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2월 모스크바 크레믈린궁에서 소비에트연방기가 내려지면서 냉전은 해체되었다. 소련과 위성국들의 몰락은 자유주의진영과 지식인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세계를 제1, 제2, 제3세계로 구분하던 관용어는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궁극적 승리로 보였다. 서구식 자본주의, 서구식 민주주의의 승리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하던 이때 새로운 갈등을 예견한 사람이 나타났다. 새뮤얼 헌팅턴이다.
냉전이 해체되면서 양대 초강대국에 억눌려 있던 민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이런 정체성 찾기는 갈등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된다. 헌팅턴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성을 재창조하려는 민족에게는 적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적대감은 세계 주요 문명들 사이의 단층선(경계선-필자주)에서 불거진다."
헌팅턴은 문명의 핵심요소로 가치, 기준, 제도, 사고방식 등을 거론하지만 종교를 최우선 요소로 친다. 그는 종교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문명을 정의하는 객관적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테네인들이 강조하였듯이 종교라 할 수 있다." 즉 문명적 정체성의 핵심은 종교라는 주장이다.
비(非)서구사회는 왜 20세기 후반에서야 정체성 찾기에 나서게 되는가? 종교야 이전부터 쭉 믿어왔고 정체성이란 것이 종교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갑자기 문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체성 찾기' 열풍의 원인을 헌팅턴은 비서구사회가 수행한 '서구식 근대화의 부작용'에서 찾고 있다. 서구식 근대화가 비서구 사회에 도입되면 서구 문화, 서구 문명은 자동적으로 지역에 착근하게 되는 것일까? 헌팅턴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서구식 근대화는 기존 공동체를 해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해체된 공동체는 자신들의 공허함을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메우려 한다. 정신적 공허함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종교에 몰입하게 된다. 전통적 사회관계의 와해는 아노미 현상을 낳고 정체성 위기를 초래하는데,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 종교에서 출구를 찾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의 힘과 능력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지배영역도 축소되고 인구도 감소한다. 1900년 서구인은 세계인구의 30%를 차지하였고, 1995년에는 13%에 불과하다. 비서구사회의 늘어나는 인구증가는 단순증가가 아니라, 교육과 문해력을 가졌고 종교적 열정을 공유하는 사회적 동원력을 가진 인구다. 이런 인구에 대한 두려움을 헌팅턴은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쿠데타를 사주한 미국에 대한 윤리적 반감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1953년 이란 국민의 15%만이 문자를 해독하고 도시인구가 17%에 못 미쳤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 CIA요원들은 폭동을 간단히 진압하고 국왕을 권좌에 복위시킬 수 있었다. 1979년 국민의 50%가 글을 읽고 47%가 도시에 살게 되자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국왕을 보호할 수 없었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 간에 밀접히 연결되고 교역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대다수의 지식인은 산업사회인 근대 문명이 시작되면서 엄청나게 증가한 국가와 국가, 문명과 문명 사이의 교역은 분쟁 가능성을 줄일 것이라 예상했다. 칸트가 세계평화론을 구상하면서 기대를 걸었던 것이 경제적 상호 의존 상태였다. 그런데 헌팅턴은 무역이 분쟁 가능성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키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 국제무역이 세계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3%였다고 지적한다. 1980년의 경우, 15%에 불과했다. 경제적으로 가장 상호보완적인 바로 그때 전쟁은 시작되었다,
헌팅턴은 문명 사이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서구 문명과 갈등할 상대로 두 문명을 꼽고 있다. 중화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다. 헌팅턴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 대체로 서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 일본, 인도와의 관계 역시 갈등과 협력을 병행해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가 가장 긴장하는 것은 이슬람 문명과 중화 문명이다. 이슬람과 중화는 서구에 대해서 크나큰 우월의식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런 우월의식과 함께 두 문명의 나날이 늘어나는 실력과 자긍심은 서구와의 충돌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헌팅턴은 유교-이슬람의 결합에 주목한다. 그는 유교-이슬람의 연대가 대량살상무기의 생산과 미사일개발로 서구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유교-이슬람 연대의 핵심은 이란, 파키스탄과 중국, 북한이다. 유교-이슬람 연대에 국한해 보자면, 중국 못지않게 북한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란이 중동의 핵심 군사강국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북한의 도움이 한몫을 했다.
