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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스포츠가 아니고, 유권자는 관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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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스포츠가 아니고, 유권자는 관객이 아니다

[시민정치시평] 야권에 진정성 회복을 호소한다

바야흐로 벚꽃과 야구의 계절이다. 진해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난 주부터는 프로야구가 개막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슈는 총선이었다. 여야의 접전과 대치구도는 9회 말의 야구경기보다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벚꽃과 야구를 제칠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는 하루 만에 차게 식었고, 4월은 어느새 야당에, 그리고 한국 정치의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잔인한 달이 되어 있었다.

이번 선거 역시 관건은 '투표율'이었다. 여기저기서 투표를 독려하는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유명 인사들은 저마다 투표율이 70% 이상이면 '삭발을 하겠다,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 미니스커트 입고 춤을 추겠다는' 등 이색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SNS에 투표 인증샷 올리기는 이제 젊은 유권자 층의 선거 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홍대 앞에서는 투표 인증샷을 보여주면 티켓 값이 할인되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투표 독려는 당연 2030 젊은 유권자층을 위한 것이었다. 이른바 나꼼수 열풍 이후2030 세대는 존재감을 드러냈고,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통해 그 영향력을 검증 받았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2030을 잡기위해 몸부림을 쳤다. 통합진보당의 유시민과 이정희는 '나꼼수에서 배운 대로' 기꺼이 체면을 버리고 가발을 머리에 쓰고 춤을 췄으며, 민주통합당은 나꼼수 멤버인 김용민에게 공천을 내주었다. 이로써 야권은 2030 유권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런데 축배를 들며 개표방송을 지켜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최종 투표율은 54.3%에 머물렀다. 1당의 자리 또한 또 다시 새누리당에 내주고 말았다. 소란을 피웠던 것에 비해 야권은 결과적으로 2030 유권자들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2030 유권자를 대하는 야권의 태도에 있었다.

첫째, 구체적인 정책이 없이 지나치게 오락적인 요소만을 강조한 점이 그렇다. 2030 세대가 고루하고 권위적인 기존의 정치판보다 가볍고 쉬운 '나꼼수'식 소통방식에 혹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반타의적이었던 2030의 정치적 각성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자발적 각성으로 나머지 반쪽을 완성하였는데, 거기에는 무상급식이라는 '구체적인' 의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30세대는 나꼼수를 통해 제기된 MB정권의 '구체적인' 의혹에 대해 SNS에서 또래들과 토론하였으며 그들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현 정부에 분노하였고, 2030세대가 당선 시킨 서울시장은 곧바로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체적인' 공약을 실현하였다.

이처럼 '정책 검증'과 '공약 이행'이라는 구체적인 과정으로서의 선거를 학습한 2030세대는 4.11 총선에서 이미 준비된 유권자였다. 그 속사정을 제멋대로 스킵한 야권은, 오락적인 요소로 2030과 소통하려다가 실패했다. 오락적인 요소가 소통의 물꼬를 틀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만으로 성숙한 유권자들의 시선을 계속 잡아둘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야권단일후보'의 전략이다. 서로 다른 노선을 가진 정당들은 '심판'이라는 구호 아래 일사천리로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다. 일단' 새누리당 VS 야권'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는데도 성공했다. '야권단일후보'는 유권자들에게도 참으로 쉽고 간편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야권단일후보를 내고, 심판하자고 하면 유권자들이 알아서 야권단일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는 기대는 그들만의 착각이었다.

이미 성숙한 유권자들은 더 이상 MB정부와 한나라당 심판이라는 구호에만 도취된 대중이 아니었다. 각자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분별력 있는 선택을 하고자 하는 존재들이다. 야권은 바로 그 소중한 '한 표'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다.

구호 이외의 정책은 없었다. 모든 야권이 하나같이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복지, 노동과 같은 두루뭉술한 공약을 내걸고 정당간의 차별성마저 잃었다. 대의에 가려져 분별력을 발휘해 볼 기회마저 빼앗긴 유권자들에게 오직 야권과 새누리당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못마땅'하고, 구체적인 노선과 합의가 없는 야권은 의심스러웠다. 심판이라는 대의만을 가지고 남은 4년을 또 다시 어중이떠중이에 맡기는 것은 망설여지는 일었다.

한정된 후보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본전 생각'은 간절했다. 시민들은 뽑을 후보가 없다는 탄식을 냈다. '공약'이 아닌 '심판'으로 심판하려는 야권에 유권자들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땅히 선거의 주인이 되어야 할 유권자들은 뒷짐을 지고 '새누리당 VS 야권'의 대결을 지켜볼 뿐이었다. 정치권은 말로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결과적으로는 유권자를 선거의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 4.11 총선의 투표율은 54.3%로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인물로 표심을 사려했던 전략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2030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높은 이정희와 김용민 같은 스타플레이어를 등용했지만, 팀(정당)은 선수(후보)들의 컨디션 관리에 실패하였다. 애초에 인물이 아닌 정책을 가지고 유권자를 설득하려 했다면 일개(?) 단일 선거구의 후보가 이렇게까지 민주통합당 전체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듯, 스타플레이어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유명인사 중심의 선거는 스포츠 신문 아류를 자처하는 주류 언론에게 흑색선전의 표적이 될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권자들은 타 지역구 후보 검증에 열을 올리는 언론 탓에 정작 자기 지역구 후보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고 더욱이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는 스포츠 복권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당과 야권의 대결구도에서 누가 지고 이기는지 배팅을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관객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써 정치에 기울인 유권자의 관심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스포츠에는 승패가 있을 뿐이지만 총선은 앞으로 4년,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대선에서 고스란히 우리 삶으로 되새김 되는 문제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

성숙한 유권자의 의식수준을 간과한 점, 오락적인 요소와 스타플레이어들로 2030 유권자들의 표심을 쉽게 얻으려 했던 점, 이 모든 것에는 진정성의 부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야권은 지금이라도 이 진정성의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떠 먹여 주기식의 일방향적인 접근이 아닌, 쌍방향적인 소통구조로 나아가야한다. 진정성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지금 현실에 당면해 있는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총선 기간 동안 뒤로 물러나있던 중요한 안건들을 선거의 중심으로 되 찾아와야 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와, 민간인 불법사찰,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까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한다.

부디 야권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진정성 확보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인물이나 거대정당 중심이 아닌 정책과 다양성이 존중 받는 방향을 모색하길 바란다. 비록 새누리당에게 1당은 내주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야권은 다시 한 번 진정성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성숙한 유권자들은 언제라도 야권의 손을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잊지 말자.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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