는 그것의 뿌리인 경제적 권력관계의 불평등을 겨냥하고 있다. 그 핵심은 자본주의적 기업형태가 체현하고 있는 자본권력에 대한 통제이고, 사회전체의 이익과 자본권력의 사적 이익 사이에 균형을 세우는 문제이다. 재벌의 경쟁력이 한국경제의 경쟁력이라는 등식이 경제민주화 요구를 짓밟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면, 금융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금융산업 후진성 탈피라는 명분이었다. 금융후진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버금가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금융발전을 동일시하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재벌기업 못지않은 막강한 시장권력을 행사하는 은행지주회사 4대 천황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대중정부에서 시작해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15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왔던 금융정책의 산물이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내 금융민주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가 키워놓은 대마불사 은행지주회사이다. 정부도, 금융감독당국도 통제하기 어려운 그 존재 자체가 사회전체 이익과 대립한다. 2002년 이후 부동산담보대출과 가계신용의 급팽창은 대형 시중은행에게 조 단위의 순익을 가져다 준 일등공신이었다. 은행의 수익률 고공행진 속에 재앙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것이다.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정책 이후 은행권의 수익전략은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와 예대마진 올리기로 방향이 바뀌었다. 힘없는 소비자를 이용해 과점이윤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금융민주화는 사회전체를 볼모로 잡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거대 금융권력에 대한 통제에서 출발해 사회전체 이익에 복무하는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금융정책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금융양극화를 심화하는 더 이상의 권력집중을 막아야 하고 기존 과점권력의 확장도 억제해야 한다. 당장의 수익에 목을 매는 금융재벌은 금융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한 금융생태계도 다양성의 보전이 생명이다. 금융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위해 현존하는 민간소유 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 이외에 이윤추구가 일차적 목적이 아닌 비영리적 성격의 사회적 소유 은행이 자라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소유의 거대 금융재벌에게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소유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예금자의 저축이 있어야 은행의 돈벌이가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주주 이익이 예금자 이익보다 늘 우선된다.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관치금융기관이 국민을 위한 금융회사가 될 수도 없다. 사회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금융회사는 수익의 원천인 예금자와 대출자를 위한 소유지배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대 금융권력을 제대로 통제해 준다면 시민의 힘으로 만든 시민을 위한 금융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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