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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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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트럼프시대 미국대학의 위기를 보는 시각

지난 21일 월요일 오후 미국 보스턴 법원 앞은 "하버드에서 손 떼라", "강한 미국은 강한 하버드를 필요로 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의 시위로 시끌벅적했다. 법정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학에 대해 단행한 약 26억 달러(3조6400억 원) 규모의 연방 연구비 동결이 위법 위헌이라는 하버드 측의 소송제기에 중요한 전기가 되는 공개변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비 지원 전격중단은 하버드대학이 캠퍼스 내 친팔레스타인 시위나 이스라엘 비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었다. 하버드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불법적으로 침해했다고 반발하며 이 조치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이날의 공개변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양측 변호인들의 공방이 오갔다.

이날 즉석 판결은 나지 않았고 9월 3일 이전 서면판결이 예정되어 있지만, 담당판사인 버로스 (Alison D. Burroughs)는 질문을 통해 "반유태주의와 싸우는 것이 연구재정 조달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표하며 연구비 동결이 대학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자 억압이라는 대학 측의 논리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이 공개변론이 끝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브로스 판사를 "총체적 재앙"이라고 맹공하면서 그가 하버드 측에 편향되어 있고 그것을 "이 나라 민중에게는 자동적인 '상실'"이라고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재판이 트럼프 치하의 미국에서 학문과 표현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 및 공공성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국내 언론도 조기대선이 진행되던 지난 5월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일류대학들에 대한 트럼프의 압박과 공격에 대해 보도하며 소송제기와 추가억압 등으로 번진 충돌양상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관세부과를 통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신정부의 대처방안이 미국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필자는 미국대학 사태가 단순히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한미관계를 포함하는 정치문제와 긴밀히 맺어져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거의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미국의 통상압력이 트럼프의 하버드 공격과 그 이념에서나 방식에서나 상통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일류대학들에 대한 정부연구비 동결은 단순히 국가의 예산 배정 문제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으로 비롯된 대학 내 반유태주의 추세에 제동을 거는 것을 넘어서 비판적 지성의 거처라고 할 대학이라는 기관을 보수권력의 통제 아래 재편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획을 도모하고 있다. 연구비 동결을 수단으로 행정부가 하버드를 비롯하여 많은 대학들에서 운영 중인 DEI, 즉 다양성(Diversity)·평등성(Equity)·포용성(Inclusion)을 위한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예산 삭감 사태를 진보적인 대학풍토 해체와 보수적 가치 확산을 위한 새로운 '문화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여기서 비롯한다.

▲ 하버드 대학교 전경. ⓒ하버드 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이 문화전쟁에서 보수권력이 채택한 전략이 엘리트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엘리트대학들을 '좌파이념의 소굴'이라고 지목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지론과 상통한다. 트럼프는 하버드를 '엘리트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들 일류대학들이 미국의 일반적인 민중과 동떨어져 있는 특권층의 기득권 기관임을 부각한다. 여기에는 엘리트주의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포퓰리즘을 통해 보수정치의 대중기반을 확장하려는 이념적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논리를 뒷받침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내 상위권 대학들의 계급적 특성만 보아도 그것이 드러난다. 예컨대 하버드의 최근 신입생 중 상위 1% 가계출신 비율은 전체의 15%에 이르고, 하위 20% 소득계층 출신은 4.5%에 불과하다. 상위 10% 부유층 출신이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미국에서 대학은 더 이상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라 지배구조 재생산의 기제가 된 것이다. 이같은 현실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한 문화자본 중심의 불평등체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피케티는 엘리트 대학이 학벌과 문화자본을 독점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세습적 불평등을 고착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의 대학 공격이 불평등 해소와 민주주의 진척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의 공격은 불평등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선동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오히려 계급구조를 공고화하고자 한다. 엘리트주의 해체를 내세우지만 실은 엘리트층의 교체 즉 진보적 가치를 점유하고 있는 이른바 '깨어 있는 교양 엘리트'(woke educated elites)를 무력화하고 보수권력의 헤게모니를 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앞선다. 이것은 교육부 축소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던 펠 그랜트 장학금(Pell Grant)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반유태주의 척결을 명목으로 실질적 평등조치들을 폐지한 데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대해 하버드대 총장의 강력한 반발과 연이은 소송제기가 미국 대학의 기득권 구조와 시장주의적 현실을 비판해온 비판적 지식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가령 대학교육이 비판적 지성의 양성을 주된 임무로 하며 그 공공적 가치를 강조해온 헨리 지루(Henry Giroux)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행정부의 공격에 맞선 대학의 저항을 옹호하며 하버드와의 '비판적 연대'(critical solidarity)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트럼프의 하버드 공격은 엘리트주의를 극복한다는 명목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시민 양성을 주 임무로 하는 대학의 이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같은 보수정권의 네오파시즘적인 권위주의 복원의 추세는 국제 관계에서의 폭력적인 자국중심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버드 공격을 통한 이같은 미국 민주주의 해체시도는 대외정책에서 폭력적인 미국 정부의 행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미국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미국 중심주의에 기반한 통상압력에 대처하는 일이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리고 있는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다. 신정부는 자국중심주의를 앞세우는 우파 파시즘적 경향의 미국과 협상 및 공존해야 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한 것이다. 내란으로 훼손된 민주주의 질서를 복원하고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네오파시즘으로 치닫는 트럼프 정부와 동맹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형국이 펼쳐진 셈이다.

