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측이 성과로 자랑했던 체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사업 계약과 관련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정부 임기 종료 전에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계약 성사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7일(이하 현지시간) 체코 공영 방송인 '라디오 프라하 인터내셔널'(Radio Prague International)은 피알라 총리가 방송과 인터뷰에서 "두코바니 신규 원자로 건설 최종 계약이 현 정부 임기 종료 전에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EDU II(체코전력공사인 'CEZ'의 자회사)는 이날 브르노 지방 법원에 두코바니 신규 원자로 최종 계약 체결을 중단시킨 가처분 명령을 해제해 달라는 신청을 제출했다고 밝혔다"며 "EDU II 측은 법원이 다른 당사자들의 의견을 허용하지 않고 조치를 취했으며, 이러한 지연으로 인해 전체 프로젝트 일정이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6일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브르노 지방법원은 지난해 한수원과 같이 입찰에 참여했던 프랑스 EDF(프랑스 전력공사)의 제소에 따라 EDU II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간 핵발전소 2기 건설 계약을 중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정식 계약을 하루 앞두고 나온 결정으로, 법원은 해당 사안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까지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법원은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해 "계약이 체결될 경우 이후에 법원이 EDF에 유리한 판결을 하더라도 EDF는 계약을 놓고 경쟁에서 완전히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EDF 측은 이번 제소에 대해 신규 핵발전소 건설 입찰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통신에 밝혔다. 이들은 또 자신들은 "체코 기업에 계약 가치의 60%를 제공할 수 있지만 한수원이 제공하는 것은 이보다 더 낮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체코 기업이 참여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약 하루 전에 이같은 결정이 나오자 피알라 총리는 당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의 본인 계정에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입찰 평가 절차가 관련 법률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되었다고 확신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공급업체 선정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민과 기업 모두에게 저렴한 전기 공급 및 최고의 보장 여부였다"며 "법원이 모든 상황과 위험을 인지하고 있으며 신속하게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결이 3주 정도 지난 시점에서 피알라 총리가 올해 10월로 예정된 체코 총선 전까지는 정식 계약이 어렵다고 밝히면서 10월 정권이 교체될 경우 계약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17일(현지시간) 체코 측은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바 있는데, 당시 EDF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발전소 회사 웨스팅하우스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수원이 선정되자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술 및 특허권이 사실은 자신들이 보유한 것이라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진정(appeal)을 제출했다. 이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월 지식재산권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고 한수원의 체코 핵발전소 신규 사업은 무난히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법원이 정식 계약을 정지시키면서 또 다시 암초를 만나게 됐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7일 체코와 계약이 성사될 것을 확신하고 국회의원까지 포함한 대표단을 꾸려 체코행을 결정해, 체코 현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 특사단으로 임명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강인선 외교부 2차관, 김성섭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등 관계부처의 고위급 인사를 대거 파견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소속 이철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국민의힘 박성민·강승규·박상웅 의원,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 등 여야 의원들까지 참석했지만 계약도 못하고 돌아왔다.
EDF 측이 이미 지난 2일 이미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안덕근 장관은 체코 프라하 도착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체코 정부 측에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초청해서 (체코 방문) 일정을 잡았다"며 "특별히 안이한 대응을 한 것은 아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경쟁 당국이 두 번이나 명확히 판결한 바 있어 본안 소송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답을 내놨다.
그는 올해 10월 체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 계약이 더 연기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불가피하게 (실제 계약은) 연기될 수밖에 없다. 며칠일지 몇 달일지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지만 최대한 신속히 마무리해서 원전 산업 경쟁력과 역량을 키울 기회로 만들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해당 계약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체코 총리 측이 선거 결과에 따라 성사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상황이라, 실제 계약 성사는 10월 총선 결과 및 체코 법정에서의 판결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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