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가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모두가 평화를 바라지만 평화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당위성과 선의로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그런 면에서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참고해야 할 매우 중요한 '평화 사례'다. 그 중심에 '거인' 넬슨 만델라가 있다. 올해는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7월 18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이다. 넬슨 만델라의 평화 행보에서 비핵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한 나라다. 그리고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그 길을 과연 북한이 갈 수 있을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비핵화를 결정한 것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프레데릭 빌럼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 비핵화를 계승하고 나아가 아프리카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6년 펠린다바 조약(Treaty of Pelindaba)으로도 불리는 아프리카 비핵지대 조약은 아프리카에서 핵실험도, 핵공격도 없도록 하자는 강력한 약속이다. 남아공 핵개발의 상징 펠린다바의 이름을 땄다. 우리도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을 맞아 넬슨 만델라의 평화 정신에 대해 듣기 위해 노주코 글로리아 밤(Nozuko Gloria BAM) 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를 만났다. 밤 대사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남아공 교육부를 거쳐 국가안보국(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에서 국장을 지낸 인사로 안보 문제에 있어 전문가이다.
남아공이 핵 폐기를 결정한 배경에 있어서 밤 대사는 '냉전 체제의 붕괴'라는 외부적 요인,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공의 인종분리 법과 정책) 정권에 대한 민주화·인권 운동의 내부적 요인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 문제와 단순 비교는 어렵다. 북한은 어찌보면 냉전 체제가 해체된 후 '체제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스트 냉전'의 결과물이 북한의 핵무기라고 볼 수 있겠다. 냉전이 남긴 우울한 잔영이다.
맥락과 상황은 다르지만, 긴장 강도만으로 보면 2018년 이전까지의 한반도 상황은, 1990년대의 남아공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는 군사적 긴장을 뚫고 이뤄낸 남아공의 자발적 핵 폐기,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번영이라는 남아공 시민의 승리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밤 대사는 대내외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남아공 모델'을 북한에 단순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가지, 확신을 가지고 언급한 게 있다.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평화' 의지와 '대화'라고. 그는 "남아공도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넬슨 만델라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넬슨 만델라는 2001년 3월 12일 한국의 대통령 김대중과 청와대에서 만났다. <김대중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대중 : 만델라 대통령께서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반목과 원한까지 녹여 낼 수 있는 용기와 관용의 위대함을 전 세계인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는 남북화해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넬슨 만델라 : 평화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를 적용하는 것이 대통령의 화해 협력 정책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시저, 히틀러 등 무력과 무기를 사용한 경우는 결국 국민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평화를 위히 산 사람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대통령의 대북 화해 정책은 평화를 무기로 남북평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두 '거인'의 대화는 강렬하다. 그렇다. '평화'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밤 대사와 인터뷰는 지난 11일 서울 한남동 주한 남아공대사관에서 진행됐다. 박세열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진행했고, 통역은 이소영 주한 남아공대사관 미디어·번역 담당이 맡았다. 다음은 밤 대사와 인터뷰 전문.
"한반도, 1990년대 초 남아공 상황 같다"
프레시안 : 지금 한반도 최대 화두는 '평화'와 '비핵화'다. 현재 남북 상황, 어떻게 보고 있나.
노주코 글로리아 밤 : 현재 한반도는 1990년~1994년 남아공의 민주화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가 투옥 27년 만에 석방되면서 남아공 사회는 기대와 열망으로 가득 찼다. 이후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면서 남아공이 안정을 찾았던 것처럼, 한반도도 곧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남아공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 후 한국 정부에 축하 편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며 워싱턴과 베이징, 도쿄를 언급하며 "여건이 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했다. 약속처럼 그는 직접 김 위원장을 만났다. 전 세계가 감동했다.
한반도의 긴장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해 전 세계가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모두 '판문점 선언' 당시 한 약속을 잘 이행한다면, 평화가 지속되리라고 믿는다.
프레시안 : 남아공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폐기한, 현재까지도 유일한 나라다. 어떤 과정을 거쳐 비핵화를 이루게 되었나.
사실 핵 개발은 냉전시대에 이뤄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공산정권 수립을 지원하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現 러시아)는 핵 강대국이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 등도 (공산 진영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민주화투쟁 단체와 공산국가 간의 동맹을 두려워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래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로부터 경제적 제재를 당했다.
남아공은 특히 소련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련의 공산 진영에 반대한) 자유화 투쟁을 많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당시 쿠바 군인이 앙골라에서 철수를 했고, 나미비아의 상황도 좋아졌다. 그래서 핵 폐기를 결정한 것이다. 또한 남아공이 세계적인 경제 제를 받고 있었던 것도 (핵 폐기를 결정한 요인으로)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넬슨 만델라가 투옥된 이후에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 저항하는 많은 투쟁이 있었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를 종식시키라는 요구가 많았다.
