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임의로 처분할 때 성립한다. 하지만 단순한 처분행위만으로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관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의사로 위탁의 취지에 반해 재물을 자기 소유물처럼 처분했는지, 즉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의사가 존재하는지에 따라 행위의 법적 성격이 달라진다.
재단법인 소속 학교 서무과장이 교사들의 급여를 지급하면서 봉급 지급명세서에 실제 지급액보다 높은 금액을 기재하고 차액을 인출한 사건이 있었다. 언뜻 보면 횡령처럼 보이지만, 그는 재단이사와 학교장의 양해 아래 그 차액을 신입생 모집 활동비로 사용했다. 법원은 “소유자인 재단의 이익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익을 위한 처분이므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외형상 금전 유용이 있어도, 실질적으로 소유자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면 횡령죄의 본질적 요건이 결여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을 사용해 자신의 회사에 대한 채권을 변제한 경우가 있다. 형식만 보면 자기거래나 자금 유용처럼 보이지만, 이는 대표이사가 회사 채무를 변제한 행위로 대표권의 범위 내에 있다. 이사회 승인 절차가 없더라도 불법영득의 의사가 인정되지 않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이처럼 ‘불법영득의사’ 판단의 기준은 명확하다. 처분행위가 소유자의 이익에 반하는지, 또는 이를 위한 것인지가 핵심이다. 단순한 회계상의 차액이나 권한 없는 처분만으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행위가 재산권 침해로 귀결되는지, 행위자의 의사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는지를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최근 기업 자금 운용이나 공공기관 회계 처리 과정에서 불법영득의사 판단이 쟁점인 사건이 늘고 있다. 자금 이동만으로 범죄를 단정하면 정당한 업무 행위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사익을 추구한 행위를 조직의 이익으로 위장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금의 실질적 귀속과 행위의 목적이다. ‘누구의 이익이었는가’를 묻는 것, 그것이 횡령죄 판단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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