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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은 모욕이 아니라 권리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월호 국가 배상은 당연하고 정의롭다

그날은 삭발을 말릴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2015년 4월 1일이었다. 정부가 '4.16 세월호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세상의 모든 입이 희생학생 한 명당 돈이 얼마인지 말하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손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했다. 부모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삭발을 하겠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이전처럼 말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 광화문광장에서는 수십 명의 유가족이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저희가 원하는 게 돈입니까?"

어떻게 배상은 모욕이 되어버렸나

정부는 배상을 권리가 아닌 모욕으로 만들어버렸다. 진실과 배상을 거래시키려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틀어쥐고 특별조사위원회의 숨통을 막겠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 끝난 일인 것처럼 몰아가기 위해 보상 운운했던 것이다. 권력의 오래된 습속이었다.

재난참사를 대하는 익숙한 접근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초기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에는 피해보상과 지원'만' 다루는 법안이 훨씬 많았다. 불운이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적당히 보상하고 지원할 생각은 있어도, 진실을 밝혀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각성은 없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재난참사 진상규명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배보상과 지원에 관한 내용을 분리하게 되었다. 진실을 알려달라는데 '보상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손가락질만 해대는 세상에 진심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배보상 수령을 거부했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할 때에도 소송의 중요한 목적은 진상규명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형사재판은 거의 끝나가고 특조위의 손발을 묶으려는 정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국가의 책임을 밝힐 방법이 많지 않았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책임을 묻기로 했다.

거래되어서는 안 될 권리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는 청해진해운과 국가에 책임이 있으니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적어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에서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걸 수 있다. 국가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에만 의존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의의는 해소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제 배상을 모욕이 아닌 권리로 자리 잡는 여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진실 없는 배상이 모욕인 것처럼 배상 없는 진실은 정의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불처벌 투쟁 원칙'은 진실에 대한 권리와 정의, 배상, 재발방지에 대한 권리가 서로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히며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2006년 유엔총회는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피해자 국제권리장전'이라고도 불리는 가이드라인은 배상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배상(reparation)은 원상회복(restoration), 금전배상(compensation), 재활(rehabilitation), 만족(satisfaction), 재발방지의 보증(guarantee of non-repetition)의 원칙들을 고려하며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 환산 가능한 다음과 같은 손해들"에 대해 적합하고 비례적인 범위에서 금전배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a)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b) 고용, 교육 및 사회적 편익 등 기회의 상실, (c) 물질적인 손해와 잠재적 소득의 상실을 포함하여 소득의 상실, (d) 심리적 고통, (e) 법적 원조 또는 전문가 원조, 약과 의료 서비스, 심리적 사회적 서비스에 소요된 비용. '피해자 국제권리장전'에 비추어볼 때 이번 판결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배상을 권리로 되돌리는 길

세월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결과는 2015년 4월의 배보상 계획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았다. 국가책임의 실 내용은 이미 형사처벌된 해경 123정장의 책임으로만 제한됐으며, 배상액의 산정 방법도 그대로였다. '보통인부 도시일용노임'이나 '교통사고 위자료'와 같은 산정 기준액이 3년 사이에 상향 조정되어 배상액이 조금 많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배상에 대한 권리는 금전에 대한 권리가 아니다. 모두에게 소중한, 그러나 피해자가 잃어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함께 헤아릴 때 배상이 권리일 수 있다.

세월호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두 가지 진전을 이뤄야 한다. 우선, '손해'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 국제권리장전'에서 제시한 손해들을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죽음 자체로부터 초래되지만은 않는다. 막을 수 있었는가, 구할 수 있었는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고통의 진폭과 방향이 달라진다. 삶이 통째로 흔들린 사건이라면 그만큼 다양한 결의 상실과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상실과 고통을 금전배상이 회복시켜줄 수는 없다. 그러나 금전배상을 통해 상실과 고통을 헤아리는 만큼 사회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역량을 쌓을 수 있다.

둘째, 배상은 국가 책임을 인정한 바탕에서만 권리가 될 수 있다. 1심 결과는 국가 책임을 명시했으나 내용을 보면 해경 123정장의 책임으로 모든 책임을 가뒀다. 한 국가의 책임이 해경 한 사람의 책임만큼밖에 안 된다고? 해경 123정장은 형사재판에서 그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기도 했다. 1심 결과는 해경 123정장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국가 책임을 오히려 면제해준 판결인 셈이다. 이대로라면 국가는 피해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재발방지를 보증할 수 없다. 배상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세월호 부모들과 함께 하면서 배상과 지원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할 권리라는 입바른 소리를 가끔 했다. 그러나 배상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주위의 손가락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의 유가족 중 한 분은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 생각하기 싫어도 자식 목숨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부로 쓸 수도 없다.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내키지 않는 마음 앞에 배상이 권리라는 말은 무안하기만 하다. 피해자들이 배상을 권리로 주장하기 어렵다면, 사회가 나서서 배상의 의미를 알리고 피해자들이 더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배상은 거래되어서도 안 되지만 포기되어서도 안 될 권리이기 때문이다. 제천화재참사의 유가족 한 분은 사건 이후 '우리 모두 잠재적 유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금 누군가의 배상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배상이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다. 살아남은 이의 무너진 삶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사회가 누군가의 고통에 이런 책임이 있다고 고백할 때, 누구도 유사한 고통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때, 무너진 존엄은 회복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는 누군가 덜 다치고 덜 아프고 덜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 배상이 점점 더 권리가 되어갈 때, 생명과 안전도 점점 더 권리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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