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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김문수 주장에 윤석열 호응한 '홍범도 지우기' 실패…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에 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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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광훈·김문수 주장에 윤석열 호응한 '홍범도 지우기' 실패…홍범도 장군 흉상 육사에 존치

육사 "흉상은 육사 내에 존치할 계획…더 이상 추진되고 있는 사항 없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현 위치에 존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통령 선거 후보자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 극우 인사들이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을 부각하고 윤석열 정부가 여기에 호응하며 철거를 시도했으나 여론의 역풍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으로 인해 철거 및 이전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6일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실은 육사 내 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에 대해 육사 내 존치 및 재배치 여부가 결정됐냐는 질문에 육군사관학교가 "흉상은 육사 내에 존치할 계획"이라는 답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육군사관학교 측은 정 의원실에 "육사 내에서 현 위치에 그대로 둘지, 아니면 다른 적절한 장소로 이전할지에 대해서는 지금 더 이상 추진되고 있는 사항이 없다"며 교내 종합강의동인 충무관 앞에 세워진 흉상을 현 위치에 그대로 둘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육사 측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더 이상 논의가 되거나 어떤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것 자체가 언급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옮기려고 하면 예산도 결심도 필요하다 보니 단시간에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다"며 사실상 철거 및 이전 계획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지난 2023년 8월 25일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4개 단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 2023년 8월 25일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4개 단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윤석열 캠프에서 '여성특보단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도 참석해 발언을 했다. ⓒ국회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이들은 육사가 충무관 앞에 설치한 일제강점기 독립군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며 "이는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억지하고 전시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의 동상)이 있어야 되겠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가능하면 (흉상은) 육군 창설이나 군 관련 역사적 인물로 하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답해 철거 계획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 철거 계획에 대해 "최근의 문제가 아니고, 지난해부터 검토되었던 것"이라면서 "여러 논란이 있기 때문에 교내 기념물 정비하는 기회에 정리를 좀 하려고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사흘 뒤인 28일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배포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고 △소련 공산당에 가담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력이 있다는 것이 문제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 및 독립운동을 수십년 간 연구했던 연구자들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독립군들을 도와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2021년 발표한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의 귀환, 그 시사점과 과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홍범도의 '자유시사변'(1921년 6월 28일) 가담설이나 '자유시 학살' 개입설, '한국독립군 대학살', '독립군 학살 공모'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허재욱(許在旭, 흔히 허영장[許營長]으로 불림) 휘하 부대 등 홍범도 관련 독립군부대가 이 사변의 피해자라 할만 했다"며 "(자유시) 사변 당시 홍범도는 장교들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는 기록이 전한다"고 밝혔다.

그는 "홍범도가 자유시사변 관련 고려혁명군사법원 재판관의 한사람으로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형(징역형 2년)을 받은 독립군은 3명 뿐"이었다며 "사변 직후부터 상하이파 등의 반발과 상하이파 대표단의 외교적 노력, 코민테른 한국위원회의 '한국문제 결정서'(1921.11.15) 등으로 이 재판의 결과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윤상원 전북대학교 교수는 지난 2017년 '홍범도의 러시아 적군 활동과 자유시사변'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홍범도는 자유시사변을 처리하는 고려혁명군사법원 재판관의 위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홍범도는 재판에서 병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공정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원으로 참가했다고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위원을 맡은 일은 홍범도 개인에게는 무척 불행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가입했기 때문에 육사에 흉상을 설치할 수 없다는 국방부의 논리에도 허점이 크다는 연구자들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했을 때 독립을 위해 공산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참변이 일어난 뒤 6년이 지난 1927년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장세윤 수석연구원은 이에 대해 "'무장부대 통합'이라는 명분, '혁명러시아 당국 및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권위' 인정, 그리고 '무기・식량 등의 원활한 공급(즉 보급문제)'이라는 현실문제에 대한 고려가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독립을 위해 소비에트의 힘이 필요했다는 것은 이승만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임시대통령이 모스크바로 주요 인사들을 파견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 2010년 <역사문화연구>에 수록된 '러시아(소련)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상호 경쟁하던 상하이파, 이르쿠츠크파 등 고려공산당에 더하여 1921년 중반 기호파 중심의 우파가 주도하뎐 상해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 이승만은 이동휘가 파견했던 한형권을 소환하고 외무차관 이희경과 안공근을 모스크바로 파견"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을 김일성 주석과 스탈린 정권이 한반도에 일으킨 전쟁과 연결짓기도 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이 1927년이었고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이 1937년이며 1943년에 사망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억지스러운 끼워 맞추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 지난 2018년 3월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논란이 커졌지만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밀어붙였다. 2023년 8월 31일 육사는 '육사 교내 독립투사 흉상 관련 입장'이라는 제목의 공지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육사는 충무관 입구에 있는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 및 충무관 내부에 있는 박승환 참령의 흉상 등 독립투사의 흉상을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겠다고 전했다.

당시 육사는 철거 및 이전 결정에 대해 "각계 각층의 의견"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적잖은 반대 의견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특정 정치 세력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됐다.

특히 전광훈 목사와 김문수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 극우 인사들이 홍범도 장군 흉상 설치에 대해 비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극우적 시각을 반영한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었다.

전 목사는 유튜브 '전광훈 목사의 홍범도 공산사상을 밣히다(밝히다의 오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홍 장군 유해 송환 다음날 "이 사람(홍범도)이 오히려 독립군을 수도 없이 탄압하고 죽인 범인 중의 하나다. 이 사람은 애국지사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라며 "문재인이 이 사람 앞에서 경례를 하면서 울었다.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문재인)은"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김문수 당시 경사노위 위원장은 지난 2021년 8월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본인 계정에서 "홍범도. 자유시 참변 때 독립군 수백 명을 학살한 소련군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고 레닌으로부터 권총·군복·상금까지 받고, 소련 공산당원이 됐습니다. 광복절·건국절에 이승만은 지워버리고, 소련공산당원 홍범도만 띄우는 문재인의 목적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가요"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극우인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지난해 4월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의 참패가 결정되면서 육사 바깥이 아닌 육사 내에서 옮기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초 이 흉상들이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질 수 있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5월 2일 광복회는 보도자료에서 "선거가 끝나자 마자 국방당국이 행한 조치가 멀쩡하게 서 있는 육사 내 독립운동 선열들의 흉상을 이전한다는 소식"이 있다"며 "국방부는 비겁하게도 '육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방식으로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지 않고 육사 안 별도 장소에 옮기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우석 육군 공보과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관련된 계획을 수립 중에 있고 그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며 "육사에서 종합계획을 현재 검토 및 수립 중에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렇게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 충무관 앞에 존치되고 있던 와중에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로 인해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 결정을 받으면서 더 이상 흉상 이전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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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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