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 중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이날 판결을 두고 시민단체는 "다시 삼성공화국으로 돌아갔다"며 사법부를 맹비난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회장이 지난 2020년 9월 기소된 지 4년 10개월 만이자 2심 선고 5개월여 만이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이며, 수집된 물증의 경우에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2심 판단이 그대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이날 무죄가 확정됐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이 회장은 그간 제기된 의혹에 관해 모두 무죄를 확정지음으로써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게 됐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연루 의혹부터 시작해 약 10년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재계는 이날 대법원 선고에 환영 입장을 내며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탈출이 한국 경제 재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상철 경총 홍보실장은 "AI(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미국발 관세 문제, 저성장 고착화 등 수많은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혁신으로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우리 경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했다.
시민사회는 그러나 "시장질서를 무시한 채 횡포를 부리는 경제권력에게 사법부가 끝까지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이날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참여연대는 "삼성 불법합병은 대기업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세금 등 전 국민의 수천억 원 피해를 제물로 삼은 악질적인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며, "경제권력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승계목적에 대해 앞뒤가 다른 판례를 내놓으면서까지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수치스러운 결정을 내린 사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단체는 "법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부적절하긴 했어도 처벌받을 정도는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재용 회장의 승계를 위해 기획된 부당한 거래라는 점은 당시 국내외 자본시장과 사회 전반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은 분식회계, 합병비율 조작, 회계법인 동원, 공시가격 왜곡 등 온갖 불법적 수단을 총동원했고,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 공여와 국정농단까지 동반됐다. 총수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 시스템 전반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번 결정의 또 다른 문제점은 기업들에게 범죄의 중요한 증거들을 조직적으로 삭제하고 공장 바닥을 뜯어 조직적으로 은폐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줬다는 것"이라면서 "10년에 걸친 재판과정 동안 이재용 측은 집요하게 검찰의 위법수집증거 문제를 지적했고, 이를 실행한 임직원들이 실형을 선고 받고 승계목적이 담긴 내부문건들이 다수 폭로되었음에도 상당수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형사공판에서의 증거 채택은 피고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나, 사법부는 유독 윤석열 전대통령이나 이재용 회장과 같이 권력자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였다"며 ""인권보장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가 "권력자들의 인권만 보장하는 사법부"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거듭 "이번 사건은 향후 재벌총수들의 불법행위와 증거인멸에 대한 수사와 사법적 판단을 심각하게 제한하여 사회정의와 실체적 진실의 회복을 어렵게 하는 최악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이 불법합병에 가담한 이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만전을 기하고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 판정에 대해서도 구상권을 행사하는 등 국민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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