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소속 4년차 강사이며, 비정규교수노조 부산대분회 조합원이다. 강사로서는 이제 막 초보티를 벗었다고 자평하는 시기이고, 노조 조합원으로서는 이번 파업이 시작되며 처음으로 참여다운 참여를 하게 됐다. 그러니 노동조합 실무나 내부 사정 등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그런데도 왜인지 이 시간을 한 번은 남겨두고 싶었다. 앞서 이수경, 이상룡 선생님께서 비정규교수의 열악한 현실과 노조의 요구사항을 짚어주셨다면, 나는 파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바를 나눠보고자 한다.
파업을 계기로 새삼스럽게 나와 노조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매 학기 꾸준히 조합비를 내면서도 어찌 이토록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싶어진다. 물론 우리 대학에 노조가 있다는 것은 든든했고 때로 자랑스러웠지만, 노조에 대한 내 관심은 새 학기 비품이나 논문게재료 지원과 같은 복지사업에 한정돼 있었다. 일종의 ‘유령회원’인 내 모습에 은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여러 활동에 선뜻 발을 들이진 못했다. 파업에 참여하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이러한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유령회원’이라는 상태가 꼭 무관심이나 책임감만으로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정규교수의 노동은 애초에 ‘우리’를 개인으로 흩어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학기 단위의 강의 배정과 불안정한 전망, 여러 대학을 오가야 하는 생계 구조는 캠퍼스에 머무를 시간을 줄이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 통로를 끊는다. 그래서 비정규교수는 사적인 관계망을 넘어서 자신을 공통된 조건을 가진 노동자 집단에 위치시키기 어렵다. 그러니 소속감의 결핍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분절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나 역시 그 고립의 구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노조로부터 임금교섭이 난항을 겪으며 파업이 진행된다는 소식과 함께 농성장 당번 신청 안내를 받았다. 학교 가는 김에 3시간 정도 농성장에 앉아 있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농성장 당번을 신청했다. 다행히도 노조 바깥에서 이미 알던 선생님들 덕분에 농성장에 가는 것이 꼭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학부생일 때부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꼭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그래서 내게도 성함이 익숙했던 선생님들이나 이메일로만 접했던 집행부 선생님들의 얼굴을 뵙는 게 반갑게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십오 년 전쯤 교양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을 같은 조합원으로 만난 일도 내게는 무척 인상 깊었다. 노조를 제도라기보다 관계로 인식하게 됐달까.
농성장 경험 이후, 다른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교수 친구들과의 대화도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나와 내 친구들은 언제나 세상에 불만 많은 페미니스트이므로, 파업 이전부터도 비정규직 여성연구자로서 저마다 대학·학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다만 파업 이후에는 조금 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동시에 같은 ‘비정규교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대학마다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를(국공립/사립, 종합/전문대, 노조 유무, 강의료 등) 더 또렷하게 알게 됐고, 그 분절을 넘어 서로의 상황을 연결해 말해야 한다는 필요도 커졌다. 부산대의 파업이 단지 우리 학교만의 임금협상 문제가 아닌 이유다.
우리가 고립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개개인이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자기의 책임으로 쉽게 환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의 어려움은 ‘내 탓’이 아니라 공통의 문제이자 구조로 모습을 바꾼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이미 익숙했지만, 파업을 겪으면서 다시 확인한 것은 그 ‘정치’가 관념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함께 말할 시간과 자리, 서로를 알아보는 관계 같은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공통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 조건들의 희소함이 비정규교수 노동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농성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비정규교수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만남이 희귀한 조건 속에 놓여 있는지 실감한다. 임금협상을 위한 파업은커녕 비정규교수 노조가 설치된 학교가 드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립이 기본값인 노동에서 서로를 만나는 일은 그 고립을 약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그 조건을 조금이라도 넓히려는 시도를 이어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말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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