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를 위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간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를 두고 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 후 "진전을 거뒀다"고 한 것과 달리 북한 외무성이 미국 태도에 유감을 표명하는 등 북미 양측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자 7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은 대체적으로 이번 방북 성과에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하지만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우려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 외무성이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의 태도와 입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밝힌 데 대해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을 직접 반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WP는 이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길어지고 어려울 것이라는 뚜렷한 신호로 평가하면서 "평양의 의도는 물론 담화가 일시적인 표출인지 또는 북미 간의 깊은 오해를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WP는 북한 외무성의 유감 표명과 방북기간 폼페이오 장관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면담이 불발된 것을 거론하며 "비핵화에 대한 공유된 이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돌파구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보다) 확실히 덜 낙관적이었다"면서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세 번째 방북이 "가장 덜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미의 설명이 충돌하면서 핵 협상이 균형을 잃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협상의 운명이 의문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 방송은 "북한이 협상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협상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WSJ에 "아주 나쁜 신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끝인가? 알 수 없다"면서 "그들(북한)은 미국이 완전히 기대를 낮추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전 특별대표는 "그들(북한)의 견해에서, 그들은 뭔가를 주고 있다(양보)고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워싱턴이 일관성을 갖고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WP에 "평양에서의 협상이 잘 안 된 것이 확실하다"면서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비핵화 의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움직임을 일부 요구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분노'를 자아냈다"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가 한동안 얘기해왔던 북한의 게임 플랜과 의도를 지금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와 미러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일정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으로선 이번 방북을 기회로 추가 협상을 실무진에게 넘기길 기대했겠지만 북한 외무성의 담화 발표로 이런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북미 간의 불협화음이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북한의 핵 위협은 끝났다고 자신했지만 양국이 어떻게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출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돼지에 립스틱을 바를 수 없는 법"이라며 "추가 고위급 회담에 대한 약속도 없이 오직 실무회담에 관한 이야기만 있었으며 그마저도 별로 얻은 게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 국가이익센터(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일종의 돌파구를 기대했지만 북미는 단지 대화를 계속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폭스뉴스 기고문을 통해 "폼페이오가 빈손으로 북한을 떠났다"며 "이제 트럼프 행정부에는 세 가지 옵션만 남았고 하나같이 유쾌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옵션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를 없애기 위한 총 군사 공격 ▲북한에 대한 봉쇄 정책 또는 '최대 압박' 전술 구사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더 큰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로 요약된다.
그는 '군사 공격' 옵션의 경우 아무리 미국이 초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라고 해도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대 65개의 핵무기를 모두 파괴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수라고 평했다. 북한이 남은 핵무기와 막대한 양의 생화학 무기를 동원해 맞공격에 나설 수 있어서다.
미국을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단절시키는 '최대 압박' 전략이 제대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대규모 관세 부과로 언짢은 중국이 미국을 도와 북한을 압박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옵션을 선택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 모두에서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지적됐다.
대신 미국은 중국의 세력 확장에 맞서 아시아에서의 외교적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체제 보장 우려를 거두고, 북한으로 인해 촉발된 미국의 안보 위협은 완전히 해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 카지아니스 국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옵션은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도 핵무기 보유를 시도할 여지를 줘 결국 아시아 지역의 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부정적 여론이 강하지만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술일 뿐이라며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동행한 타라 팔메리 ABC방송 기자는 자신의 개인 트위터에서 "북한 정부가 거친 성명을 내놓은 것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한다"며 "그것을 하나의 협상 전략으로 본다"고 전했다.
WP도 북한의 반응을 판에 박힌 협상술로 보며, 놀랄 이유가 없다고 한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수차례 방북해 북한 당국과 협상을 벌인 경험이 있는 빌 리처드슨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판돈을 올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깎아내리고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것이다. 그들은 이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고 매우 대가가 클 것이며 내놓을 것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고위 외교관은 "북미 양측은 후속 협상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북미가 이번 협상에서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급 회담도 조만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또 미군 유해의 송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2일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창립자인 마이크 앨런은 이번 수가 성공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를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질상 아주 싫어하는 '단기간의 후퇴와 모멸을 견딜 의지'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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