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과연 사물들이 존재하는 비어있는 공간인가?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과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위트모어(Christopher Witmore)의 <반시대적 객체(Objects Untimely: Object-Oriented Philosophy and Archaeology)>는 이 질문을 통해 두 학문 분야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존재론적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 책의 중심에는 기존 사고의 틀을 뒤집는 한 가지 공리가 자리한다. "객체들이 시간을 생성한다"(12). 이 전복적 사유는 시간이 객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오히려 객체들의 관계와 충돌이 시간성 자체를 구성한다는 충격적 재인식을 촉구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고고학적 유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뿐 아니라, 존재와 시간에 관한 근본적 사유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철학적 지진의 진원지가 된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과 4장은 주로 하먼이, 2장은 위트모어가 단독으로 집필했고, 3장과 5장은 두 저자 간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성은 독자에게 관점의 전환과 함께 두 학문 간의 생산적 긴장을 경험하게 한다.
1장 '시간과 객체'에서 저자들은 고고학과 철학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고고학이 오랫동안 시간을 단순히 사물들이 위치하는 중립적 '용기'로 바라보는 플라톤적 관점에 갇혀있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고대 코린토스 발굴 사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전통적 고고학은 유물을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취급하지만, 이는 사실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역설적 작업이다(28-29). 이러한 접근법의 맹점은 시간과 객체 사이의 근본적 관계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객체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플라톤주의적 가정(27)은 실제로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괴리되어 있다. 하먼의 철학적 개입은 시간에 관한 전통적 담론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 전환점을 제시한다. 그는 하이데거와 베르그손이라는 두 거장의 시간 철학을 교묘히 대조하며, 기존 시간관의 한계를 명쾌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2장 '시간의 고대성: 그리스의 객체들'에서 위트모어는 고고학의 근본적 재정의를 시도한다. 그의 도전적 통찰은 고고학을 단순한 "인간의 물질적 유물을 통한 과거 연구"(170)라는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 객체들과 '시간의 고대성' 자체를 탐구하는 존재론적 학문으로 확장한다. 미케네 성채 발굴 사례는 이러한 관점 전환의 실험장이 된다. 위트모어는 여기서 객체들이 단일한 선형적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시간성을 품고 있음을 발견한다.
3장에서는 2장의 내용에 대한 하먼과 위트모어의 심층적 대화가 전개된다. 위트모어는 고고학계가 시간을 둘러싼 관습적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고고학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통찰―시대들의 혼합―을 긁어모았지만, 시계를 생산하는 것에 대한 강박, 객체들을 어떤 순서열의 선을 따라 조직하는 것에 대한 강박, 객체들을 어떤 균일한 시간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강박을 참작한다면 그들은 언제나 다시간성에 대한 더 광범위한 설명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184)라고 지적한다. 이는 고고학적 방법론의 맹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더 나아가 이 장은 지적 역사에서 발견되는 역설적 공존의 문제를 파고든다. "여러 시대가 병치되는데, 이는 공존을 뜻합니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가 '잔존물'이라고 일컬었던 것들이, 어느 특정한 단계의 신념과 어긋나는 유물들이 그 세 단계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189). 이 관찰은 선형적 발전 모델의 한계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4장 '시간의 근원으로서의 객체들'에서는 논의가 철학적 차원으로 심화된다. 하먼은 객체지향존재론(OOO)의 렌즈를 통해 시간의 본질을 재해석한다. 그의 주장은 과감하다. 시간은 실재의 심층에 속하기보다는 오히려 표면에 속한다. 이 명제를 중심으로 OOO의 사중 구조(실재적 객체, 실재적 성질, 감각적 객체, 감각적 성질)를 통해 시간의 발생 원리를 설명한다. 특히 시간이 '감각적 객체와 감각적 성질 사이의 긴장'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은 기존 시간 이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다. 하먼은 맥태거트의 '시간의 비실재성'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울펜데일, 그래튼, 클라인헤이런브링크 등 비평가들의 반론에 대응하며 자신의 이론을 견고히 한다. 그가 제시하는 핵심 통찰—시간이 중대한 무언가를 초래하지 않는다면 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과 시간의 가역성—은 전통적 시간관의 토대를 흔든다.
