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이 나오는 형국이다. 현장의 전문가들도 따라가기 힘들 만큼 새로운 기술과 그 활용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현장 바깥에서는 더욱 따라가기 쉽지 않다.
과거로부터 게임과 인공지능(AI)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가장 먼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퐁>(Pong, 1972)은 게임을 하려면 2명의 사람이 필요했다. 본래 사람과 사람이 경쟁하는 게임이었지만, 이후 컴퓨터가 상대방이 조종할 패들을 대신 잡아주면서 플레이어 혼자서 게임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초기의 게임에서 인공지능은 상대방의 역할을 해주었다. <팩맨>(Pac-Man, 1980)에 이르러서는 네 개의 유령이 각각의 성격을 가지고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형태가 되었다. 유명한 게임 개발자 피터 몰리뉴와 지금은 구글의 딥마인드 CEO로 유명한 데미스 하사비스가 AI 디자이너로 참여한 <블랙 앤 화이트>(Black and White, 2001)에서는 행동 트리들을 사용하여 인공지능이 좀 더 사람 같아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작업했다.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것은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심시티>(SimCity, 1989) 등에서는 인공지능이 단순히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기도 했다. 다만 과거 이처럼 재미를 위해 게임을 운용한 인공지능들은 명확하게 "지능"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지금 유행하는 딥러닝과 같은 알고리즘으로 동작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것을 명확하게 같은 범주로 묶기는 힘들다.

비단 게임 운용 뿐만이 아니라 과거부터 게임의 콘텐츠 생성에서도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왔다. <로그>(Rogue, 1980)는 알파벳과 특수 기호로 던전을 나타내는 RPG게임이다. 매 게임 플레이마다 던전이 새롭게 생성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흔히 절차적 콘텐츠 생성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콘텐츠 생성은 던전 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아이템 등의 생성에도 활용된다. 이러한 장르의 게임은 '로그라이크'(Rogue-like)라고 지칭되는데, 이처럼 던전이나 게임 환경의 자동 생성은 로그라이크의 핵심 기능으로 꼽힌다.
90년대 말 전국민을 사로잡아 지금껏 그 인기를 끌어온 <디아블로>(Diablo, 1997) 역시 이러한 절차적인 맵 생성과 아이템 생성을 특징으로 한다. <디아블로>의 이같은 특성은 게이머로하여금 반복적인 플레이를 가능케해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는 큰 요인이었다.
절차적 생성은 인력이 충분한 대형 게임사보다 소규모 인디게임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규모의 한계로 작성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을 절차적 생성으로 극복하려는 것이다. <스펠렁키>(Spelunky, 2008)의 경우 기존 RPG에서 활용되던 맵 생성을 사이드뷰의 플랫포머 액션 게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큰 성과를 내었으며, 게임의 콘텐츠를 늘리는데 적극적으로 이용되어 <노 맨즈 스카이>(No Man’s Sky, 2016)에 이르러선 행성과 우주, 그리고 행성의 생태계까지 절차적으로 생성하여 거의 무한한 우주 환경을 구현해냈다.

