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이하 현지시간) 브라질에 50% 관세를 압박하며 '브라질판 의사당 폭동' 선동 혐의를 받고 있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재판 중단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과 관계 없이 관세를 지렛대 삼고 사법 절차에 직면한 세계 우파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보인 또 다른 사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했던 구리에 대한 50% 관세가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개한 서한에서 관세를 무기로 '브라질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에 대한 사법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앞으로 보낸 이 서한에서 보우소나루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말았어야 한다"며 이를 "마녀 사냥"으로 칭하고 "즉시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브라질산 모든 상품에 50% 관세를 다음 달 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4월 이른바 "상호" 관세로 책정됐던 10%에서 크게 인상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브라질 대법원이 미국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한 "검열"을 통해 "미국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서한은 7일 한국, 일본 등 14개국에 관세를 통보한 서한과 유사한 형식으로, 나머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소셜미디어에 필리핀, 스리랑카, 리비아, 이라크 등 다른 7개국에 대한 관세 통보 서한 또한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게시글에서 보우소나루에 대한 재판은 "내가 잘 아는,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공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열 번은 일어났다"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밀 문서 반출, 2021년 미 의사당 폭동 관련 대선 결과 전복 시도, 혼외 성관계 은폐를 위한 사업 기록 위조 등 다양한 혐의로 전·현직 미 대통령 중 최초로 형사 기소된 바 있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다 결국 대선에서 패배한 뒤 지지자들을 의회·대통령궁 등에 난입하도록 선동한 쿠데타 모의 혐의를 받고 있다. 홍역을 치른 브라질 법원은 온라인상 반민주주의 허위 정보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이 조사를 이끈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 대법관은 2024년 일론 머스크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 접속 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내정 간섭을 비판하고 대응 조치를 천명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은 독립적 제도를 갖춘 주권 국가로 어떠한 형태의 감독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쿠데타 계획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법 절차는 전적으로 브라질 사법부 관할로, 국가 기관의 독립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어떤 간섭과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소셜미디어 단속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공격 및 폭력적 행위와 혼동해선 안 된다"며 "혐오 표현, 인종주의, 아동 포르노, 사기, 인권과 민주적 자유에 반하는 표현"이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브라질에 대해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브라질과의 무역에서 74억달러(약 10조원) 흑자를 냈다.
룰라 대통령은 "일반적인 관세 인상은 브라질의 경제 상호주의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며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은 브라질의 중국에 이은 두 번째로 큰 교역국으로, 관세가 유지될 경우 브라질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4년 기준 양국 무역 규모는 920억 달러(126조 원)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브라질 관세 부과는 그가 관세를 단지 무역과만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콜롬비아가 미국 추방 자국민 이민자 수용을 거부하자 50% 관세를 위협한 바 있다.
이는 사법 절차에 직면한 외국 우파 지도자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의 지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 극우 마린 르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서도 지지를 표명했다.
트럼프, 구리 50% 관세 발표…전문가 "미, 수입분 자체 충당 능력 없어 제살 깎기"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했던 구리 관세 50%를 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하고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된다고 밝혔다. 건설,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에서 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구리는 그 가격이 경기 선행 지표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광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 관세를 예고하며 8일 미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구리 선물 가격은 전날 대비 13% 급등한 파운드당 5.69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구리 관세가 예상되며 미 구리 선물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30%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9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 구리 선물 가격은 2% 가량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관세로 미국 구리 소비가 감소하고 세계 구리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미국이 구리 수요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리 관세는 제살 깎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의 아시아 상품·에너지 칼럼니스트 클라이드 러셀은 "트럼프의 다소 순진한 경제적 전망과는 달리 미국 구리 시장의 현실은 장·단기적으로 의미있는 구리 채굴·가공 증대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관세 비용이 미국 소비자에 전가될 경우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비용을 기업이 부담할 땐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미국의 최대 구리 수입국인 칠레의 외무장관 알베르토 반 클라베렌은 "미국은 계속 구리가 필요할 것이고 칠레나 다른 나라 수입분을 대체할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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