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리사 쿡 이사를 해임 통보하고 연준에서 "다수"를 차지하겠다며 연준 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연준 안정성에 타격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시장 신뢰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이하 현지시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린 곧 (연준에서) 다수를 갖게 될 것이며 이는 매우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주택 시장이 활기를 찾으면 훌륭할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높은 이자율을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쿡 이사 "즉시" 해임을 통보하는 서한을 공개했다. 지난달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 사임 뒤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잔여 임기 후임으로 지명돼 상원 인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의 조치다. 쿡 이사 또한 해임돼 새 인물을 앉히면 연준 이사 7명 중 4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경우 트럼프 1기 때 지명된 뒤 조 바이든 대통령에 재지명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쿡 이사 후임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 매우 적합한 사람들이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런 위원장과 데이비드 맬패스 전 세계은행(WB) 총재를 고려 중이라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신문은 임기가 내년 1월까지였던 쿠글러 전 이사 공석에 지명된 마이런 위원장이 쿡 이사 후임으로 이동하면 맬패스 전 총재가 남은 이사 자리를 채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 해임 통보 이유로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대통령엔 "사유가 있을 경우" 연준 이사를 사임할 권한이 있는데 이 혐의가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쿡 이사는 2022년 5월 연준 이사 취임 전 미시간주와 조지아주 부동산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2021년 6월과 7월에 각각 받으며 두 곳 모두를 주거지로 허위 기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관련 증거나 법원 판결을 통한 사실 확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혹의 세부 내용도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로이터>는 일반적으로 주거용 부동산 대출이 투자용 대출보다 저렴하지만 쿡 이사가 받은 대출 금리는 당시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증거 제시 없이 의혹 제기로 이사 해임을 통보했다며 "법원이 이를 허용한다면 연준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보호막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문은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사유"는 일반적으로 심각한 위법행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쿡 이사 해임 발표는 취임 뒤 지속적으로 파월 의장에게 압력을 가한 데 이은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해 왔다.
쿡 이사는 사임을 거부했고 26일 그의 변호사 데이비드 로웰은 해임에 "사실적 혹은 법적 근거가 결여됐다"며 "이 불법 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은 성명을 통해 "법원의 명령을 준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로이터>는 이 성명을 연준이 쿡 이사의 현 지위를 유지할 것이며 이를 변경하려면 법원의 판결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6일 "난 법원의 명령을 준수한다"고 말했다.
쿡 이사가 즉시 물러나든 긴 법정 공방으로 가든 이번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독립성에 대한 신뢰를 흔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연준을 압박 중이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시하는 연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주택담보대출과 연동되는 장기 금리는 투자자 불안으로 인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CNN방송은 "투자자들이 연준이 독립성 및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잃었다는 두려움에 직면하면 당황하게 될 것"이라며 "만일 투자자들이 연준의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한 의지를 갑자기 의심하게 된다면 장기 대출에 대해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연준이 아닌 투자자들이 통제하는 장기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과 3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 격차가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당장의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기 국채 수익률은 통화정책 완화를 기대하며 내렸고 장기 국채 수익률은 급격한 금리 인하로 인한 장기적 인플레이션 우려 및 연준 독립성 침해에 따른 금리 전망 불확실성 등으로 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리사 쿡 해임은 통화정책을 자신의 개인적 통제 아래 두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는 성공할 수도 있지만 국가는 이를 후회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문은 리처드 닉슨 미 전 대통령이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에 통화정책을 완화하라고 압력을 가한 결과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흔들 경우 정권이 바뀌었을 때 반작용이 클 수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고려 않고 "단기 전략과 개인적 정치 이익"에만 골몰한다며 "그가 연준 장악에 성공할 경우 그 결과와 인플레이션은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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