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처시하(嚴妻侍下). 엄한 아내를 섬기며 바짝 엎드려 살아가는 남편을 뜻한다. 가부장제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저 말은 '남자가 여자한테 잡혀 산다'는 조롱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말하면 다를 거다. 정치인 홍준표가 여자 나오는 술집에 평생 가본 적 없다는 걸 강조할 때마다 종종 뱉은 사자성어다.
저 인터뷰를 처음 접했을 때, 룸살롱 안 간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자랑인가 싶었다. 하지만 홍준표의 성별, 나이, 직업을 교차시켜보면 저 사실만으로도 뿌듯했을 거다. 가고도, 그리고 가는 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괴상한 행동들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남자들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심지어 진보를 표방하고 성평등을 주장하는 인간들도 저따위로 행동을 했으니, 그런 곳 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떳떳했으리라.
펜스룰(Pence rule). 성 추문의 꼬투리가 될 요소를 사전에 봉쇄한다는 말이다. 미국 복음주의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빌리 그레이멈 목사가 개신교 목사 내부 단속 지침으로 부인을 제외한 다른 여성과 시간을 보내지 말 것을 권고하면서 알려졌다. 이를 실천하며 비서진들조차 남자로만 선발하곤 했던 정치인 마이크 펜스의 유명세로 인해 펜스룰로 불렸다. 미투 운동의 열풍이 불던 시기,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거나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당시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원칙이 회자되곤 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울타리(fence)를 쳐버리면 무슨 문제냐는 건데, 성폭력의 본질을 너무 단순하게 대하는 강박의 표출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뜻도 변질된다. 남자인 자신을 믿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맥락은 사라지고, 여자에게 잘못 걸리면 인생 끝장이라는 투로 펜스룰은 부유했다. '이상한 짓 하지 말자'와 '이상한 여자와 엮이면 안 된다'는 뉘앙스 차이는 크다. 하지만 성추행을 할 확률만을 따져본다면 그렇게라도 사는 남자가 사고는 덜 칠 거다. 의도에 성별 고정관념이 듬뿍 들어있는 건 아쉽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여자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으니까 말이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강박의 민낯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라도 했다면, 조국혁신당의 그 꼴불견은 없었을 거다. 2024년, 2025년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것도 진보를 표방하는 곳에서. 사실, 진보를 앞세운다고 그런 일 없었던 적이 없기에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비위와 진보가 엮인 소식을 드는 사람은 짜증이 솟구친다. 세상이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해졌기에,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을 또 확인하는 건 매우 불쾌하다.
그런데 최강욱 전 국회의원은 별로 짜증 나지 않나 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찮은 성비위를 물고 늘어지는 게 불쾌했나 보다.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는 당원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으면,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그게 죽고 싸워야 하는 문제냐면서 단번에 정리정돈을 할 정도다. 그래서 펜스룰이 낫다. 입에 펜스를 단단히 쳐서, 잘 모르니 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길일 거다.
습관은 정말 무섭다. 저 논평을 할 때는 큰 고민 없는 무의식의 답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발언이 다시 소환돼 2차 가해 논란이 등장하면 스스로 언행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생각해 보니 잘못이면 사과를 해야 하고, 생각해 봐도 잘못이 아니면 사과를 원해야 한다. 물론 무대응도 나름의 대응법이다. 무책임하다는 소릴 들을 수 있으나, 사과하는 건지 아닌지가 헷갈리는 애매모호한 설명을 길게 나열하는 것보단 차라리 입을 열어 놓는다. 경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동 이 로이어진다. 입장문의 서두를 거창하게 장식하는 "내란세력 척결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민주당과 혁신당의 입장과 노력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장난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영론자들은 적극 따른다.
그 순간 성비위 사건은 같은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상식적으로는 조직 안의 성비위 사건에 함께 화를 내야 같은 편인데, 이들은 반대다. 화내는 자를 의심한다. 이들은 늘 이런 식으로 비판자의 진심을 왜곡한다. 그 비판이 성평등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면, 왜곡을 넘어 조롱한다. 맥락도 이해 못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또 설쳐 댄다고. 유시민 작가의 발언 논란이 있을 때도, 강선우 의원의 갑질 이슈가 터졌을 때도 말이다.

차라리 펜스룰을 추종하라
페미니스트에 대한 온갖 험담, 그건 극우 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신남성연대, 뭐 이런 단체의 대표가 늘 하는 말을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비슷하게 한다.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마주한 이상 자신의 행보를 반성할 거다. 나와 극우의 세계관이 일치하는 것에 놀랄 거고, 본인의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함이 마땅하다. 어디 그러한가. 그들은, 극우조차 페미니스트를 싫어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게 놀랄 일인가. 극우는 원래 페미니즘을 경멸했는데 말이다. 진보랍시고 별 구분도 안 되는 게, 더 어색한 일 아닌가.
옳은 일은 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스스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 건 위험하다. 옳은 일은,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행실로부터 세상에 드러난다. 하지만 여러 진보주의자들이 이 간단한 인정과 사과를 하지 못하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옛날 아버지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권위를 부여해, 실제 가족들 앞에서 초법적인 행동을 서슴지 하면서도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던 그런 모습처럼 말이다.
그러니 기껏 사과를 한다는 게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변명이다. 의도가 그랬다면 감옥에 갈 일이고, 우리의 세상은 의도가 그게 아니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수준 높은 도덕심으로 전진한다. 당신의 무의식에서조차 성별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 거, 이를 성인지감수성이라 한다. 도무지 그걸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펜스룰을 추종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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