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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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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특별하다"

"수장(首長) 무덤으로 추정하기보다는 제단식 지석묘로 파악해야 할 것"

"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조사된 최대형의 상석(上石)과 묘역(墓域)을 갖춘 특별한 존재이다. 지석묘 축조 마지막 단계에 이렇게 큰 상석과 묘역을 만들면서도 매장주체부와 유물은 매우 빈약하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는 최근 '제단식 지석묘로 본 김해 구산동 지석묘'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구산동 지석묘를 토착 수장묘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외형적인 규모와 매장주체부·유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단식 지석묘로 보인다. 더구나 매장주체부의 조성 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했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 ⓒ프레시안(조민규)

이 교수는 또 "구산동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전환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창원·김해·경주 등 동남부권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즉 세형동검문화가 한반도 서남부지방보다 늦게 나타난 영남 동남부지역 일대는 기념물적 성격의 지석묘 축조가 늦은 시기까지 지속된다는 것.

그러면서 "거대 종교적 기념물을 만든 시점은 세형동검문화 유입시기 이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이 시기에 지석묘를 축조했던 집단은 새로운 이질적인 문화 요소(세형동검문화 및 철기문화)와 만나게 된다"면서 "토착 우두머리들은 개인의 능력과 사적 소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종래 사회구조를 지탱했던 공동체 유형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하면서 제단 기능을 갖는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희 교수는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창원 덕천리 1호 지석묘 뿐만 아니라, 삼각구연점토대토기 단계의 경주 전촌리 묘역식 제단 등의 존재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의례를 중시한 것이지 개인 수장의 권력 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거대 묘역식 제단이 있는 김해 구산동 지석묘를 수장(首長)의 무덤으로 추정하기보다는 제단식 지석묘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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