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해 첫날부터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께 붓그림 편지를 보내렵니다.
인터넷 신문 격에 맞을지 모르겠으나 종이 신문보다 밝은 화면이라 기대됩니다.
논쟁이 난무하는 시사판 한 구석에서 조용히 찾아뵙겠습니다.
시시비비에 명석하지도 못하고, 이재에도 밝지 못한 시골 장인입니다.
어리숙한 글 그림이니 우습게 봐 주십시오.
편하게 지나가다 들린 시골 주막집처럼 회포라도 풀고 가는 열린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늙은 퇴기처럼 조용히 앉아서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노래 한 상, 시 한 술도 읊어 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때로 답가를 해주십시오.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사이버 풍류공간이고자 합니다.
신명을 돋아주십시오. 그림광대도 박수를 먹고 큰답니다.
〈김봉준의 붓그림 편지〉 형식과 내용은 대략 이런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1. 글보다 그림을 위주로 끌고 가고 싶습니다. 세시풍속, 통과의례, 자연 살림, 세상 이야기, 때로는 역사와 시대를 미술과 인문으로 해석해보겠습니다.
2, 부드럽고 감성적이며 싱그러운 그림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기계활자의 몰개성을 넘어 자연미와 인간미 넘치는 현대판 시·서·화 세계를 펼치고 싶습니다.
3. 빠르고 이미지적인 디지탈 매체의 장점을 살리고 싶습니다. 읽는 신문만이 아니라 보는 신문, 프레쉬 이미지, 글과 그림이 통합된 디자인(Integrated design)을 펼치렵니다.
30년 미술업으로 살았습니다. 30년 전 민중미술로 시작했습니다. 서울 출생으로 대학까지 서울에서 다녔는데 왠지 서울이 싫어 20년 전 서울을 떠났습니다. 산골 장인으로 늙을 작정으로 강원도 산골에 화실을 갖고 삽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격려와 질책도 바랍니다. 새로운 창작에는 늘 위험이 따릅니다. 앞이 캄캄할 때는 헤매면서라도 헤치며 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붓그림 편지는 새로운 의미의 창의적 시서화입니다. 30년 나의 미술을 총정리 하는 심정으로 임하겠습니다. 문화의 위기 시대 마지막 고비를 넘는 심정으로 산골 칩거를 털고 나가렵니다. 앞으로 1년의 미술대장정, 창작순례에 큰 탈 없기를 빕니다.
자유로운 공간, 깨어 있는 비평 〈프레시안〉이 마당을 펼쳐주시니 이번만은 간섭 안 받고 내 속을 훌훌 펼치겠습니다. 송구영신하는 〈비나리〉 그림으로 독자에게 첫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봉준 약력〉
1954년 서울에서 출생해 성장
1975년 탈춤, 풍물굿, 탈, 불화 등 민예학습
1979년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 졸
1980년 광주항쟁 유인물 사건으로 수배 및 투옥되면서부터 40세까지 민중운동 참여
1981년 걸개그림 〈만상천화〉, 농민회 만화책 〈농사꾼 타령〉으로 민중미술 시작
1983년 미술동인 두렁 결성. 애오개 문화공간 활동
1985년 〈민중미술〉발간 편집위원장(도서출판 공동체)
1985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기획국장
1987년 이후 5년 부천 시민미술공방 〈흙손〉 경영
1993년 이후 10년 강원도 원주 문막에서 산골 화실생활
2000, 2001년 〈숲과 마을 미술축전〉 개최(문막 취병리)
2004년 〈세계생명문화포럼〉 총연출 및 기획초대전-신당전
2005년 〈실학축전〉 총감독. 유라시아대장정 예술감독
현재 문막 산골 미술의 집 〈산아리〉 주인, 녹색대학 풍류예술학과 초빙교수, 동북아평화연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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