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점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보아 실패했는지 오히려 묻고 싶다. 애초에 경제대통령, 실용주의 정부를 표방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을 치솟는 물가와 생활고에 빠트렸으니,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실패한 정부가 맞다. 이명박 자신과 친이계, 그리고 새누리당에게도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거나,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하면 확실히 자신의 실패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런 경우가 오더라도 나는 노무현 정부 출범부터 그 정부 모든 정책을 '빨간 딱지'를 붙이다가 2007년 당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사회의 상층 10% 정도의 기득권층과 핵심 보수 세력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임무를 다한, 성공한 정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부자들은 확실히 더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3억 원 이상 재산이 증가 했지만 행정부, 국회, 사법부의 고위 공직자의 60퍼센트 이상의 재산이 늘어났다. 지난 4년의 증가액을 합산하면, 이들의 재산증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 종부세 대상을 축소함으로써 연 2조 원 이상의 세수가 감소되었으므로 4년 동안 거의 8조 원 이상의 돈이 부자들에게 고스란히 이전되었을 것이다. 법인세 감소로 인한 부의 이전효과는 더욱 크다. 이 정부에서 세무를 담당했던 한 고위관료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국내 상위 10대 기업이 2009년 한 해 동안 돌려받은 세금은 1조7665억 원으로 전체 감면액(3조6350억 원)의 절반(48.6%)에 이르고 삼성전자는 무려 8600여억 원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4년 동안 10대 대기업이 돌려받은 세금을 합하면 7조원을 넘어설 것이다. 이 밖에 SSM(대형수퍼) 입점 규제법 처리를 지연시킴으로써 재벌기업의 유통업체가 얻은 수익,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재벌기업이 얻는 수익, 4대 대강 건설공사를 벌이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얻은 수익 등을 모두 합하면 이 정부 하에서 적어도 100조 원 이상의 돈이 부자와 재벌들에게 이전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이 이전된 돈에는 중소기업 사장,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한숨과 피눈물과 한숨이 묻어있다. 물론 이 돈의 일부는 신규 고용 창출에 사용되었겠지만, 대부분은 기존 부자의 권력과 기득권을 영속시키는 자본으로 축적되고 권력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사실 한국에서 중앙과 지방에서 확실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새누리당이다. 비록 당원 수는 적고, 이 당이 자신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은 한국사회의 상류층과 영남 보수층 합쳐서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 이 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30퍼센트를 오르내린다. 이 당의 지지율은 어떤 경우에도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존재한다. 그들의 헤게모니, 즉 정신적 도덕적 기반이 막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자본의 힘이 막강하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법적 기반, 제도적 권력, 언론, 지역사회의 관변조직들, 교회 등 종교권력, 사립대학 등 지식권력이 든든하다. 즉 새누리당은 우리나라에서 구태여 선거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아무를 사고를 치더라도, 기본은 먹고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그 지지는 바로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식은 대체로 비대칭적이다. 즉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계급의식적이지만, 청년, 실업자, 그리고 못 가진 사람은 누가 자신을 대변해 주는지 모르거나, 대변을 자임하는 진보 세력들도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언제나 실망하고 좌절하고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다. 게다가 10퍼센트 내외의 부자와 권력자들은 경쟁력, 효율성을 들먹이거나 민주세력의 경제적 무능을 공략하면서 90퍼센트의 가난한 사람들을 언제나 헛갈리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하에서 서민층의 가정 경제는 더 좋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은 민주정부에 등을 돌렸다. 결국 자신의 지지층인 서민들을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함으로써 이들 두 정권은 그들의 심판을 받고 말았다.
작년 이래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그들이 무슨 구체적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해서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경제공약이 실제로는 국민이 아닌 소수 부자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들통이 나고 실제 서민의 생활이 더욱 나빠졌기 때문이다. 보수의 허구성과 헛발질의 공간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야당은 변화의 '바람'과 기대어 나름대로의 입지를 마련해 왔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람'을 타고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나 집권당의 국회 활동에서 우리가 목격하였듯이 바람에 의지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해도, 정당 차원의 확고한 정책적 입장과 그것을 실천할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 사분오열하면서 무너지거나 노회한 경제 관료들에게 굴욕을 당했다. 즉 부자정당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줄 자원, 이데올로기, 제도적 힘이 있지만, 서민 정당은 서민의 경제고통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이 딜레마가 바로 현재 야당이 처한 현실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렵게나마 야권연대가 성사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물론 백번이라도 심판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심판 받은 결과로 총선에서 야권이 다수의석을 차지하더라도 야당의 힘만으로는 결코 막강한 보수에 맞설 수 없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이번에 합의한 것처럼, 총선이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반드시 성사시켜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정치참여 의지를 높여야 한다. 보수의 제도적 기반은 오직 시민들의 적극적인 조직화와 행동을 통해서만 견제될 수 있고, 야당의 모든 입법 활동은 시민행동이 없는 의회 내 협상만으로는 결코 성사될 수 없다. 지식인들은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중요 법안 통과 및 좌절 과정에서 부자정당이 어떤 논리를 들이대고 힘을 동원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력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시민들과 청년들은 이번 총선에 적극 참여해야하지만, 선거정치가 당장의 큰 변화를 가겨올 것이라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적 부를 영속시키기 위해 법, 행정, 사법부, 언론을 총동원하는 기성 보수 정치세력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이 선거 시 쏟아내는 미래지향의 '말의 성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정치세력의 교체라는 큰 변화 시기에 우리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읽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시민 참여, 시민 조직화의 계기가 되어야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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