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님이 일하다 사망한 지 한 달이 간다.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은 발전소 폐쇄 국면 방치되고 있는 인력과 고용, 안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5년을 기점으로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폐쇄될 예정이지만, 노동자 건강권 보장이나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과 같은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에 김충현 대책위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국면에서 노동자의 고용과 안전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총 4회의 연속 기고를 진행한다.
① 다단계 하청구조가 발전소 폐쇄 국면을 만나면 생기는 일
② 폐쇄 이후에도 추적, 치료되어야 할 발전소 노동자들의 건강
③ 민영화 비용 절감이란 명목으로 후퇴된 안전관리와 재생에너지
④ 발전소 폐쇄 및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담보되어야 할 공공성
6년 반 전 발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김충현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다단계 원하청 구조 속에서 지속되는 '위험의 외주화'에 사회적 관심이 커진 가운데 현장과 언론에서 안타까움과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회의장까지 현장을 방문해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질책했으나, 며칠 후 태안화력에서는 또 한 명의 하청 노동자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연달아 들려오는 발전 노동자의 희생은 '기후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발전소 폐쇄의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 12월 태안화력 1·2호기를 시작으로 2036년까지 발전소 28곳이 폐쇄된다. 사측은 발전소 폐쇄를 인력 충원을 하지 않는 명분으로 활용했고, 이는 최소한의 인원 배치조차 무시하는 잘못된 관행을 강화했다.
발전소 폐쇄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응당 석탄발전소가 폐쇄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며, 이것은 모든 지구 구성원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자는 명분을 가진 에너지 전환과 발전소 폐쇄가 정작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피할 길이 없다.

수십 년 전기 만든 노동자가 북극곰보다 못한 취급
모두를 살리는 에너지 전환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추진돼선 안 된다는 말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지금의 에너지 전환이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발전소 폐쇄를 핑계로 인력 충원이 되지 않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강도와 위험이 커졌다는 것은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발전소 폐쇄로 인해 수천 명 발전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와 발전공기업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과 함께, 발전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북극곰을 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곰만이 아니라 발전 노동자의 삶도 함께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더라도 그 안에서 일해온 노동자들,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도 계속돼야 마땅하다."
지난 5월 31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시민 대행진'을 앞두고 한 발전 비정규 노동자가 쓴 글은 발전 노동자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에도 에너지 전환에 적극 지지할 뜻을 꾸준히 밝혀온 노동자가 '북극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만 같은 현실에 대한 절망감마저 엿보인다. 에너지 전환이 최소한의 형평성을 갖춘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한다는 노동자의 절규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삶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고 모두에게 삶의 기초를 보장할 수 있는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공공재생에너지로 '정의로운' 전환을
김용균 특조위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던 2019년 8월, 특조위 간사 권영국은 김용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원인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했던 구조"에 있다면서, 이 구조가 "외주화와 민간 개방이라는 정책"의 결과라 진단했다. 김용균, 김충현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외주화를 되돌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며, 이는 민간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권고였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고용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도 공공부문이다. 발전소 폐쇄의 맥락에서 수많은 발전 노동자가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외주화와 민간 개방'이라는 정책 틀 안에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의 위협은 다단계 원하청 구조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재생에너지가 90% 이상 민간에 의해 독점된 상황에서 발전 노동자들이 옮겨갈 일자리 찾기는 어렵다.
석탄발전소 폐쇄를 앞둔 태안군은 11조 원 이상을 투입해 태안 앞바다에 1.4GW(기가와트) 규모의 3개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3개의 해상풍력단지 사업자는 모두 민간기업이고, 이 중 2개 사업자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뷔나에너지와 독일 전력기업인 RWE 등 해외 기업이다. 해상풍력은 고용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공공에서 주도할 때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위기를 막고 발전 노동자들을 재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해상풍력 사업을 민간 주도로 추진하면서 고용 안정의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대안은 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노동조합과 기후정의운동이 마련한 공공재생에너지법이 그것이다. 이 법의 목적은 민간이 주도하면서 지체된 재생에너지 확대를 신속히 이루고, 기후 위기 대응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전환의 이익이 공유되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해소하고, 발전소 폐쇄에 따라 고용 위기를 겪는 노동자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민간기업이 추진했을 때 야기되는 환경파괴와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을 통해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약속했고, 새 정부는 '모두가 상생하는 공정경제'를 표방했다. 빈말이 아니라면,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와 발전 노동자 고용 위기에 대해 서둘러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 방향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공공의 역할이 돼야 할 것이다. (끝)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