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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조선 후기 국가 운영 매뉴얼 '승정원 업무 규정'…『은대편고』 8년 만에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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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조선 후기 국가 운영 매뉴얼 '승정원 업무 규정'…『은대편고』 8년 만에 완역

2001년 『승정원일기』 연구에서 시작해 25년 만에 결실…승정원 3대 업무지침서 번역 완결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업무 규정과 행정 관행을 집대성한 『은대편고』가 8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출간됐다. 왕명 전달부터 인사·재정·의례·외교·군사·사법·과거시험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중앙정부가 실제로 움직인 절차와 선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자료다.

태학사는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은대편고 어휘사전』으로 구성된 전 2권 세트를 15일 발행한다고 밝혔다. 『교점역주 은대편고』는 1488쪽, 『은대편고 어휘사전』은 39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번 출간은 단순히 한 권의 고전 문헌을 번역한 데 그치지 않는다. 2001년 『승정원일기』 정보화 사업을 계기로 시작된 연구와 강독, 번역의 축적이 25년 만에 하나의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어휘사전, 오른쪽은 2권1세트. ⓒ

이를 기념해 (사)은대고전문헌연구소는 12일 오후 서울역 인근의 한 공유사무실에서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은대편고 어휘사전』 출판기념회를 갖고 4반세기에 걸친 대작업의 완결을 알렸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번역에 참여한 연구진과 조준희 이사장(전IBK기업은행장, YTN대표), 조민재 소장, 조병섭 전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 김흥식 태학사 사장, 이규옥 전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본부장, 전경목 전 소장, 이의강 전 원광대 교수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은대(銀臺)’는 조선시대 승정원을 일컫는 별칭이다. 승정원은 여섯 승지가 국왕의 명령을 출납하고 각 관청과 신하들이 올린 문서를 처리했으며, 국왕과 신하의 접견을 주선하고 그 대화 내용을 기록하던 기관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승정원일기』도 이들의 일상 업무에서 탄생했다.

막중한 국정 업무를 일관되게 처리하기 위해 승정원에는 업무 지침과 선례가 필요했다. 『정원고사』, 『은대편고』, 『은대조례』는 이러한 승정원의 주요 업무 지침서다.

이번에 번역된 『은대편고』는 헌종 연간에 편찬된 문헌으로, 세 자료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구체적인 실무 편람으로 평가된다. 승정원의 육방 체제에 따라 이방고·호방고·예방고·병방고·형방고·공방고로 나눠 업무를 정리했고, 특정 승지방에 속하지 않는 공통 업무는 별도의 ‘통고’에 담았다.

단순히 업무 규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됐는지,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완역의 출발점은 2018년이었다. 대표 저자인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는 머리말에서 자신과 승정원 업무 지침서의 인연이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 정보화 사업 참여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12일 열린 '교점역주 은대편고' 출판기념식에서 출간된 책에 대한 헌정식에 이어 번역에 참가한 연구진과 조준희 이사장, 조민재 소장, 명예교수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당시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강독을 시작한 『은대조례』는 2010년 은대학당 설립 이후 강의 교재와 번역 작업으로 이어졌고, 2012년 한국고전번역원을 통해 출간됐다. 이어 『정원고사』 역시 은대학당의 강의와 수강생들의 번역, 감수와 해설을 거쳐 2015년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결실을 봤다.

하지만 마지막 과제인 『은대편고』는 앞선 두 문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강욱 명예교수는 『은대편고』가 앞선 두 문헌보다 분량이 10배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이어서 쉽게 착수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결국 2018년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산하 조선시대법전강독회에서 본격적인 강독과 번역이 시작되면서 8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번역 작업에는 모두 27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5개 팀으로 나눠 이윤희 선생이 이방고·호방고, 조경임 선생이 예방고, 추소령 선생이 병방고, 이상설 선생이 형방고·공방고를 각각 맡았다. 이강욱 명예교수는 예방고와 병방고의 과시(科試), 그리고 통고 부분을 담당하면서 각 팀의 자문과 교열도 병행했다.

2022년 말까지 이어진 강독과 번역을 토대로 2023년부터는 본격적인 감수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오원경 선생의 표점 교열과 번역 윤문, 윤명란 선생의 교정, 조미은 선생의 해제 등이 더해지면서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교점역주 은대편고』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은대편고』의 여러 이본을 비롯해 『승정원일기』, 『일성록』, 『정조실록』 등의 관련 기록과 대조해 오자·탈자·연자·도자 등을 바로잡았다.

