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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박경신의 행위가 용인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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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한' 박경신의 행위가 용인되어야 하는 이유

[시민정치시평] 박경신의 죄를 국민에게 물었는가?

만약 그림을 검열하는 나라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나라에서는 검열에 의해 부적당하다고 판단된 그림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그림에 대한 검열이 문제 있다고 판단한 검열자가 있었다. 이 검열자는 이 그림에 대한 검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검열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그림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검열자가 이 그림에 대해,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한 검열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검열자의 설명만을 듣고 그림에 대해 상상해봐야 정확하게 그림에 대해 알 수도 없을 것이고, 또 사람들이 검열자의 설명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리는 그림은 사람에 따라 천양지차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검열자는 용기를 내서 이 그림을 인용하여 검열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그림을 검열하는 당국은 이 글에 대해서도 이 그림을 검열했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 검열하고, 심지어는 형사처벌까지 하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당국이 유통되지 않게 막으려는 그림은 어떤 이유에서든 유통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검열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국민에서 해당 검열이 타당한지 문제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일정정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두 입장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고르라면 바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입장 중에서 전자의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검열당국이 검열을 함에 있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것이다. 검열당국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편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어떤 사람도 그 검열당국이 행한 검열을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검열당국이 사용하는 검열기준은 현재의 가치관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후 문화가 발전할, 그리고 발전해야 할 방향에도 부합해야 할 것이다. 검열기관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더라도 현재의 주류적인 가치관만을 고집한다면 새로운 문화적 조류가 탄생되는 것을 막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쉬울까? 완전무결한 인간들로 검열당국을 구성한다고 해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당장은 걱정이 될지라도 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전자는 애초부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기에 우리 헌법도 검열을 금지하고 있고,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후자가 선택되어야 할 이유로 전자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외에 제기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집단지성이다. 검열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표현물의 유통 여부 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을 통해 결국 한 사회의 성원이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결정되고, 이는 당연히 한 사회의 성원의 사고의 폭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권력에 의한 검열은 금지되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검열과 비슷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이는 민주적으로 통제될 필요가 있다. 누가 우리의 사고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따라서 검열의 타당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국민에게 어떤 검열이 타당한지 물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검열이 새로운 문화적 조류의 탄생을 막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의 발전방향에 대한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것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수의 전문가가 아니라 집단지성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한 사회에서 형성되는 문화는 바로 그 사회의 집단지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이 열린 토론의 공간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형성하는 집단지성은 결국 다수의 결정이라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는 점도 집단지성에 의해 검열 혹은 검열과 비슷한 시스템이 운영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로 후자의 입장을 선택한다면 위 검열자는 처벌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든 '그림을 검열하는 나라'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최근 검찰이 7개월이나 뒤늦게 기소해 화제가 되고 있는 박경신 교수 사건은 비록 검열에 대한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표현물이 음란물로 판정되면 유통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위에서 예를 든 '그림을 검열하는 나라'의 검열과 유사하다. 검열자(방송통신심의위원)인 박교수는 검열(방송심의, 인터넷심의)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하여 검열(인터넷 심의)의 대상이 되었던 사진을 인용하여 쓴 글이 음란물을 유포했다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던 것이다. '그림을 검열하는 나라'의 예에서 본 바와 같이 심의는 불완전한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고, 집단지성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어떤 검열(심의)이 문제있는지 물어보거나 혹은 국민들에게 어떤 검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허용되어져야 할 것이고, 고로 박 교수의 행위도 용인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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