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이게 바로 1960~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아닌가?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이런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조선시대 왕실의 위패를 봉안한 서울 종묘 정전 앞에서 서울시의 '종묘 앞 재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중에 가진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로변의 최고 높이는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상향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지난 4월 유네스코가 서울시 쪽에 '유산영향 평가'를 먼저 실시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아 발송한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은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6일 국가유산청과 사전 협의 없이 문화재 외곽 지역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날 최영휘문체부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함께 종묘에서 서울시 계획에 대해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다.
허민 청장은 지난 6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출석해서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유네스코에 의해 '위험에 처한 유산'에 올라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날 긴급 입장문을 낸 한국고고학회도 "종묘 앞 하늘과 시야를 가르는 고층 건물을 기정사실로 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잘라내는 일"이라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의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가 도시재정비사업으로 초고층 건물로 에워 싸일 위기에 직면해 처해 있다면, 지난 2021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 4곳 가운데 서천갯벌 역시 종묘와 비슷한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 11일,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서천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유산 보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발에 대한 관리 등을 권고했다"며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근 서천개벌에 서식하는 법정 보호종 조류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했고 그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판결했다.
이날 소송인단측은 판결 직후 "새만금신공항 사업에 대한 모든 절차를 중지시켜달라는 '집행정지신청'도 제기했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갯벌 4곳(충남 서천,전북 고창,전남 신안,전남 보성.순천)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내건 조건은 크게 3가지로 '유산구역 확대'와 '통합관리체계구축' '개발관리' 등이다.
당시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에 대해 유산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를 권고했었다. 이에 세계유산센터 및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외교교섭 활동을 전개해 '등재'가 성공리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은 세계유산구역으로 등재할 만큼 갯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추가 확보하라는 '권고'가 따라 붙었고, 이어 통합관리 권고와 함께 갯벌의 가치를 훼손하는 개발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권고'를 한국 측에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같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에 둔 판결을 했다.
법원은 "새만금국제공항이 건설될 사업부지는 바다와 단절돼 있고 갑문개방을 통해 해수유통이 이뤄지고 있어 갯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도 없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사실도 없지만 이 사업부지에서 7km떨어진 '서천갯벌'은 '습지보호지역'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등재돼 있고), 또 9km떨어진 지역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각각 지정돼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문제는 법원의 1심 판결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으며 국토부와 전북도는 기본계획 취소 국민소송단의 집행정지신청에 대해 원고 적격과 긴급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판부에 집행정지신청 기각 의견을 제기했다.
이에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국민소송인단은 오는 12일로 예정된 집행정지신청 2차 심문기일에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즉각적인 집행정지신청 인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는다는 계획이다.
종묘의 경우 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줘 세계유산인 종묘 앞 도시개발이 가능하게 해 준 반면에, 새만금국제공항에 대해서는 세계유산인 인근 서천갯벌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반면에 정부의 입장은 종묘와 새만금국제공항 문제에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점이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다.
종묘 건에 대해서는 국내 문화적 가치를 앞세워 종묘를 둘러싼 도시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새만금국제공항의 경우는 국제기구와 약속한 세계유산 보전을 위한 '권고이행'에 충실하기 보다는 국내 상황에 치중한 공항건설의 당위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다소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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