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12월부터 시작되는 보상 계획만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지난해 경제 한파로 보상이 한 번 연기된 바 있는 인천 검단 신도시에 7조 원이 풀릴 예정이고 경기 평택 고덕국제화 지구에 예정된 3조5000억 원을 합치면 두 곳만 10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 보금자리주택지구 6조 원, 4대강 사업 2조8000억 원도 기다리고 있다.
1조2500억 원으로 추정되는 고양 지축지구, 경기 화성 병점·양주 광석지구 등 비교적 소규모 보상과 내년 상반기에는 하남 미사지구 보상도 예정되어 있어 2010년 말까지 예정된 토지 보상금의 규모가 40조 원이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 검단 신도시와 보금자리주택 등 12월부터 시작될 토지보상은 내년 말까지 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
"노무현 정부 토지보상금 98조…24%가 수도권 부동산에 몰려"
이번에 풀릴 보상금이 얼마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11월 들어 부동산 시장이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한풀 꺾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보상금이 무조건 부동산으로 재투자 되는 것이 아니라 펀드나 부동산의 수익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며 "내년 2월 이후 부동산 시장에 계절적 수요가 생겨나면 단기 유동자금 형식으로 묻힌 보상금이 몰려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간에 막대한 토지 보상금이 풀리면 노무현 정부 시절 혁신도시 등의 개발 사업으로 풀린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던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의 토지보상비는 98조5743억 원으로 김대중 정부의 37조1835억 원, 김영삼 정부의 43조7347억 원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다.
2006년에만 30조 원에 가까운 보상비가 대부분 현금으로 풀리며 당시 부동산 시장의 폭등에 일조했다는 점이 이러한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토지보상금 중 현금 비중이 96%였고 25조 원이 풀린 2007년에도 91%에 달했다. 보상금이 강남3구를 비롯한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버블'을 키웠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2006년 상반기 보상금 중 37.8%만 부동산 거래에 쓰였고 지방에 풀린 보상금 중 수도권의 부동산 매입에 쓰인 돈은 8.9%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명대 환경정의 대표(단국대 교수)는 보상금 수령자 가족의 부동산 거래까지 합치면 전체 보상금의 48.9%가 부동산 거래에 쓰였고 보상금 총액의 24.2%가 수도권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왔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렇게 몰린 보상금으로 집값뿐 아니라 토지가격 역시 뛰어오를 수 있다. 국토해양부의 연도별 지가변동현황에 따르면 1990년대 대체로 안정적이었던 지가는 2002년 이후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하던 혁신도시 사업 등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4대강 사업·보금자리주택 등의 개발이 더해지면서 토지 보상금을 노린 땅 투기가 살아날 수 있다.
▲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의 지가변동률, 2000년 이후 노무현 정부의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100조 원에 가까운 토지보상금이 풀렸고 그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전국의 땅값은 큰 폭으로 올랐다. ⓒ국토해양부 |
대토·채권보상 '긍정적 평가'…"근본적인 개발 정책 재고 필요해"
기획재정부가 12일 대토보상과 채권보상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토지보상금이 부동산에 재투자되어 부동산 거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상금이 수도권으로 몰려와 강남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뛸 경우 투기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도입되어 작년부터 시행된 대토보상은 현금 대신 사업지구에 조성된 토지로 보상하는 제도다. 정부는 현재 330㎡인 대토면적 상한을 990㎡까지 늘려서 공동주택용지로도 보상이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동시에 개발전문부동산투자회사(개발리츠)를 설립해 대토보상을 받은 이들이 토지를 현물 출자해 개발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대토보상 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1년 후에 현금보장으로 전환할지 선택할 수 있는 '대토보상 옵션제'도 도입한다.
채권보상 역시 기존의 3년 만기 국고채보다 금리가 높은 5년 만기 채권을 신규 발행해 유인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수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율을 2012년까지 한시적으로 40%~50%까지 인상하고 감면한도 역시 연간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확대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5.6%에 그친 대토 및 채권보상률이 15~20%로 높아질 것"이라며 관련 법령을 개정해 내년 초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개발리츠 사업은 동탄2지구동 2기 신도시에서 시범 시행한 후 다른 신도시나 보금자리 주택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의 정책이 실제 보상에서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는 보상가격 산정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보금자리주택 1차 지정지구인 세곡지구의 김윤석 토지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원칙적으로는 대토보상이 좋은 점도 있지만 조성원가 등 감정가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확실하게 정해진 여론은 없다"며 "차후 협의자가 구성되고 논의가 더 이루어져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정부가 고민을 한 흔적은 보이지만 실효성이 있는 대책인지는 따져볼 문제"라면서도 "현금으로 지급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완화하는 효과는 거둘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토보상 등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규모 건설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선덕 소장은 "우리나라 토지 수용 과정에서 보상비가 높은 이유는 당국이 빠르게 사업을 추진하려다보니 주민들의 소송 등 마찰을 피하기 위해 보상비를 올려 책정하기 때문"이라며 "이 보상금이 부동산 상승기에 유입되면 다시 또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대토보상은 토지 가격 변동에 대한 위험을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활성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이제 막 제도적 근거를 만들었을 뿐 장기적으로는 일괄적인 개발에서 다시 소규모 개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남PB 열풍…토지보상금 업고 '강남 불패' 재현? 강남을 노린 은행들의 채비가 심상치 않다. 올 상반기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집값이 2006년 고점에 근접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가 살아나며 '강남 부자'들의 움직임이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보금자리주택 등 강남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한 규제가 해제되면서 막대한 토지 보상금이 강남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근처에서 은행 간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곡역 근처에 위치한 군인공제회관과 아카데미 스위트 빌딩에는 SC제일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시티은행 등 국내 대부분의 은행의 영업소가 밀집해 있고 이곳에서 대치역까지 뻗어 있는 길에도 하나은행, 우리은행 복합금융센터 등의 금융기관들이 늘어서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 은행들이 강남에 프라이빗 뱅크(PB, Private Bank)를 잇따라 늘리면서 고객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 9월 압구정동에 이어 10월 도곡동에 PB를 추가 개점했다. 기업은행 역시 SC제일은행 PB가 들어선 군인공제회관 바로 옆에 위치한 아카데미 스위트에 PB센터를 열고 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이 장악하다시피 했던 강남의 PB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존의 PB들도 강남3구를 중심으로 PB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대응하고 있는 추세다. 금융위기를 맞으며 움츠러들었던 은행들이 이처럼 '강남 부자' 공략에 나선 것은 보금자리주택 등 강남을 중심으로 한 개발 열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토지보상이 시작될 강남 그린벨트의 소유주 상당수가 강남의 자산가들인 만큼 토지보상금의 운용이 강남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