헌팅턴은 중화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지만, 두 문명이 필연적으로 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이슬람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슬람과 서구가 다시금 충돌하는 원인은 권력과 문화의 근본적 물음으로 귀결된다. 누가 지배하고 누가 지배당해야 하는가?" 레닌이 정의한 정치학의 핵심문제가 바로 이슬람과 서구의 대립 구도 밑바탕에 깔려있다. 헌팅턴의 이슬람에 대한 타자화는 이렇게 말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서구가 직면한 근본문제는 이슬람원리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이다. 자기네 문화의 우월성을 철석같이 믿고 자기네 힘의 열세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거느린 상이한 문명이다."
또한 그는 중국이 적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말한다. 다음은 헌팅턴의 말이다.
"문명들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올 때 핵심국들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팍스 아메리카로의 이행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두 사회의 문화적 유대감 때문이다. 서구와 중국 사이에는 그러한 종류의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구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사충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 중국의 부상은 핵심국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문명 전쟁의 잠재적 원천이 되고 있다."
1900년 초반부터 서구에서는 자신의 문명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은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감으로 표출되었다. 동양에 대한 공포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불을 지핀 '황화론(yellow peril)'으로 퍼져나갔다. 제국주의를 수행한 정치인은 예외 없이 제국주의를 방어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인종적으로 우세한 백인종이 수적으로 다수인 유색인종을 지배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다시 저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유럽인들은 유색인종을 떠 올리면서 로마의 붕괴, 훈족과 몽골족의 침공 등을 기억해낸다. 황화론은 서구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더욱 정교해진다.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모든 문명은 성숙 뒤에 무너졌으며 지금은 서구가 몰락할 시간이라며 서구인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문명순환론'의 역사가 토인비 역시 황화론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진 않았다. 아니, 황화론의 개선판이었다. 그는 문명의 쇠락을 '내적 프롤레타리아'와 '외적 프롤레타리아' 개념으로 설명한다. 내적 프롤레타리아는 문명권 내부에서 창조적 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대중이다. 외적 프롤레타리아는 문명권 외부에서 그 문명권을 흠모했으나 문명이 쇠퇴 기미를 보일 때 문명권 내부로 들어와 갈등을 유발하는 대중이다. 서구 문명을 흠모하지만, 서구 문명이 약화되는 틈을 노리는 외적 프롤레타리아가 황화론의 새 버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헌팅턴의 책에서는 문명들끼리 왜 충돌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두루뭉술하다. 그는 충돌의 원인을 에둘러 말한다.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서구문화의 보편성을 관철하려는 서구-특히 미국-의 노력과 서구의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생겨나는 부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문화와 문명이 인류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보편적 목표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점을 헌팅턴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서구의 보편주의가 비서구에게는 '제국주의'로 다가온다고도 덧붙인다. 서구 문명의 제국주의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비서구인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서구사회에 관철하려는 보편적 서구 문명이란 무엇인가? 헌팅턴은 서구 문명의 핵심들로 그리스-로마의 유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유럽어, 종교적 권능과 세속적 권능의 분리(정교분리), 법치, 사회적 다원주의, 대의제, 개인주의 등을 열거한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집어서 이야기해 보자.
그리스적 유산은 민주주의와 연결된다. 서구 정치사상이 그리스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지역에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가 이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구 문명의 적수로서의 중동은 논리적 필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란은 미국의 적대적 목표가 되어 있다.
서구는 자신들의 사회적 다원주의적 전통을 수도회, 길드 등의 자율적 집단의 존재에서 찾는다. 쿠바는 아래부터의 역동적 힘이 충만한 사회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봉쇄와 소련의 붕괴가 맞물려 쿠바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이런 위기를 쿠바 국민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소 이사장은 한 칼럼에서 소련으로부터의 석유공급이 끊긴 쿠바가 1994년 식량자급률 94%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있는 소농과 자치공동체'의 존재였다고 말한다. 역동적인 공동체를 가진 쿠바도 최근까지 미국의 적이었다.
서구 문명의 핵심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해부해가다 보면 서구와 비서구가 특히 유교-이슬람과 갈등해야만 할 필연적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가장 근본주의적 이슬람 종파인 '와하비즘'을 믿는 사우디는 미국의 충실한 우방이다.