그 동안의 인공지능 기술들은 거의 규칙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4승을 가져가면서 딥러닝이 다시 한번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을 둘러싼 게임 환경 역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딥마인드는 고전 게임기 아타리 2600을 활용하여 게임 플레이를 학습했다. 구글은 <스타크래프트II>(Starcraft II, 2010)를 플레이할 수 있는 딥러닝 인공지능들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한편 엔씨소프트는 MMORPG <블레이드 앤 소울>(2012)에서 플레이어를 상대할 수 있는 강화 학습 인공지능을 선보였다. 2018년 열린 PVP 대회 "블소 토너먼트 월드 챔피언십"에서 등장한 의문의 플레이어는 프로게이머들을 압도하며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강화 학습을 사용한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캐릭터였다.
알파고 이후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동원한 IT 기업들은 딥러닝을 통한 수많은 시도들과 결과물을 내놨다. 알파고나 비디오 게임을 하는 인공지능은 단순히 사람과 싸워 승리하는 인공지능이었지만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생성형 인공지능은 상황을 다시 한번 바꾸고 있다. 알파고의 인공지능이 게임의 상대방을 조종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면, LLM과 생성형 인공지능은 게임 개발 환경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있다.
ChatGPT를 비롯해 클로드, 제미나이 등의 LLM 서비스들은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군에 깊이 침투했다. 재미 삼아 쓰는 경우도 있으며 실무에 어떻게 활용할지 깊게 고민하며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바꿔나가는 경우도 많다. 특히 프로그래밍 환경에서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LLM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개발툴에 LLM을 직접 연결해 프로그래밍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공지능에 의존해서 개발하는 작업을 지칭하는 "바이브코딩"이라는 신조어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그래머 직군이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게임 개발의 다른 분야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아트와 오디오, 시나리오, 라이브 서비스 모두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반응은 극단으로 갈린다.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모두가 존재한다. 특히 아트의 경우 소규모 집단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아트 에셋을 생성해서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더구나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의 일관성 유지가 쉽지 않아 게임의 퀄리티를 담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시나리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 <어쌔신 크리드>나 <레인보우식스> 등으로 유명한 유비소프트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게임 속 NPC의 대사를 자동 생성하는 '고스트라이터'를 공개한 바 있다. 고스트라이터가 자동 생성하는 대사는 게임 내 발생하는 이벤트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 작업자를 도울 수 있는 콘셉트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 플레이어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끈 <발더스 게이트 3>(Baldur’s Gate 3, 2024)를 제작한 라리안 스튜디오는 '인공지능이 훌륭한 기술이긴 하지만 원화를 만들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대신 아티스트들을 고용했고, Chat-GPT를 통해 대사를 만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에서 2023년에 일어났던 미국 배우 조합 SAG-AFTRA의 파업 쟁점 중 인공지능을 사용한 배우나 각본가의 대체를 막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게임 제작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은 단순히 작업자의 능률 향상 여부를 가르는 것을 넘어 실제 작업자의 크레딧과 결과물이 온전히 보장되는가에 관한 쟁점을 낳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비소프트가 고스트라이터를 동원해 작성한 문장이 과연 온전히 작업자에 의한 크레딧을 부여받을 수 있는가. 그에 더해 작업자가 작성한 NPC스크립트를 고스트라이터가 학습하여 비슷한 패턴의 작성물을 내놓는다면 그 크레딧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 이는 앞으로 우리가 겪을 문제들이다.

이런 와중에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이 등장하면서 우리를 또 앞서나가는 모양새다. MCP는 '인공지능을 위한 USB-C'라는 콘셉트로, 기기들이 자기들끼리 USB-C를 통해 연결할 수 있는 것처럼 LLM 서비스들이 다른 앱이나 다른 LLM 서비스와 같은 규격으로 통신하는 콘셉트의 기술이다. 이미 깃허브(Github)가 제공하는 사용자 보조 서비스인 코파일럿(CoPilot)의 프로그래밍 통합 개발환경이 VisualStudio와 연결되어 프로그래밍 작업을 보조할 수 있게 하고 있고 커서(Cursor)처럼 서비스 단계에서 인공지능과 연결되어 있는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MPC가 제공하는 환경은 차원이 다르다. 누구나 MCP를 이용해 명령어 셋을 제공하면 LLM서비스가 직접 해당 앱들을 이용하여 직접 작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금은 사람이 LLM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 답변을 기초로 앱에 작업을 지시할 경우 MCP로 앱과 LLM서비스가 연결되어 있다면, MCP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질문답변과 사람이 옮기는 과정을 건너뛰고 LLM 서비스가 직접 앱에 접근하여 작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미 유니티나 블렌더 등 게임엔진이나 3D 저작툴에서는 클로드같은 LLM서비스가 직접 결과물을 내는 데모들이 동작하고 있다. 얼마 가지 않아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어 보인다.

할루시네이션, 저작권, 일관성 유지 등 인공지능 기술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점점 해결되고 있다. 미국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게임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개발자의 84%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우려하고 있었지만 거의 절반의 개발자들이 회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환경은 점차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접근은 위험하겠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작업의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계산기가 등장하고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처럼 이 기술은 우리가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이 기술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고려해야 할 많은 것이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있고 노동문제도 있으며, 개발의 크레딧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도 문제다. 소규모의 여력으로 더 크고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크게 가져가야할 것이다. 이처럼 산적한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뭉뚱그려서 모두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계하고 섬세하게 나눠서 분석할 필요가 있지만 쉬워보이는 일은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게임 개발자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들을 이용해 어떻게 재미난 게임을 만들 것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