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글에서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외국인에게 대전의 빵과 칼국수가 '대한민국 대전의 음식'으로 인식된다는 것, 그래서 '밀의 도시 대전'이 세계화의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캐릭터를 입힌다고 대전의 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땅과 물과 발효 문화가 만드는 고유한 맛, 곧 '대전의 테루아'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그 테루아를 어떻게 세계로 보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구호가 아니라 단계를 밟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다른 지역 음식들이 걸어간 길에는 분명한 공통의 순서가 있다. 그 길을 대전의 언어로 옮겨 본다.
1단계 테루아를 '과학'으로 증명한다
세계 시장에서 지역 음식이 프리미엄을 얻는 출발점은 '왜 이 맛이 이 지역에서만 나는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다. 와인이 그랬고, 순창고추장과 보성녹차가 그랬다. 막연한 자랑이 아니라 근거가 필요하다.
여기서 대전의 강점이 빛난다. 대전은 과학도시다. 지역 발효종이 만들어내는 풍미를 미생물학으로 규명하고 대전의 물과 지역 밀로 구운 빵의 향미 성분을 분석하며 발아·발효를 거친 밀의 기능성을 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는 연구 역량이 이 도시에 있다.
'대전의 빵은 이런 발효와 이런 물, 이런 밀이 만나 이런 향을 낸다'고 과학으로 말할 수 있을 때 테루아는 비로소 세계가 인정하는 자산이 된다. 이것이 모든 단계의 토대다.
2단계 이름을 새기고, 이야기로 감싸고, 제도로 보호한다
다음은 그 맛에 '대전'이라는 이름과 이야기를 입히는 일이다. 일본 나가사키 짬뽕과 삿포로 라멘이 도시 이름을 음식에 새겨 세계로 나아갔듯, 대전의 음식에도 도시의 이름과 서사가 필요하다.
전쟁의 궁핍을 나누던 밀가루, 철길을 타고 모인 팔도의 손맛, 대전의 밀 음식에는 이미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제도적 보호가 더해져야 한다. 지리적표시제(GI)가 대표적이다. 2002년 보성녹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는 2024년 4월 기준 105건의 지리적표시가 등록되어 있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그 지역의, 그 지역만의 산물'임을 법으로 보장하는 이 장치는, 프랑스 샴페인이나 파르마 햄처럼 '원산지가 곧 품질 보증'이 되게 한다. 대전의 지역 밀과 그것으로 만든 식품을 이 틀에 올리는 일은 모방을 원천에서 막는 가장 확실한 방패가 된다.
3단계 외국인이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음식관광 클러스터
세계화의 다음 무대는 관광이다.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히는 프랑스 부르고뉴는 포도밭 투어와 와인 시음, 지역 레스토랑을 하나의 패키지로 엮어 연간 수백만 명을 불러 모은다. 핵심은 '생산지–체험–식탁'을 잇는 것이다.
대전도 같은 방식으로 묶을 수 있다. 지역 밀밭과 제분·제빵 과정을 보고 체험하는 코스, 칼국수와 빵을 직접 만들어 보는 쿠킹 클래스, 빵지순례와 칼국수 거리를 잇는 미식 동선, 그리고 '먹거리 과학'을 보고 배우는 박람회와 포럼까지.
이미 전주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2012)로 음식을 도시 브랜드의 중심에 세운 전례가 있다. 대전은 '밀'과 '과학'이라는 전주와도 겹치지 않는 자기만의 패를 들고 있다.
4단계 세계로 내보낸다: 식탁과 화면, 두 갈래로
마지막은 대전 밖으로,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식탁의 길이다. 해외 한식당과 협업해 대전의 메뉴를 올리고, 지역 식재료와 가공식품을 수출하는 것이다.
지역 식재료의 수출은 이미 현실이다. 전남 김은 연간 수출액이 2023년 약 7억 9천만 달러에서 2025년 10억 달러를 넘어섰다(해양수산부·업계 자료). 대전의 발효·기능성 밀 가공식품도 K-푸드 흐름을 타고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화면의 길이다. 음식·먹방은 지금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이고, K-콘텐츠를 통해 한식의 인지도는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직접 오지 않아도 화면으로 먼저 만나게 하는 디지털 콘텐츠 전략은, 작은 예산으로 가장 멀리 가는 길이다.
누가 이 길을 끌 것인가
문제는 이 네 단계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학적 연구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일이고, 브랜드와 관광은 또 다른 부서의 일이며, 수출과 콘텐츠는 기업과 민간의 영역이다.
이 흩어진 일들을 하나의 목표 '대전의 음식을 세계로' 아래 꿰어낼 전담 주체가 없으면 좋은 구상도 결국 흩어지고 만다. 대전 먹거리의 연구·정책·마케팅·세계화를 한곳에서 끌고 갈 구심점이 필요한 이유다.
세 편에 걸쳐 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전은 '밀의 도시'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고, 그것을 테루아라는 본질로 깊게 만들 수 있으며, 이제 그 본질을 과학·브랜드·관광·수출의 단계를 밟아 세계로 보내면 된다.
외국인이 '대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떠올리는 날, 밀의 도시 대전은 비로소 세계 지도 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게 될 것이다. 그 변화는, 우리가 지금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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