헌팅턴의 정신분열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헌팅턴은 책의 곳곳에 미국의 문화적 다원주의인 다문화주의에 대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책에서 다문화주의를 미국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적 다원주의는 헌팅턴이 서구 문명의 핵심 요소라고 들고 있는 4가지 요소-다원주의, 기독교, 개인주의, 법치주의-의 하나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서구 문명의 강점이 다시 단점이 되어버린다.
헌팅턴은 정체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다 무심결에 속내를 말한다.
"다른 문명을 배경으로 가진 국가 간의 갈등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좀 더 확장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증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나의 적수가 사라지면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이 작용하여 새로운 적수를 만들어 낸다."
"하나의 적수가 사라지면 (…) 새로운 적수를 만들어낸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 파시즘과의 전쟁이 끝나자 냉전이 시작된다. 냉전이 소련의 붕괴로 해체되자 중동이 새롭게 적이 된다. 전쟁을 통해서 대공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달콤한 기억은 수십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군산복합체는 먹이가 떨어지면 새로운 먹이사냥에 나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자신의 퇴임연설에서 강력히 경고했건만, 미국은 이후 아이젠하워의 경고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500쪽에 달하는 책에서, 이 문장에서만 그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헌팅턴은 적을 찾아 나선 제국의 관변 이데올로그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종교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그의 관점 역시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시민 개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종교가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지만 국가들의 정체성은 당대의 헤게모니 국가에 의해 기본적 틀이 주조된다. 시민의 정체성은 개별 국가의 정체성에 의해 다시 주조된다. 현대의 헤게모니 문명인 서구는 지구적 자본주의와 대의제민주주의를 수출한다. 개인이라고 개인만의 정체성이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개인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이 두 가지의 토대 위에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스스로를 진보로 또는 보수로 자처하는 인구도 상당하다. 기독교인이면서 민주당 지지자인 미국 시민이 비기독교인 민주당 지지자와 기독교인 트럼프지지자 둘 중 누구를 자신과 동일시할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인화성이 가장 높은 '종교적 차이'로 규정하는 것부터 문명의 충돌은 예정되어 있었다.
정체성 형성에 관한 정치학자의 글을 보자. 정치학자 홍성민의 논문 '정체성과 국제정치'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체성 형성기제란 미시적으로는 개인과 가족에 대한 개인화 과정이며, 사회국가적으로는 보다 큰 집단과 정치조직, 혹은 계급 구성에 필요한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논리로 보면 국제정치에서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정 역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헤게모니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정한 '국가 길들이기'의 과정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홍성민의 주장은 정체성의 최종적 방향에 있어서는 헤게모니 국가의 권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발생하는 이슬람의 급진화는 이슬람의 본래적 정체성의 문제이기보다는 그들이 받아들인 서구 문명, 즉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능부전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제국'의 저자 네그리는 선진국이 주장하는 보편적 원리의 이면에는 생산의 세계화를 요구하는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게다가 '인권'을 들이미는 서구가 가장 비인권적인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지지할 때 이슬람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급진은 좌절 뒤에 온다.
서구 문명에 도전하는 급진적 이슬람 운동은 대부분 20세기 중후반의 산물이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서구적 근대화의 길을 따라갔다.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 등이 세속주의를 내세우거나 사회주의를 모토로 집권했다. 철두철미 이슬람 원리주의인 사우디가 오히려 미국에 가장 가까웠다.
이런 점에서는 중동 역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판단이 현실에 가장 근접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서동찬의 논문 '현대의 폭력적 사태와 관련하여 문명 충돌론에 대한 제고'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버나드 루이스의 요지는 이슬람 세계에 도입된 세속적 정치, 경제, 문화가 민주주의와 발전보다는 독재와 빈곤의 양극화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무슬림의 분노가 서구 문명에 적대적으로 돌아섰으며 그것이 유대-기독교 문명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즉, 이슬람의 분노는 서구식 문명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 실패에는 서구의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원, 민중친화적 정부에 대한 전복시도 등이 포함된다.
이슬람의 정체성 자체가 문제라는 헌팅턴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론을 하려니 마음 어딘가가 구질구질해짐을 느끼게 된다. 뉴스 기사 하나가 이 모든 논리적 반박을 대체할 것 같다. <연합뉴스>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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