5장에서는 이러한 쟁점들을 두 저자가 대화를 통해 더욱 깊이 파고든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위트모어의 예리한 지적이다. "표면에 현존하는 시간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정도로, 시간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거듭 주장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는 당신의 비판자들에게 되돌아가게 됩니다"(350). 이 한마디는 철학적 논쟁의 순환성과 그 한계를 정확히 포착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는 점이다. 시간을 모든 것을 담는 중립적 배경이 아닌, 객체들 사이의 관계와 긴장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전통적 시간론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인식론적 전환이다. 시간이 객체들을 담는 것이 아니라 객체들이 시간을 생성한다는 이 역설적 명제는 우리의 존재론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새로운 사유의 지층을 열어젖힌다.
고고학 방법론에 대한 비판 역시 예리하다. 고고학의 분류학적 정화활동은 유적지의 복잡한 관계망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본질적 다양성을 제거한다. 미케네 발굴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단순화는 유적이 품은 다중적 시간성과 변화의 잠재력을 소멸시킨다. 마치 정치적 담론이 복잡성을 제거하듯, 고고학적 분류는 과거의 풍부한 직조를 단일한 내러티브로 환원시키는 폭력을 수행한다. 이는 질서와 체계를 추구하는 학문적 충동이 실재의 혼종적 풍요로움을 길들이려 할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손실을 드러낸다.
물질과 형태에 관한 논의는 현대 고고학의 물질성 담론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다수의 고고학자들이 물질을 관념적 구조의 하부에 위치한 수동적 기층으로 이해하는 반면, 하먼과 위트모어는 라투르의 통찰을 확장하여 물질을 관계의 역동적 네트워크 속에 위치시킨다. 형태로서의 객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나 인식 방식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하먼의 주장은 객체의 존재론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핵심적 통찰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이 단순한 기표의 담지자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고 방사하는 능동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혁신적 관점은 몇 가지 미해결 과제를 남긴다. OOO의 사중 구조가 실제 고고학 연구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다. 하먼 스스로도 인정하듯 OOO는 현재 방법보다는 이론으로서 더 발전되어 있으며, 이는 철학이라는 학문적 맥락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객체-시간 관계에서 인간 행위자의 위치가 다소 모호하게 처리된다. 시간의 소급적 양태와 실재적 객체들의 부분에 대한 영향력에 관한 하먼의 논의는 인간 주체성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 이는 탈인간중심주의를 향한 급진적 전환이 맞닥뜨리는 불가피한 긴장이자,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서 현대 사상이 끊임없이 마주해온 난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시대적 객체>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시간 직관을 재고하게 만드는 도전적 텍스트다. 고고학자들에게는 자신의 분야를 존재론적으로 재검토할 기회를, 철학자들에게는 추상적 개념이 물질세계와 어떻게 교차하는지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생산적 대화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철학을 당면한 사건만큼 미묘해야 하는 유연한 체조에 비유한 저자들의 표현처럼, 이 책은 두 학문 분야가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적 자극과 창의적 긴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지적 모험의 중심에는 객체들이 시간을 생성한다는 근본적 명제가 자리한다. 이는 시간을 객체 바깥의 절대적 흐름으로 보던 뉴턴 이래 과학과 철학의 정설을 뒤집는 과감한 도전이다. 하먼과 위트모어는 미케네 성채와 코린토스 유적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 관점의 설득력을 높인다. 유물들은 단일한 시간선 위에 정렬되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스스로 다층적 시간성을 방사한다. 추상적 철학이 고고학 현장의 흙먼지 속에서 검증될 때, 그 통찰은 더욱 빛을 발한다. 물리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객체의 숨겨진 깊이, 시간의 중첩과 교차, 물질의 능동적 행위—이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하는 이 책은 그 제목처럼 진정 '반시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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