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한국옵티칼)가 모회사 니토덴코의 승인이나 협의 없이는 과장 이상 채용, 1000만 엔(약 9500만 원) 이상 재무 결정 등 일상적 경영 결정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가 나왔다. 한 고객사에 납품한 제품을 니토덴코의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이 같이 생산한 정황을 드러내는 문서도 함께다.
현재 니토옵티칼은 한국옵티칼 해고자들의 고용승계 요구를 '두 회사는 다른 법인'이라는 이유로 거부 중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측은 니토옵티칼 측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가 나온 것이라며 해고자 고용승계를 촉구했다.
<프레시안>은 16일 금속노조를 통해 2016~2021년 합국옵티칼 예산안과 경영밤침 등을 담은 문서, 한국옵티칼 직원의 업무수첩 등을 입수했다.
이를 보면, 모회사인 니토덴코와 모-자회사 간 협의기구인 '정보재(情報材) 회의'는 한국옵티칼의 인사, 재무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보재는 니토덴코 편광필름 사업부를 총칭하는 용어로,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은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니토덴코의 자회사다.
먼저 재무 부문 의사결정 기준을 보면, 니토덴코 본사는 한국옵티칼의 유가증권 취득·매각, 회사 외 융자, 차입금 등과 관련 1억 엔 이상 금액에 대한 집행 승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회사 외 융자, 차입금 관련 1000만 엔 이상 1억 엔 미만 금액에 대한 집행 승인 권한도 정보재 회의에 있는 것으로 명시됐다.
인사권도 한국옵티칼이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조직·인사 부문 의사결정 기준을 보면, 임원 이상 채용·조직 변경·인사 이동·승격 권한은 정보재 회의에 있었다. 과장 이상 채용, 부급 이상 조직 변경, 부장 이상 인사 이동·승격도 정보재 회의에서 사전 협의를 거쳐야 가능했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장은 재무 승인 구조에 대해 "자회사의 재무 관련 권한을 일본 본사가 갖고 있다. 큰 금액이 들어가는 결정 권한은 일본 본사가 가져가고, 9500만 원 미만 수준 비용은 한국옵티칼 이사회가 결정했다"며 한국옵티칼을 "(니토덴코와) 독립된 회사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인사 승인 구조에 대해서는 "통상 100% 지분을 가진 모회사는 자회사의 이사를 선임하고 이를 통해 경영하게 한다"며 "하지만 자료를 보면, 니토덴코는 한국옵티칼의 이사 선임뿐 아니라 임원, 과장 이상 관리자 인사도 통제했다. 이는 정상적인 지배 결정 구조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옵티칼 사측의 '니토옵티칼은 삼성디스플레이, 한국옵티칼은 엘지디스플레이에만 편광필름을 납품하기 때문에 별개 법인'이라는 주장을 흔드는 정황 증거도 있었다. 한국옵티칼 관리자가 2014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업무수첩에 적힌 "삼성 제조에서 T시리즈 불량 때문에 Koh('KOHTECH'의 약자로 한국옵티칼을 이르는 말) 방문", "SDC(Samsung Display Co.의 약자로 보임) 긴급 증량" 등 메모가 그것이다.
최 지회장은 이에 대해 "삼성디스플레이가 한국옵티칼을 직접 방문해 자사가 받을 제품을 직접 점검한 정황"이라며 "삼성으로 가는 제품도 한국옵티칼의 작업을 거쳐 납품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이 주목되는 이유는 2022년 10월 한국옵티칼 구미공장 전소 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제기한 복직 소송의 중요 쟁점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옵티칼은 사업체를 청산한 상황이다. 해고자들은 한국옵티칼이 청산과 함께 주요 고객사에 납품하던 편광필름 물량을 모두 니토옵티칼로 넘겼고, 재직 중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 간 인력교류가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두 회사는 '하나의 사업'이라 주장하며 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옵티칼지회의 박정혜 부지회장이 600일, 소현숙 조직부장이 476일 간 한국옵티 구미공장 옥상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두 회사가 재무·회계를 독립해 운영하고 서로 다른 인적·물적 조직을 갖고" 있다며 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을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사측 손을 들어줬다.
이런 상황에서 모회사 니토덴코의 지휘 아래 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이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됐을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가 새로 나온 것이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대법원은 복수의 기업조직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업무 내용, 노동력 사용, 사업 활동의 밀접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며 이번 자료가 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은 "하나의 사업"이라는 노조의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옵티칼의 폐업은 하나의 사업 중 일부 사업 부문의 폐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니토옵티칼이 한국옵티칼 해고자에 대한 고용승계 의무를 진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은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이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됐다'는 노조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니토옵티칼 측에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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