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항마로 보수진영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손수조 바람'은 스스로 자초한 여러 구설로 잦아들고 있었다. 새누리당 조차, YS 전성기 이후 첫 부산 야당 3선이라는 기록을 향해 달리는 조경태 의원이 버티고 있는 사하을과 사상은 제쳐놓고 있었다.
'문재인이 당선되느냐'는 이제 아예 관심 밖이었다. 부산 경남 선거판 전체를 끌고가는 문재인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를 통해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싹수'를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 지역구에서 무리 없는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중평을 받고 있는 문재인은 이웃 선거구 뿐 아니라 김해로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었다. 게다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민주통합당의 내홍 뿐 아니라 관악을 파동으로 인한 야권 연대 위기 국면에서도 구원투수 노릇을 했다.
한명숙 대표의 권위가 손상된 민주당의 구심으로 급격하게 떠오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노출된다는 점에서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솔솔 들려오기 시작했다.
▲ 지역 특전사 예비역 봉사모임에 참석한 문재인. 여야 대선 후보군에서 뒷말 없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 유일하다ⓒ문재인 후보 캠프 |
임종석 전 사무총장의 거취, 혁신과 통합계 공천 문제 등으로 이해찬 전 총리과 한명숙 민주당 대표의 불화설이 수면위로 튀어올랐을 때 투입된 사람도 문재인이었다.
문재인의 서울 방문 이후 임 전 사무총장의 거취가 정리됐고 이어 "다시는 선거 안 나간다"던 이해찬 전 총리가 세종시에 직접 후보로 나섰다. "문재인이 나서니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진보성향을 갖고 있는 한 부산지역 언론인은 "문재인이 거물은 거물인가 싶다"면서 "문재인이 나서니까 뭔가 일이 풀리는 거 아닌가. 중앙에서도 문재인의 권위가 인정받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문재인의 일정이 상징적이다. 문재인은 이날 오후 김해를 방문해 민홍철(김해갑)·김경수(김해을) 후보를 지원 사격했다. 그는 "이번 총선거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심판이다"면서 "연말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 가늠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해에선 안철수 서울대 교수 이야기도 나왔다. 안 교수에 대한 비례 영입 시도 기사가 나온 직후였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안철수 원장과는 이명박정부 심판과 정권교체,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비전에 뜻을 같이 한다. 일종의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관계"라고만 말했지만 안철수 측과 문재인 쪽의 '라인'이 개통된 지는 꽤 됐다. 김해를 다녀온 문재인은 밤에 서울로 올라가 한명숙 민주당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연달아 만났다. 다음 날 이정희 공동대표는 서울 관악을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성추문 논란의 윤원석 후보 사퇴 소식이 들리기 전인 21일 저녁에도 문재인 측 관계자가 "윤원석은 곧 사퇴 발표가 나올 것이다. 이정희 대표 건은 조금만 더 두고보자"고 말했을 정도다.
현재 문재인 캠프에는 과거 여러 재보선,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들도 꽤 포함되어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비롯한 지명도 높은 인사들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같은 파워는 부산 선거판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30, 40대의 반응과 기대가 높았다. 30대 간부 공무원과 40대 초반의 의사도 "이명박은 물론이고 박근혜도 말 할 것도 없다. 문재인 아니면 안철수인데, 요새 보니 문재인이 힘이 있는 것 같더라"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중앙에서 힘 쓰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는 우려의 목소리
하지만 부산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한 후보는 "당 사정이야 알겠지만, 문 실장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면서 "부산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서도 낙동강 벨트에만 집중하다보니 나머지 지역은 너무 밀린다"고 우려했다.
이 후보는 "고리 원전 파동의 직접적 영향권인 동부 해안 쪽에서 우리 후보들이 전혀 이슈파이팅을 못하고 있다. 연제, 동래, 금정 등 중앙 라인도 마찬가지다"고 우려했다. 양산과 김해까지 포괄하는 낙동강 벨트에서도 문재인 본인과 문재인 영향권 밖인 조경태를 제외하곤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새누리당 세가 강한 부산 중구에서 만난 한 40대 자영업자는 "가만히 보고 있다. 문재인이 몇 명이나 당선시킬지…"라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는 박근혜다"는 바닥여론이 더 우세한 것은 분명했다. '선루프 선거법 위반 논란'이 나온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사상 방문에 모인 인파를 언급하면서 민주당의 한 인사는 "박근혜는 박근혜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새누리당 주변에선 "박 비대위원장이 이번 선거 기간 중 일주일 정도는 부산 주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호남과 대구경북을 일단 제외시켜 놓으면 총선 후보들의 득표율을 가장 효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곳이 부산이란 말이다. 게다가 문재인 바람을 미리 미리 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중 과제에 직면한 문재인
힘이 커지면 잡음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민주당의 부산 지역 후보 중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나온지 오래인데 문 실장이 이제 완전히 수면위로 올라온 것 아니냐.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명도가 극히 낮은 배재정 전 부산여기자회 회장이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7번으로 배정받은 게 그렇다. 문재인 측은 "박근혜 지지가 센 부산에서도 정수장학회 이슈는 (박근혜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더 높은 거의 유일한 사안이다. 배 후보가 이 문제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대선용'이란 말이다.
이에 대해 한 언론계 인사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중요한 것을 다 안다. 하지만 언론사 파업 와중에 언론노조와 언론계가 다같이 공식적으로 추천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도 20번 대 안에 못 들었는데 정수장학회에 대한 상징성만 있는 배 전 지회장이 그렇게 상위순번을 받은 것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4대강 반대 운동 몫이나 보편적 복지를 주창해온 쪽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나타났다.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명숙-486'라인에 대한 집중 포화 이후 한 대표가 흔들리면서 문 실장 쪽으로 급격하게 힘이 쏠리고 있다"면서 "선대위원장 자리에 이름은 안 올렸지만 뭔 일 터지면 또 '문재인 부르자' 이야기 나올텐데 이건 당에도, 문 실장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현재까지는 정치적 영향력은 확대하면서 잡음 수위는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의 과제는 두 가지로 늘어버렸다. 첫째는 부산에서 박근혜에 대항해 어느 정도의 저력을 발휘하는 지다. 두 번째는 민주당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보이는 손'이 되버린 이후 상황의 관리다. 정치신인이나 다름없는 문재인에게는 둘 다 쉽지 않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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