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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백혈병 참사, 역사로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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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백혈병 참사, 역사로 남기자

[안종주의 안전사회] 미래 세대와 소통하는 장치 마련해야

끝없는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던 삼성전자 백혈병 참사를 둘러싼 갈등이 이제는 정말 끝나는가?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중재방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힌 뒤 하루만인 24일 양쪽이 이에 서명했다. 살인더위 속에 폭포수의 물줄기를 맞는 듯한 청량감이 몰려왔다.

삼성전자 백혈병 직업병 참사는 또 하나의 직업병 사건이 결코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직업병 사건을 뛰어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30년 전 7월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숨진 열다섯 문송면 군과 1000명 가까운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환자를 양산한 원진레이온 참사를 잇는, 산업보건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앞으로 적어도 100년 동안은 우리 사회가 잊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일부 언론은 삼성전자 백혈병 직업병 참사와 관련한 갈등 해결의 배경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 또는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판결을 얻고 싶어 전격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사회 각계의 노력이 줄기차게 청와대에 전달돼 이것이 다시 이재용 부회장 쪽에 전달돼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

살인더위와 극한 한파도 견뎌낸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

하지만 이런 것은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지난 12년간 생계도 내팽개치고 가시밭길을 걸어온 삼성전자 백혈병의 상징인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비롯해 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산물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1000일하고도 20여 일을 더 삼성전자 사옥 앞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여왔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 살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농성장을 지켰다. 차가운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겨울도 결코 이들의 투쟁 의지를 꺾지 못했다, 마구 쏟아지는 집중호우도 천막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데 실패했다. 화려한 벚꽃과 온갖 아름다운 꽃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봄날에도, 만산홍엽으로 전국의 산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그들은 이를 즐기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과 행복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이제 그 고난의 행군은 끝났다. 고난 행군의 끝이 행복 행진의 시작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가족들이 중재위가 제시할 내용에 무조건 합의하기로 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80명이 넘는 피해자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대다수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돈으로 때우려던 삼성, 마침내 항복 선언

이 모든 것은 돈으로 해결하거나 치유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간 돈으로 참사와 갈등을 해결하려한 삼성전자의 일그러진 행태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리하여 삼성은 물론이고 기업들이 산재·직업병 예방에 힘을 쏟지 않고 재해가 일어난 뒤 돈으로 때우려하는 작태를 벌이려는 마음을 더는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삼성백혈병 사태는 새로운 막을 열고 새롭게 기록해야 한다. 삼성백혈병 참사에 두 눈 질끈 감고 있었던 일부 시민과 언론, 정치인, 전문가들은 양심을 소환해 성찰해야 한다. 특히 삼성 백혈병과 관련해 삼성의 광고 때문에 침묵하거나 왜곡보도를 해온 언론은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지면과 방송을 통해 자기고백을 해야 한다. 언론사 차원이면 더욱 좋고 적어도 그런 언론인이 곳곳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는 삼성백혈병 참사의 2막을 열기 전에 2막에서는 국민이라는 관객 앞에서 무엇을 보여줄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2막에서 보여줄 내용에는 삼성 백혈병의 어제에 대한 역사, 즉 백서를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담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백서 발간, 추모기념재단 설립해 영원한 교훈으로 남겨야

왜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막을 수는 없었는지, 11년 전 최초의 피해자 황유미가 물위로 떠오르고 잇달아 다른 피해자들도 나왔음에도 왜 삼성은 침묵했는지, 이런 엄청난 참상이 벌어졌음에도 대다수 주요 언론은 왜 이를 외면했는지, 결국 수원의 한 자그마한 지역매체가 이를 처음으로 알리게 됐는지도 말해야 한다.

사실 삼성 백혈병 참사 정도의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이루어졌어야 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를 낸 비극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다. 그래서 백서라도 남겨 그 백서에 참사의 진상과 교훈을 담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황유미를 비롯한, 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 땅의 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한 맺힌 것을 풀어줄 추모기념재단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 가족들과 삼성백혈병 투쟁에 동참해온 각계 양심적 인사 등이 함께해 이 기념재단을 매개로 해 백서 출간과 산재·직업병 추모대회, 학술대회, 삼성백혈병인권상(가칭) 등을 개최하거나 만들어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삼성백혈병 직업병 참사를 너무나 소홀하게 다루고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이런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조정위가 이를 잊지 않고 챙겨 오는 9월 조정안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아니 조정위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해주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내년부터는 미안함을 덜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2막의 공연을 보자. 그리하여 공연이 끝난 뒤 밀려오는 그 감동을 널리 방방곡곡에 퍼트릴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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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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