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디지털 혁명으로 200년 산업문명 거버넌스가 와해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2024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미국은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인 '아노크라시' 상태에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는데, 트럼프 2기는 더 막무가내인 모습이다.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훼손당하는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 걸까?
이병한 광주과학기술원 특임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두번이나 집권하게 된 기반으로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이 중국이나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몰락을 가져왔는데, 이런 흐름이 정치적 반동으로 트럼프 지지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길고, 넓게 보면 '민주주의의 오작동'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도 지난해 대통령에 의한 불법계엄을 겪었고, 프랑스도 사회 갈등과 정치적 혼란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이어지고 있고, 네팔의 'Z세대 시위' 등 전세계가 정치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이병한 교수는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산업문명 거버넌스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류가 두번째 물질개벽(전기혁명과 산업혁명)에서 세번째 물질개벽(총기(지능)혁명과 디지털 혁명)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와 손잡은 '데크노 쿠데타' 4인방은 누구인가?
이 교수는 최근 펴낸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이병한 지음, 서해문집 펴냄)에서 이 변화가 시작되는 미국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4명의 인물들을 주목했다. 이들은 1기와는 전혀 다른 트럼프 2기를 규정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1. 피터 틸 : 1967년생. 실리콘밸리에서 틸은 밤의 대통령, 그림자 대통령으로 통했다. 틸의 목표는 분명했다. 워싱턴의 딥스테이트, 행정국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수십만 공무원이 이 비대하고 무능한 연방기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금을 축내고 있었다. 이제 1998년 페이팔 창업 때부터 꿈꾸어 오던, 관료제 국가의 전면적인 대수술을 가차 없이 집도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이다. (32쪽)
2. 일론 머스크 : 1971년생. X는 머스크의 심벌이다. 2002년 서른한살의 나이에 스페이스X를 설립한다. 지구라는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새로운 은하문명을 건설하는 아주 먼 미래를 상상했다. 그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 것이다. 미국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궁극의 목적인 화성 개척에 복무하기 위해서다. 이 나라를 그냥 두어서는 살아 생전 화성에 이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86쪽)
3. 알렉스 카프 : 1967년생. 팔란티어 테크놀리지스 CEO.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로서 실리콘밸리의 정보혁명도 지켜보았다. 과거 68세대 선배들이 해체하고자 했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와 서구주의를 되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2.0시대,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관료체제를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로 전환할 태세다. 빅데이터를 통하여 이 세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카프의 미션이 되었다. 정치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바꾼다. 당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선택한다.(140쪽)
4. J.D. 밴스 : 1984년생. 트럼프 2기 부통령. 러스트벨트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비록 어린 시절은 불우했으나, 해병대로 예일대 로스쿨로 실리콘밸리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38세에 상원의원, 40세에 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라고 할 만하다. 자유-민주-공화국 올드 아메리카를 뒤로 하고, 디지털-기독교-제국으로서 새로운 아메리카의 향배를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밴스다. (200쪽)
이 교수에게 이들 4인방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와 이들 중 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 물었다.
"제가 4인방에 대해 '쿠데타'라고 표현을 한 건 이들의 위기의식이 어마어마 합니다. 중국을 보니까 우리가 시작했던 디지털 혁명을 가져가서 우리보다 더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거 아냐, 패권이 200년 만에 중국으로 가는 거 아냐, 이대로 공화당, 민주당에 나라를 맡겨둬서는 우리 사업도 다 망하겠다, 매우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그 미래상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아니고, 데모크라시 다음은 데이터크라시라고 보고 있어요.
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냐?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설계자는 피터 틸이고, 총대를 메고 나선 선봉장은 일론 머스크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짠 사람은 알렉스 카프, 이걸 최종적으로 완성시킬 사람은 84년생으로 지금 부통령하고 있는 J.D 밴스입니다. 밴스는 트럼프 2기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세 그룹인 백인 노동자 계층, 종교(가톨릭과 복음주의 기독교), 실리콘밸리 모두에 다 인연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는 선에서 현재 트럼프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공화당의 다양한 세력을 다 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보여집니다."
재집권 1년만에 쪼개지는 트럼프 진영...'건국 250주년' 2026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문제는 밴스가 대선후보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2기가 채 일년도 안 지났지만, 내부는 이미 분열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았다가 트럼프와 싸우고 지난 5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트럼프의 오랜 정치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머스크 등 테크노 세력들과는 정치 노선과 철학이 다르다. 여기에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앱스타인 사건을 놓고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은 트럼프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미국 의회에서 앱스타인 수사 기록 전체를 공개하라는 법안이 통과됐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패배가 확실해진다면 트럼프가 윤석열식의 친위 쿠데타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저는 요즘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미래학자라고 우기고 다니는데, 점을 친 게 있어요. 미국이 앞으로 잘될 가능성이 10% 미만인 것 같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드려는 시도가 좌초되면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잘 나가는 제국도 200-300년 정도 갑니다. 우리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 것도 목격했는데, 누구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죠. 역사적으로 보면 제국의 와해는 거듭되는 현상입니다.
지난 9월 미국 극우 정치 논객 찰리 커크 피격 사건 등이 보여주는 건 정치적 분열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은 한국의 광화문-서초동보다 훨씬 더 심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범죄,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분으로 민주당 지역(시카코,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등)에 주방위군을 끌어들이고 있구요.
내년은 미국 건국 250주년인데다 11월에 중간선거도 있어요. 미국은 시민들도 무장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총 한발이 역사를 가를 수도 있어요. 참지 못하는 딱 한 명이면 세계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도 사실 그렇게 일어났구요. 미국, 특히 내년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6:3:1이다. 테크노 쿠데타가 좌초함으로써 올드 아메리카가 지속될 가능성이 절반이상이다...자칫 내분이 내란을 촉발하여 미합중국이 내파되어갈 가능성도 3할은 된다.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디지털 대전환을 완수하고 후기 미국 시대를 개창할 가능성은 10%에 그친다." (249쪽)
대부흥, New Holy War?
이 교수는 매우 희박한 가능성이 있는 '뉴-아메리카' 개창에 있어서 신임 교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미국인이 교황인 됐다는 게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가 동구권, 소련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었습니다.
레오 14세는 첫 미국인 교황이고, 심지어 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하셨더라구요. 제 책에 등장하는 4인방이 지금 하려고 하는 게 법치로 작동했던 산업문명을 거버넌스는 수학으로 하고, 자유주의가 충족해주지 못했던 인간의 영혼은 신학으로 치유해가겠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수학과 신학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4인방과 묘하게 잘 맞는 게 있어요.
공교롭게도 전임 교황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정치인이 밴스 부통령입니다. 이런 상징성을 밴스가 확보하게 됐고, 새 교황이 미국인이 되니까 밴스가 바티칸을 또 갑니다. 교황에게 선물로 미국 NFL팀인 시카고 베어스 유니폼과 아우구스티누스 책을 줍니다. 교황이 시카고 출신이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밴스 세례명인데, 신임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의 첫번째 교황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썼지요.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거죠.
다시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만들어보자는 소명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바티칸과 워싱턴에 이렇게 있다고 한다면, 종교개혁 이후 계몽주의 500년과 굉장히 다른 형태가 세계사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새 교황이 언제 미국을 처음 방문할지도 저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이 인터뷰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 편이 이어집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