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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샤인머스캣 위기, 이제는 품목이 아니라 구조를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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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샤인머스캣 위기, 이제는 품목이 아니라 구조를 바꿀 때다

이정훈 기본사회 경북본부 상임대표

▲이정훈 기본사회 경북본부 상임대표ⓒ이정훈 기본사회 경북본부 제공

올해 샤인머스캣 도매가격은 2kg 상자 기준 1만 원 초반대로 평년의 절반, 사실상 ‘가격 붕괴’ 수준이다.

영천을 비롯한 상주·영동·보은·옥천·밀양·전남 등 전국 산지에서 거의 동일한 폭락이 나타난 것은 더 이상 변명이나 운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한국 농정의 구조가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신호이다.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은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급증했다. 일부 지자체는 단기 성과를 위해 식재를 장려했고, 산지는 서로의 흐름조차 모른 채 확장 경쟁을 벌였다.

총량 관리 체계는 없었고, 기후 악화로 품질 편차는 커졌다. 수출에서 밀려난 물량은 내수 시장을 압박하며 가격을 더 빠르게 무너뜨렸다. 위기가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것은 결국 농가다.

일부 지역에서는 또다시 ‘폐원 지원’이 거론된다. 그동안 한국 농업은 “가격 폭락 → 폐원·도축 지원 → 다른 품목 확대 → 다시 과잉 → 또 폭락”의 악순환을 끝없이 반복해왔다.

샤인머스캣도 같은 방식으로 다룬다면 단지 다음 품목으로 위기를 미뤄두는 것에 불과하다. 품목을 바꾼다고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지역 단위 대응의 한계도 분명하다.

출하 시기·재배면적·예상 생산량조차 산지 간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 지역의 늦춘 출하가 다른 지역의 조기 출하로 즉시 상쇄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느 산지도 홀로 가격을 지킬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자체별 미봉책이 아니라 산지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새 틀이다.

문제의 핵심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전국 단위 총량 관리의 공백!

둘째, ‘출하 후 가격 확인’의 구시대적 예측 시스템!

셋째, 산지유통(APC) 역량의 지역 간 격차!

넷째, 이상기후의 상시화로 취약해진 단일 품목 중심 구조!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며 오늘의 위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샤인머스캣 위기는 단기 지원이 아니라 구조 전환이 필요한 지점이다.

첫째, 생산·수요·수출·기후 데이터를 통합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 총량 관리 체계를 세워야 한다.

둘째, 상주–영동–보은–옥천–밀양–전남 등 주요 산지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 출하 분산·재배면적 조정·계약재배 같은 자율 조절 장치를 실질화해야 한다.

셋째, 농가가 휴대전화로 다음 달 시세·출하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체감형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산지유통센터(APC)의 선별·저장 역량을 표준화해 산지 전체의 가격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

샤인머스캣의 가격 폭락은 결코 한 품목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농정 전반의 구조를 되돌아보라는 강한 경고이며,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기회다.

위기를 반복하는 나라도 있지만, 위기를 계기로 구조를 바꾸는 나라도 있다.

샤인머스캣은 지금 어느 쪽을 선택할지 묻고 있다. 우리가 결심한다면, 이번 위기는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라한국 농업이 새로운 질서로 넘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농업의 미래는 품목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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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호

대구경북취재본부 박창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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