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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이영식 교수 "<일본서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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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이영식 교수 "<일본서기>는 없다?"

"<일본서기> 의존 '가야사' 복원은 돼레 가야지배사 드러내기 십상이다"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표현과 내용은 한국이나 중국의 역사서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창작이나 거짓으로 무시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는 17일 '한국고대사 속의 가야'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이 교수는 "<일본서기>는 6세기 전반에 아라국왕이 함안에 고당(高堂)이란 국제회의장을 세웠다"며 "가야 여러 나라의 왕과 백제와 신라의 사신들을 불러들여 외교적 현안을 논의하는 데 함께 참가했던 왜인(倭人)들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또는 '아라일본부(安羅日本府)'로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과거의 일본학계는 행정관청을 뜻하는 부(府)의 한자표기에 집착했다"면서 "고대의 일본이 4~6세기의 2백년 동안 한강 이남의 백제·신라·가야를 근대의 식민지처럼 지배했고, 그 통치기관으로 가야에 설치되었던 것이 '임나일본부'였다고 강변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조민규)

이 교수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대대적인 논쟁과 재검토를 거친 지금 일본에서 역사학자로서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외교사절로 보는 것에 한-일 양국의 학계가 어느 정도의 접근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일본서기>에 의존해 '가야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오히려 고대일본의 가야지배사를 드러내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과거의 주장을 역사적 사실처럼 서술한 우익의 일본사교과서가 일본정부의 검인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교과서의 문제는 한-일양국의 정치적인 문제이다"며 "문제의 '임나일본부'가 기록되어있는 부분들이 바로 우리의 '가야사'를 되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나일본부가 서술되어 있는 흠명(왕대)기는 '일본사'가 아니다"면서 "흠명왕의 즉위와 장례에 관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에 관한 기술로 채워져 있다. 그 대부분은 다시 '가야'에 관련된 기술들이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아예 없는 내용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잘만 활용한다면 전혀 새롭고 풍부한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릴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넘지 않으면 안 될 그 첫 번 째가 바로 '임나일본부'의 문제이다"고 말했다.

즉 '가야사' 복원의 자료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임나일본부'를 넘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임나는 <일본서기>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와 <삼국사기> 강수전(7세기), 그리고 창원에서 봉림사를 창건했던 '진경대사탑비'에도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광개토왕의 대군을 맞아 싸운 임나도 가야였다"며 "신라의 외교문장가로 유명한 강수(强首)의 출신지 임나도 가야였다. 속세의 성이 김해 김씨였던 신라의 진경대사는 임나왕족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임나' 모두를 '가야'로 보는 데에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식 교수는 "과거 한국과 일본의 학계가 '임나일본부'에 대해 얼마나 허망한 해석을 해왔던가를 아주 간단하게 비판했다"고 하면서 "지금 와서 일본의 주장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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