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자임했듯이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서 탄생한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실시된 지난 6.13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어 문재인 정부에게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준 바 있다. 하지만 집권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촛불 혁명의 위임(mandate)을 받은 문재인 정부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촛불 혁명이 부여한 위임의 성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서 촛불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시각에서 볼 때 촛불혁명은 유월항쟁을 정치적으로 완성하였다는 의미를 가진다. 유월항쟁을 통해서 한국은 민주화로 이행했지만 민주화는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절반의 민주화였다. 정치권력의 교체에 성공하지 못한 한국의 민주화는 이후 삼당합당으로 이어졌다. 촛불 대선에서 국민에 힘의 의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유월항쟁은 정치적으로 완성되었으며 한국 민주주의는 한 순환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촛불 혁명은 공적으로 위임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민주화 이후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불공정성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촛불 시위는 원래 민중 총궐기로 시작되었고 생존권을 위해서 시위에 참여했던 백남기 농민이 공권력에 의해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700여만개의 촛불이 불가능해보이던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내고 정권교체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촛불 혁명이 제도적인 해법의 경로를 이탈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물론 이는 촛불 혁명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 80%를 넘나들었던 취임 1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자신의 SNS에 남긴 글에서 자신의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국민들이 정권교체 뿐만 아니라 사는 것이 나아졌다라는 말을 꼭 듣고 싶다고 남겼다. 시민들이 지난 1년 동안 문재인 정부에 예외적인 높은 지지를 보냈던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명령을 정책으로 실현하여 시민들의 삶을 바꾸어 내라는 기대와 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원리로 자리 잡은 재벌중심의 경제성장우선주의를 사람중심의 경제 원리로 바꿀 것을 약속하고 구체적인 경제정책으로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총량적 의미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측정할 대안 지표를 마련할 것을 경제팀에 주문하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던 박정희 식 총량적 의미의 성장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되었던 박정희식 더 많은 성장 정책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낮은 행복지수 등 많은 지표를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는 무조건적인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어떤 성장이냐 와 무엇을 위한 성장일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방향 전환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문재인 정부가 처한 제도적인 제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위임과 국회선진화법의 제약 속에서 제20대 총선 결과가 부여하는 위임사이의 충돌의 가능성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사건사적으로 볼 때는 한 언론사의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 보도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몰락의 서곡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과반의석 나아가서는 개헌 의석까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많은 전문가와 언론의 전망과는 달리 새누리당은 대패했다. 이른바 진박공천이 상징하는 집권당의 오만에 대해서 국민들이 심판한 것이다.
제20 총선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야권이 제1당과 과반 의석을 얻은 선거였다(더불어 민주당 123석+국민의 당 38석+정의당 6석). 하지만 이후 이른바 촛불 대선이라고 불리는 제19대 대선을 통해서 집권에 성공한 더불어 민주당은 여전히 과반수 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의석을 가진 소수당 정부이다. 더구나 국회선진화법의 제약 하에서는 전체 의석의 3분의 2인 180석을 확보하는 개혁입법연대 없이는 개혁과제를 입법화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여받은 촛불의 위임의 무게와 문재인 정부가 처한 제도적 제약 사이의 길항관계는 집권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간극은 정치의 공간을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스마르크가 이야기한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언명은 정치의 본질을 잘 드러낸 말이다.
여기서 가능성의 예술로서 정치는 여야간 답함에 기반을 둔 정치적 거래를 말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명하다. 두루 알듯이 개혁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한편으로는 구질서의 주체로서 기득권을 가진 거부권 행사자들의 반발과 저항을 넘어서야 하며 다른 면에서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국민적 지지를 동원해 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직면하고 제도적 장벽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지난 6.13 지방 선거를 통해서 국민들이 보수 정당에 가한 정치적 심판은 개혁 과제의 실현을 위한 정치의 공간이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시급한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를 통해서 제시된 개혁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회를 통한 실행 가능한 제도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기반을 두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간 갈등을 조정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능력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부가 가장 취약했던 영역이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에서도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사회갈등이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면에서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지난 1년간의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치는 아쉬움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 중에서 91개 과제, 487개 실천과제 중에서 321개가 법률개정을 통해서 달성이 가능하다(국정기획자문회의). 하지만, 실제로 지난 1년여 동안 이루어진 개혁입법의 실적은 매우 초라하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정책인 소득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저소득층 일자리·소득지원 대책')이 7월 18일 발표되었지만 근로장려금과 기초연금 확대등 핵심정책은 국회입법 없이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다시 정치의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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