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볶고 튀기고, 프린터가 음식을 인쇄한다. 부엌에도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들어왔다. 공상처럼 들리지만 상당 부분은 이미 현실이다. 다만 이 기술들의 진짜 쓸모는 흔히 떠올리는 화려한 인쇄 요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부엌의 변화는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난다. 첫째는 조리 로봇이다. 튀기고 볶고 커피를 내리는 반복 작업을 기계가 맡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고 사람이 부족한 자리를 메운다. 일본의 한 중식 체인은 자동 조리 로봇을 500곳이 넘는 전 매장에 들였고 한국에서도 치킨을 튀기고 커피를 만드는 로봇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은 그만큼 더 복잡하고 섬세한 일에 집중하게 된다.
둘째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향미 성분을 분석해 서로 어울리는 재료의 조합을 제안한다. 향기 화합물의 궁합을 계산해 새로운 조합을 추천한 IBM의 요리 인공지능이 이른 사례다. 더 실질적인 쓸모는 운영에 있다. 판매 데이터를 학습해 얼마나 팔릴지를 예측하면 지나치게 많이 준비했다가 버리는 음식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 수요 예측을 도입한 식당에서 하루 음식물 쓰레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알레르기에 맞춰 식단을 짜 주는 서비스도 이 흐름 위에 있다.
셋째가 3D 푸드프린팅이다. 퓌레나 반죽처럼 부드럽게 만든 식재료를 노즐로 짜내어 층층이 쌓아 원하는 모양으로 음식을 '인쇄'하는 기술이다. 초콜릿 장식이나 고기의 결을 흉내 내는 데 쓰인다고 알려졌지만 이 기술의 가장 값진 쓸모는 따로 있다.
바로 고령자와 환자를 위한 맞춤식이다. 나이가 들거나 병을 앓으면 씹고 삼키는 일이 어려워지는 연하곤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흔히 모든 것을 갈아 죽처럼 만든 음식이 제공되는데, 보기에도 입맛에도 좋을 리 없다. 3D 프린팅은 이 문제를 다르게 푼다. 부드럽게 가공한 재료로 원래 음식의 모양과 색을 살려 내면서도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준다. 독일에서 시작된 스무드푸드가 대표적이고 한국에서도 전복 같은 재료로 노인을 위한 프린팅 원료를 개발해 왔다. 여기에 개인에게 필요한 열량과 단백질을 정밀하게 배합할 수도 있다. 먹는 일이 힘겨워진 이에게 먹는 즐거움과 존엄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이 기술의 진짜 얼굴이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3D 프린팅은 아직 속도가 느리고 쓸 수 있는 재료가 제한적이며 값도 비싸다. 자동화가 늘수록 조리의 손맛과 일자리를 둘러싼 고민도 커진다. 기술이 향과 온기, 사람이 차려 주는 밥상의 자리를 통째로 대신하기는 어렵다.
부엌의 기술은 화려함이 아니라 '누구의 어떤 문제를 푸는가'로 그 값이 매겨진다. 낭비를 줄이고 일손을 덜며 무엇보다 씹기 힘든 이에게 다시 먹는 기쁨을 안겨 줄 때, 부엌의 인공지능과 프린터는 미래의 밥상에서 제 몫을 한다. 도구는 도구의 자리에 두고 중심에는 언제나 먹는 사람을 놓는 것. 첨단 기술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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