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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학자 길들이기?…'전문가 심사 1위' 연구소의 '이상한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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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학자 길들이기?…'전문가 심사 1위' 연구소의 '이상한 탈락'

HK사업, 석연치 않은 심사 과정

"선거 결과가 이미 나왔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선거관리위원회가 마음대로 결과를 바꿔서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연구재단의 행동이 그렇다.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인정된 결과를, '관리 기관'이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멋대로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정부지원금이 제공되는 연구 사업 공모전에서, 갑자기 심사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발생했다. 전문가 심사단이 '압도적인 1위'로 선정한 연구소가 막판 선정 대상에서 탈락한 것. 납득이 될 만한 이유도, 해명도 없었다. 다만 이 연구소가 정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에 이어 정부의 '비판 학자 길들이기'가 재차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이 된 곳은 중앙대학교 독일연구소. 최근 정부 연구 지원금을 총괄하는 한국연구재단은 '인문한국지원사업(HK사업)' 선정 과정에서 이 연구소를 석연찮은 이유로 종합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이 연구소는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위원단의 심사 결과가 HK사업 '관리 기관'인 한국연구재단에 의해 뒤집힌 셈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어독문과)의 표현에 따르면, '국민의 투표'(심사위원 교수진)에 의해 대통령이 결정됐는데, '선관위(한국연구재단)'가 결과를 뒤바꿔 발표한 것.

HK사업, 전문가 심사 1위 연구소의 '이상한 탈락'

올해로 시행 3년째를 맞은 HK사업은 한 연구소에 매년 수억 원씩 최장 10년간 지원하는 인문·해외연구 부문 최대 학술 지원 사업이다. 특히 신규 연구소 선정은 올해가 마지막이어서, 올해 대학 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연구소 선정은 전문가 심사를 거쳐 모두 7곳의 연구소(소형과제 2곳, 중형과제 3곳, 인문연구분야 3곳)가 최종으로 결정된다.

HK사업 해외 소형과제의 경우,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제출한 '현대 독일의 시스템과 생활세계 연구'가 전문가 심사에서 85.32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와의 격차는 3점 남짓으로, 이는 0.1~0.2점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당락이 결정되는 종전의 심사 과정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러나 최종 종합 심사 결과는 '황당'했다. 재단 임원 7명과 교육과학기술부 담당 과장 등 '정부 측 인사'로 구성된 종합심사위원회는 독일연구소를 탈락시키고 차점자인 K대와 4위를 차지한 P대 연구소를 선정했다. 1차 전공 심사와 2차 면접 심사 등, 해당 분야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가 심사' 결과를 종합 심사에서 뒤집는 일은 이례적이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일주일간 합숙하며 산출해낸 결과였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은 이러한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재단 측은 독일연구소의 탈락 사유에 대해 "제3세계 연구를 우대했다", "단일 국가 연구이기 때문에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사업 전에 공지된 신청 요강의 내용과 배치되거나 새롭게 추가된 것이어서, '비전문적 관리 기관의 월권행위'라는 주장 역시 제기된다.

이에 중앙대 독일연구소는 18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연구재단의 심사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누리 교수는 단일 국가 연구는 배제했다는 재단의 주장에 대해 "애초 사업 신청 요강은 '단일 국가는 소형으로 신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종합 심사에서 선정된 P대의 경우, 독일연구소보다 점수도 낮았고 이들 역시 단일 국가인 중국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제3세계를 우대했다는 재단의 주장에 대해서는 "신청 요강에서 우대 대상은 '제3세계 연구'도 있지만, '기선정 연구소가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은 지역'도 분명히 명시돼 있다"며 "이제까지 독일 연구는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던 만큼, 우대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예계 이어 학계도?…'진보 인사 솎아내기' 시작되나

이번 심사 결과가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연구비로 '길들이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독일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누리 교수의 경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중앙대 분회장이며 지난 6월에 있었던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하기도 했다.

▲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김 교수는 이날 "연구비 중단 등으로 진보적인 교수에 대해 정부 압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공공연히 나돌던 이야기"라며 "김제동 씨 방출 사태 등, 연예계에서도 이른바 '진보 인사 솎아내기'가 유행인데 학계라고 다르겠냐"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는 비판적 지식인들을 조직적으로 고사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학문 세계에 대한 정치적 테러"라며 "한국연구재단의 정치적 편향성과 부당한 선정 결과를 바로잡기 위해 법적·정치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시국선언에 나섰던 중앙대 교수 63인도 이날 재차 성명을 내고 "정부의 연구지원금을 총괄하는 주무 기관으로서 가장 공정하고 엄정해야 할 한국연구재단의 도덕성이 이 정도라니 개탄스럽다"며 "학문의 자유와 학자의 양심을 유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규탄했다.

지난 6월 교수들의 잇따른 시국선언 이후, 진보 성향 교수들에 대한 연구비 중단 등의 '압박'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후문이다. 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의 경우, 지난 8월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09 인문·사회분야 대학 중점연구소 지원 사업'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탈락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등 3개 대학의 연합 연구소인 이곳은 전공 심사와 면접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종합 심사에서 '자격 요건 미비'를 이유로 탈락했다. '대학 컨소시엄 형태의 연구소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 재단이 밝힌 탈락 이유지만, 이는 신청 요강에 조차 없는 자격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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