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을 하자 "헌법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며 "6월 3일 개헌 국민투표 시행을 위한 절차는 오늘로서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우 의장은 이날 오후 2시께 본회의 개의를 선언한 뒤 이례적으로 17분에 걸쳐 의장 인사말 형식의 연설을 하며 국민의힘을 맹비난했다.
우 의장은 "오늘 본회의를 소집하면서 어제 (투표)불성립한 헌법개정안을 다시 한 번 투표를 하자고 했는데 국민의힘에서 무제한 토론을 신청했다"며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헌법개정안은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없는 것인데 여기에다 무제한토론을 (신청)하는 것은 무제한 토론 제도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먼저 지적했다.
우 의장은 그러면서 "어떻게든 39년 만의 개헌을 무산시키지 않기 위해서 오늘 다시 본회의를 열었는데, 이렇게 필리버스터로 응답하는 걸 보니까 더 이상의 의사진행이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의장은 헌법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 오는 6월 3일 개헌 국민투표 시행을 위한 절차는 오늘로서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우 의장은 "국민의힘이 39년만에 하는 헌법개정 투표에 어제는 참여하지 않았고, 오늘은 무제한 토론을 하겠다고 해서 더 이상 헌법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고 오늘로서 이 절차를 중단한다. 국민투표로 국민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선거인단에 등록한 재외국민 여러분과 관계기관에도 유감의 뜻을 표하고 국회의장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우 의장은 "매우 아쉽다. 정말 몹시 안타깝다"며 이번 개헌안에 대해 "불법 비상계엄을 꿈도 못 꾸게 하는 개헌, 군사독재를 물리친 부마항쟁과 전두환 내란을 극복한 5.18민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어서 우리나라의 민주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는 개헌"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개헌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분명하고, 쟁점이 없어서 내용에 반대할 것도 없다고 하면서, 여야 간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하고 사실상 내용에 대한 반대가 전혀 없는 개헌안을 놓고도 개헌의 문을 열지 못했다"며 "정략과 억지 주장을 끌어들여 39년 만의 개헌을 무산시킨 국민의힘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특정 정당에 대해 이 정도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 의장은 "이번 개헌안은 전부 다 국민의힘이 국민들께 약속했던 내용들"이라며 "'졸속 개헌'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의장이 숱하게 제안했다. 그때마다 거부하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 국민의힘"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가까스로 만든 개헌 기회를 걷어찼을 뿐만 아니라 공당으로서 국민께 한 약속도 같이 걷어찬 것"이라며 "'불법 계엄을 반성한다, 반대한다'고 한 소리는 다 어디 간 것이냐", "불법 계엄을 꿈도 못 꾸게 하는 개헌에 필리버스터까지 걸고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했다는 세간의 비판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까지 했다.
그는 특히 "이렇게 해서 만약에 20년, 30년 후에 이런 불법 내란이 또 벌어진다면 정말 국민의힘은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우 의장은 "그동안 의장이 수 차례에 걸쳐 요청했지만 불발됐던 개헌특위를 후반기에는 반드시 구성하기 바란다"고 당부하며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반드시 약속을 지켜달라"고 했다.
이날 본회의에는 개헌안 외에도 민생법안 50여 건이 상정돼 있었지만, 국민의힘은 이들 법안에도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개헌안 상정 등 국민의힘과 의사일정 협의가 없었던 데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우 의장은 이에 대해 "50개 법안에 대해서도 모두 무제한 토론이 신청됐다"며 "여야 합의로 법사위를 통과한 민생법안들에 대해서 필리버스터를 걸겠다니, 법안이 통과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고 재차 국민의힘을 비판하고 "오늘 법안은 상정하지 않겠다"며 바로 산회를 선포했다. 산회 선포 후 세 차례 두드린 의사봉 소리도 우 의장의 내면을 반영한 듯 유난히 크고 거칠었다.
우 의장은 산회 선포 전 재차 "합의한 민생 법안까지 볼모로 잡겠다고 하니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지켜보는 국민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 "합의된 민생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국민들에게 몽니를 부리는 것", "이런 필리버스터는 정치가 아니라 민생 인질극"이라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인 국회 운영에도 어깃장을 놓는 이 상황이 저는 정말 분통이 터지고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하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회고하며 "까딱하면 우리가 다 꽃게밥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국회가 그걸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서 국민들 민생을 챙기자고 열심히 노력해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그런 과오를 반성도 하지 않고 불법 비상계엄을 꿈도 못 꾸게 하는 이것(개헌안)까지 막아가면서 민생법안까지 막는 무책임한 관성은 규탄받아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날 의원총회를 거쳐 개헌안을 포함한 이날 본회의 상정 안건 전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기로 결의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우 의장이 전날 본회의에서 투표불성립된 개헌안을 이날 본회의에 다시 올리겠다고 예고한 것을 두고 "투표 결과 찬성표가 재적의원 3분의 2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부결된 것으로 저희들은 생각하는데, 국회의장께서는 투표 불성립이라고 오늘 또 의사일정 합의도 하지 않은 본회의를 개최해서 헌법개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치겠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히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어긋나는 위헌적 행위"라고 했다.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산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 대통령, 우 의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라. 이번에 개헌할 의지가 있었나? 혹시 그저 여야 합의 없이 강행하면서 '국민의힘이 반대한다'는 기록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 '계엄 옹호 정당'이라는 고약한 프레임을 씌워서 이번 지방선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했던 저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꾸 이러니까 '위헌', '정당해산심판감이다'는 얘기를 하는 것"(정청래 당대표)이라며 대야 공세를 펼쳤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본회의에 6개 정당이 공동 발의한 개헌안이 국민의힘의 비겁한 불출석으로 투표불성립이 됐다"며 "좀 있으면 5.18인데 (광주에) 가서 뭐라고 할 텐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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