1976년 6월 흑인집단 거주지역인 소웨토 폭동을 계기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남아공을 (더욱) 압박했다. 내전의 위협과 외부의 압박 속에 1989년 취임한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와 같은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를 석방하는 한편, 핵 폐기를 비밀리에 결정하는 등 남아공 비핵화에 돌입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핵 폐기가 이뤄졌다.
남아공은 또 1993년 비핵화 관련한 법을 시행했다. 또한 1990년 이후 비핵화 모드는 계속 지속되었다. 국제 사회 또한 비핵화를 결심한 남아공을 (경제 제재를 해제함으로서) 지원했다.
석방된 넬슨 만델라가 1991년 ANC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클레르크 대통령과 협력해 모든 인종 대표가 참석한 '민주남아프리카공화국회의(CODESA)'를 두 차례개최하는 등 아프리카 비핵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1993년 남아공은 'WMD 비확산법'을 제정해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표명했으며, 같은 해 12월 넬슨 만델라와 클레르크 대통령이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4월 남아공 최초로 모든 인종이 참가한 총선거에서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며, 1996년에 '펠린다바 조약'을 성사시켜 아프리카 비핵지대를 이끌었다.
프레시안 : 한반도가 냉전이 남긴 사실상 마지막 흔적일 수 있을 것 같다. 냉전 시대가 끝날 무렵 남아공이 비핵화를 결정하게 된 대내외적 상황을 설명해 주셨는데, 북한과 남아공 상황을 단순 비교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한반도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혹은 비슷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노주코 글로리아 밤 : 냉전은 오래 전에 끝났다. 그러나 한반도는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긴장 상황은, 과거 남아공과 비슷한 상황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국제 사회가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고립되어 있다.
이 긴장이 안정될 때까지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남아공도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한반도 비핵화 역시 평화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지금처럼 대화한다면, 곧 안정과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북한 내부의 결정, 즉 지도자의 결정이 중요하다. 남아공이 그랬듯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폐기한 국가로서 남아공은 대량살상무기를 안전하게 둘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남아공 모델' 적용은 맞지 않다. 모든 나라가 특수한 맥락이 있고, (국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남아공 상황과 한반도 상황이 공통적인 것은 미국, 한국, 북한이 대화를 통해서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만델라의 날, 67분간 행동하자는 캠페인의 의미는?"
프레시안 : 7월 18일은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인데, 의미를 설명해 달라.
노주코 글로리아 밤 :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09년 유엔은 넬슨 만델라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정했다. 국제 사회가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에서 펼친 인종차별 반대와 인권 존중,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한 투쟁을 인정한 것이다. 매년 7월 18일은 그래서 넬슨 만델라처럼 '행동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날이다.
남아공 정부는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인 2018년 올해를 '넬슨 만델라의 해'로 지정했다. 그가 남긴 업적을 이어나가자는 메시지다.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라는 것이다. 우리는 넬슨 만델라처럼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노주코 글로리아 밤 : 할머니가 넬슨 만델라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할머니는 넬슨 만델라가 27년 동안 수감생활을 할 때 그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넬슨 만델라에 대해 알게 됐고, 할머니의 심정도 이해했다. 넬슨 만델라 석방 이후에는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개인적으로 넬슨 만델라와 가장 가까웠던 때는 2013년 12월 그의 장례식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면서다. 그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또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나에게나 남아공 사람들에게 단지 대통령이 아닌, 국부(國父)로 존경받고 있다.
프레시안 : '만델라의 정신'에 대해 설명한다면?
노주코 글로리아 밤 : 넬슨 만델라는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라며 "인간이 발전을 위해서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평화"라고 강조했다.
갈등은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은 상대방을 미워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적 취향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미워하는데, 이는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미움은 본성이라기보다는 학습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미움보다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무도 피부색, 배경, 종교 때문에 다른사람을 미워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미움은 배워서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미움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나하면, 사랑이 미움보다 더 인간의 마음에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 개인이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주코 글로리아 밤 :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의 취지는 행동하고, 각자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라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가 인권을 위해서 행동을 한 기간이 67년이다. 67년을 기념해서 오늘 하루 동안 67분간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다. 넬슨 만델라는는 대화를 통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했다.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에 무엇을 할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인류를 위해서 67분간 좋은 일을 하면 된다. 자유 의지로 다른 사람의 삶이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게 행동하면 된다.
주한 남아공대사관에서는 매년 7월 18일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67분간 봉사한다. 주한 대사로 부임한 첫해, 양로원을 갔는데 어르신들이 외국인과 이야기했다는 만족감에 행복해했다. 대사관뿐 아니라 대학과 기관에서도 매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을 통해 '만델라의 정신'이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매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만들자.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세상을 더 좋고 평화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만델라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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