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관련 논의 진행 여부에 대해 "저는 일단 민생과 경제, 이게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집권세력이 소수자 인권 옹호에 대해 '나중에' 하겠다고 해 비판받았던 지점을 상기시키는 발언이라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3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하실 의사가 있는가' 묻는 질문을 듣고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대선 경선 후보 당시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의사를 묻는 질문에 "사회적 합의"를 들어 유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긴 하다"면서도 "일에는 경중선후(輕重先後)라고 하는 게 있는데 저는 무겁고 우선적인 급한 일부터 먼저 좀 하자, 이런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가능하면 이런 갈등 요소가 많은 의제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그걸 할지 또는 다른 단위가 할지는 좀 봐야겠지만 이런 건 사실 국회가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우린(대통령실은) 집행기관이기 때문에…"라며 "영 안 되면 마지막에 우리가 나서야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국회가 좀 나서서 이런 논쟁적인 요소들은 토론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차별금지법이 어렵다면 생활동반자법 등 대체 입법은 어떤가' 묻는 질문에도 "지난 대선 때 우리 공약이었던 것 같다"며 "여하튼 이런 인권의 문제도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겠다"고만 구체적인 답은 피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답변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은 국회의 몫으로 넘긴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정작 국회에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 이래로 무려 18년째 관련 논의가 공전하고 있기 때문.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지난 2022년 12월에도 국회에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의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측 보이콧으로 반쪽 회의로 남은 바 있다. 이후 21대 국회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별다른 진전 없이 임기가 마감됐고, 22대 국회에서는 아직 새로운 차별금지법 발의 및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2006년 이후 19년째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시민사회에선 민주당과 민주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는 정치적 이유를 사회적 합의 부족이라고 핑계 대지 말라"며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역대 보수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을 형식적으로나마 국정과제로 설정해왔다"며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부터는 사회적합의를 핑계 대며 보수개신교 세력에 굴복하고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에서 삭제시켰다"고 주장했다. 민주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정치적 역할을 끝 없이 뒤로 미루고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차별금지법을 선후경중의 후(後)·경(輕)에 위치시킨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나중에' 발언을 떠올리게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7년 2월 본인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 현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 시민 질문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고 답했는데, 이후 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나중에"를 연호하며 해당 질문자를 가로막아 부적절한 대처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성소수자 단체에선 '나중에'라는 구호를 민주정부 및 민주당의 소수자 관련 정책을 비판하는 용어로 활용해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의정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묻는 질문엔 "전 정부의 과도한 억지스러운 정책, 납득하기 어려운 일방적 강행, 이런 것들이 문제를 많이 악화시켰고 의료 시스템을 많이 망가뜨렸다"며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조금 호전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일단은 정부가 바뀌면서 일종의 긴장감, 불신, 이런 게 조금은 완화된 것 같다"며 "일부 (전공의들의) 복귀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2학기에 가능하면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을 정부 차원에서 많이 만들어 내야 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하나 희망의 전조가 우리 복지부 장관 후보에 대해서 의료단체에서 환영 성명을 냈더라"라며 "그래서 그것도 하나의 희망적인 사인이 아닐까 한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는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를 충분히 하고 또 적절하게 필요한 영역에서 타협을 해 나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복지부 장관이 빨리 임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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