각 조항에는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제시하고 문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석을 덧붙였다.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했지만 제도사적으로 정확한 의미가 필요한 전문 용어는 지나치게 현대어로 바꾸지 않았다.

▲사단법인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조민재 소장이 12일 열린 출판기념식에서 앞으로 2030년까지 조선시대 경국대전과 대전통편 등 4대 법전 번역사업 지속추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특히 이번 교점 과정에서는 방대한 역사 용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책에 삽입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주석으로 독서의 흐름이 끊길 수 있고, 반대로 등장하는 어휘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불편도 컸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정원 관련 지식을 풀이하는 별도의 독립 사전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함께 출간된 『은대편고 어휘사전』이다.

『은대편고 어휘사전』은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조선시대 제도·행정 용어를 다룬 독립 사전이다.

연구진은 ‘가승지’, ‘감결’, ‘각군문’, ‘대리청정절목’, ‘표신’, ‘해유’ 등 본문에 등장하는 전문 역사 어휘 약 1,200개를 별도로 추렸다. 한자 뜻만 풀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해당 용어가 어떤 제도 안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사용됐는지를 설명했다.

표제어는 가나다순으로 배열했으며, 각 용어가 『은대편고』의 어느 편과 조항에 등장하는지도 표시했다. 이에 따라 독자는 어휘사전과 본문을 오가며 용어의 의미와 실제 용례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원문을 읽으면서 매번 역사 용어를 별도로 찾아야 하는 수고를 줄이고, 『은대편고』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이번 출간으로 ‘승정원 3대 업무 지침서’의 번역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은대고전문헌연구소는 앞서 정조 연간 승정원의 업무 사례와 국왕의 전교를 정리한 『정원고사』와 고종 연간 승정원의 업무 규정을 정리한 『은대조례』를 번역·출간했다.

『정원고사』가 정조 연간의 전교와 업무 사례를 중심으로 승정원의 규범을 보여 주고, 『은대조례』가 고종 연간의 업무 규정을 간결하게 정리한 책이라면, 『은대편고』는 그 사이 축적된 실무 규정과 선례를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다.

세 문헌을 함께 읽으면 승정원의 업무 규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축적되고 변화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가 매일의 국정 운영을 시간 순서로 기록한 자료라면, 세 업무 지침서는 그 기록의 배후에서 작동한 규정과 관행, 행정 원리를 보여 주는 셈이다.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가 12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

이강욱 명예교수는 2001년부터 이어진 승정원 관련 문헌 연구와 번역이 수많은 연구자와 강독 참여자들의 노력 속에서 이어져 왔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은대편고』 완역이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고전 번역의 실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 명예교수는 머리말에서 “조선시대사를 전공하는 학자들과 고전 번역의 실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혜안을 주는 소중한 지침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출간의 의미는 연구소와 연구자들이 직접 쓴 발간사와 격려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은대고전문헌연구소 조민재 소장은 『은대편고』를 단순한 승정원 업무 지침서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법전과 법전 사이의 시대적 간극을 메우면서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실제 운영을 이해하게 하는 기본서라고 평가했다. 『은대조례』와 『정원고사』에 이어 『은대편고』까지 번역·출간함으로써 승정원 3대 업무규정집을 모두 세상에 내놓게 된 데 대해서는 “실로 넘치도록 기쁘고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조 소장은 특히 연구소와 은대학당의 기반을 닦고 이번 작업을 이끈 이강욱 명예교수의 오랜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이 명예교수가 세운 연구 기반 위에서 지난 16년 동안 500여 명의 동학과 후학이 강독과 연구에 참여했고, 그 가운데 전문 번역가들이 성장해 이번 완역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준희 이사장과 학계 인사들의 지원, 특히 IBK기업은행의 후원과 조 이사장의 지원·주선이 번역과 출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조준희 이사장 역시 격려사에서 고전 번역을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무를 옮겨 심는 일”에 비유했다. 긴 시대의 강을 건너온 언어와 사상을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토양에 옮겨 심기 위해서는 한 단어, 한 문장에도 수많은 고민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8년 동안 이어진 『은대편고』 번역 작업을 연구진이 정성껏 옮겨 심은 거목에 비유하면서, 연구소와 학당의 연구자들이 쌓아온 성과가 현대사회에 뿌리내리고 우리 문화의 바다로 널리 흘러가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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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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