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다 사찰은 나쁜 짓이라는 전제를 깔고 악을 쓰는 형국이다. 그러나 사찰이란 원래 나쁜 말은 아니다. 조사하고(査) 살피는(察) 일이다. 그게 이승만 정권 때 주민의 사상적 동태를 파악하고 이른바 '적색분자'를 색출해 내는 경찰의 한 기능으로 자리 잡으면서, 탈선이 잦아 나쁜 인상이 줄곧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인권 같은 것은 중시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찰'이 됐건 '정보수집'이 됐건 '감찰'이 됐건, 국가의 운영이나 국민 보호 차원에서도 사찰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이다. 누군가 어디선가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그 사찰이 불법이냐 아니냐다. 간단한 잣대가 있어 보인다. 사찰(정보수집) 결과물의 사용처가 국익에 보탬이 되는 떳떳한 것인지의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나 싶다. '80%'이건 '20%'이건 그 잣대 대입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게 되어있다.
사조직 네트워크 구축해 놓고 사설(私設)정치를 하기위한 사적(私的)인 용도로 벌인 사찰이거나,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계 사찰이거나, '형님'에게 싫은 소리 했다하여 특정 국회의원의 약점을 캔다거나, 정부에 비판적이라 해서 이른바 '좌파연예인'까지 뒷조사를 하거나, 자기 사람들 심기 위해 특정지역 출신 인사들 몰아낼 꼬투리 캐는 사찰, 이런 건 다 불법 사찰이다.
인권 침해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물론 조폭행태다. 참여정부 총리실의 조사심의관실이나, MB정권 청와대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나,앞서 말한 잣대 들이대면 그간 해온 일이 나쁜 일인지 아닌지 삼척동자라도 판별해 낼 수 있다.
ⓒ청와대 |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터지자, MB정권은 이인규 공직윤리관을 가장 윗자리에 앉혀놓은 '범죄 계통도'를 그려 세상에 내 놓았다. 더 높은 배후가 없을 수 없는 사건이고, 그냥 그렇게 끝낼 수 없는 사건인데도 그랬다. 이인규 씨 등의 구속이 1단계 수사와 사법처리였다면, 이번 2단계에서는 아마도 이용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까지 구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듭 말 하건대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도 아닌 일개 비서관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배후 몸통'일 수가 없다. 그가 이렇게 엄청난 국기 문란 사건의 맨 윗선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전에 한 방식대로라면 검찰은 죽기 살기로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반드시 올 3단계 수사와 사법처리로도 이 사건은 매듭지어 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당초 불법사찰 사건이 들통 나면서부터 축소하고자 기를 썼고, 증거 없애고자 발버둥 쳤으며, 관련자들 입막음 하려고 몸부림 쳤다. 어쩌면 우리가 낸 세금일지도 모르는 억대 넘는 돈을 싸들고 관련자들 찾아 다녔다. 그만큼 신경 쓴 사건이었다. 심지어 관련자들 조사과정까지 쉬쉬하면서, 일개 행정관 미국으로 빼 돌리기 위해, 워싱턴의 주미대사관에 최근 3년간 없었던 '노무관' 자리까지 새로 만들었다.
다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외교부·국세청등 여러 부처가 난리법석을 떨면서 밀어붙인 '작전'이라 했다. 대통령실장이 관련 구속자들 가족에게 위로금까지 보냈다. 매사를 꼼꼼히 챙기기로 유명한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청와대 울타리 안에서 주도된 사건을 몰랐다면 직무유기라 했다.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대통령은 사건에 대해 말이 없다.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어제 '대통령의 침묵'을 지적하면서 "대통령이 속 시원히 '발표'를 해야 한다"고 방송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건 대통령을 모르는 말씀이었다.
손오공과 사오정이 취직 시험을 보러 갔다. 먼저 시험장 안에 들어선 손오공에게 면접관이 물었다. -축구선수는 누구를 좋아 하는가? "전엔 차범근이었으나 지금은 이동국입니다." -산업혁명은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가? "18세기 유럽입니다." -으음, 똑똑 하구먼. 여러 의견들이 있네만 UFO가 존재한다고 보는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합격일세. 밝게 웃으며 손오공이 시험장에서 나오자 사오정이 득달같이 달려와 물었다. "무슨 문제 나왔어?" "처음에 묻기를…" "아니 질문 필요 없어, 답만 이야기 해줘." 손오공이 일러주는 답을 두세번 뇌어본 뒤 사오정은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면접관 앞에 섰다. 문제가 생겼다. 질문 내용이 달라진 것이었다. 사오정은 그러나 개의치 않고 외운 순서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전엔 차범근 이었으나 지금은 이동국입니다." -응? 고향이 어디야? "18세기 유럽입니다." -헉! 이거 또라이 아니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중에 나도는 '사오정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오정의 비극은 답만 외워 간데 있었다. 막무가내에 무성의하기까지 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사오정이 연상된다. 대통령은 사과요구도 거절하고 지금 열심히 답을 외우고 있는 듯하다. 그가 온몸으로 외우고 있는 답은 "나는 아니다" "나는 무관하다"로 읽힌다.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도 그동안 줄곧 "검찰이 수사해서 밝힐 것"이라 말해 왔다. 그건 검찰이 절대로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무관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BBK 때도 대통령 후보이던 그는 그 답을 외워서 말하곤 했다.
국민의 것인 전파가 벌써 몇 달째 MB의 마름인 사장들의 개인 방송국에 갇혀 비틀거리는 방송 파업에 대해서도, 그의 답은 "나는 아니다" "나는 무관하다"였다. "방송사 내부의 문제"라는 말이 바로 그 소리다.
희한한 것은 박근혜 위원장도 "나는 아니다" "나는 무관하다"는 답을 외워 갖고 다니는 대목이다. 4대강 문제에 대해 침묵하며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여 오던 그녀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나는 아니고 무관하다는 자세를 굳게 지키고 있다. 박위원장은 "나는 새누리당 위원장일 뿐 한나라당과는 상관없다"고 외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한나라당에 뿌리를 두고 정치를 해온 한나라당 출신 대권 후보다. 정치적으로 도의적으로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신뢰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결코 MB가 남 일 수도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 그녀가 MB와 '찰떡 공조'를 이룬 것도 국민들에게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계 소속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를 MB가 막아주고, 박위원장이 청와대 쪽의 공천요구를 일부 수용한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다른 사람도 아닌 '형님' 이상득의원을 대구 경북특별선대위원장으로 박위원장이 임명해 주고, MB가 "박근혜 만한 정치인이 없다"며 화답한 것도 요즘 정가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
그저 "나는 아니다" "나는 무관하다"라는 해답만 열심히 외워 갖고 다닐 일이 아니다. 불법사찰 사건을 놓고는 MB나 박근혜위원장 다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사과해야 옳다. 피해자가 바로 국민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울러 MB정권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사라진 5개 팀의 사찰 기록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감출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좋다. 총선의 유불리 만을 따질 때가 아니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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