그같은 상황의 일면이 다름 아닌 대학문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 하버드의 싸움은 단순히 연구예산을 지키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보존과 재구축을 위한 더 큰 전쟁과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이 문화전쟁은 폭력과 금전의 지배가 아니라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보편적 싸움의 일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와 하버드의 싸움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한국 대학이 처해 있는 환경, 즉 강고한 대학서열체제와 이를 통해 엘리트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대학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FILES) Demonstrators with signs stand around the John Harvard Statue in Harvard Yard following a rally against President Donald Trump?s attacks on Harvard University at Harvard University in Cambridge, Massachusetts on April 17, 2025. US Secretary of Education Linda McMahon said May 5, 2025, that Harvard will no longer receive federal grants, escalating an ongoing battle with the prestigious university as it challenges the funding cuts in court. (Photo by Joseph Prezioso / AFP)

대학서열의 최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보자.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결과(2023)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대 학부생 중 상위 20% 소득수준 계층 비율은 60% 이상이며, 하위 20%는 5% 내외에 불과하다. 서울대만이 아니라 연고대를 비롯한 한국의 소위 '명문대'들은 사교육 시장의 혜택을 누린 중산층 이상 계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대학서열체제를 통해 확보된 기득권을 별다른 자의식이나 자기비판 없이 당연한 것처럼 누려왔다. 즉 한국의 일류대들은 하버드와 다를 바 없는 계급적 성격을 가지며, 고등교육이 새로운 세습적 불평등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피케티의 분석을 그대로 입증한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 대학들이 미국 대학과는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 이번 트럼프-하버드 대립이다. 하버드와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좌파이념의 소굴'이라는 공격을 받을 정도의 개혁적 풍토를 지닌 데 비해 한국의 일류대들에는 그같은 전통이 부재하거나 취약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상위권 대학들은 비판적 지성의 요람이라기보다 국가권력과 시장질서에 편승하여 무임승차에 가까운 이득을 누려왔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거의 트럼프적인 폭력성을 보여준 윤석열 전 정부조차 대학에 대한 시장화 정책을 강화하면서도 이들 엘리트 대학들을 공격할 이유는 그야말로 전무했다.

한국의 역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중심의 대학정책을 기조로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이를 비판해왔을 뿐 주요 대학들부터가 문제제기는커녕 이같은 무한 경쟁구도에서 부익부빈익빈의 혜택을 누려온 셈이다. 그 결과 서울 중심의 서열체제 강화와 사교육 팽배, 그리고 과열 입시경쟁과 지역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더 증폭되어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 국가위기를 초래할 정도의 심각한 국면으로 몰리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교육정책의 기조를 '교육의 정부책임' 즉 공공성에 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 트럼프 사태로 그 극단적인 모습이 드러난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벗어나는 일은 사회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일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불평등구조 개혁이 그 일환이거니와 공적 시민을 길러내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대학의 본래 성격을 되살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정부의 핵심적인 교육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단순히 서울대라는 일류대를 지역마다 만들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서울 중심서열체제와 지역 불균형해소라는 그 목적에 충실한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시대 미국 대학들의 위기와 싸움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 상황을 되돌아보고 대학정책이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시금석이다. 미국 대학의 위기는 시장주의에 맞서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싸움이 한국만이 아니라 글로벌한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미국을 넘어서 민주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 지구적 차원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학 공격은 대학이 시민적 가치와 공적 삶의 원리를 지켜내는 보루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헨리 지루는 트럼프-하버드의 대립을 지켜보며 하버드와의 '비판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언명한 바 있다. 그같은 '비판적 연대'는 한국과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버드 사태로 드러난 미국 내의 이같은 비판적 목소리와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것도 트럼프 시대 미국의 압박에 대처하는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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