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날 국무회의가 조기 대선 출마가 점쳐지는 한 대행이 마지막으로 소집하는 국무회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그는 이날 회의에서 대미 통상 문제 등 한국이 직면한 위기 상황에 대해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와 '현재를 책임지는 행정'이 힘을 모아 나간다면 작금의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다시 '위로 앞으로' 도약하며 세계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한 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난 17일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돼왔다"며 "이번 개정안은 헌법에 규정돼 있는 통치구조와 권력분립의 기초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현행 헌법 규정과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재의요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한 대행은 "헌법 제71조에 의하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토록 하고, 권한대행의 직무범위에 대해서는 헌법은 별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헌법 해석 관련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4일 한 대행 탄핵심판 결정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비적·보충적으로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국무총리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대통령의 지위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당시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에 따라 그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기는 하지만 이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과 비교해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인 민주적 정당성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가사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자로서 국무총리는 대통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위에 있다"며 "헌법 제71조가 대통령이 궐위나 사고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대통령직의 '승계'가 아니라 '대행'이 이루어지도록 규정한 이유도 해당 공권력 주체가 행사하는 권한의 크기는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상응해야 한다고 이해되는 민주적 정당성의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시했다.
한 대행은 그러나 이날 "이번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에 대해서만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해, 헌법에 없는 권한대행의 직무범위를 법률로써 제한하고자 하고 있다"며 개정안 내용을 비판했다.
한 대행은 다만 "또한 헌법 제112조 제1항은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명확하게 6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개정안은 임기가 만료된 재판관이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헌법재판관 임기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반한다"고 개정안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적확한 지적도 했다.
한 대행은 "저는 이 같은 헌법 훼손의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며 국민 여러분들의 넓은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외에, 한 대행은 이날 회의에서 한미 통상협상 및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경제 현안을 언급했다. 한 대행은 "지난주 워싱턴D.C.에서 한미 경제·통상 수장이 참여하는 '2+2 통상 협의'가 있었다"며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은 이번 협의를 통해 굳건한 양자관계를 재확인했으며, 우리 대표단은 향후 협의의 '기본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그간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번 주부터는 관세·비관세 조치, 조선업 협력방안 등 분야별 실무협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며 한미 양국 간 '상호이익이 되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이지만, 협의가 마무리되는 7월까지 숱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며 때로는 국익을 위해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한 대행은 "그러나, 우리는 늘 도전에 응전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다"면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정한 글로벌 무역․통상 질서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불굴의 도전 정신과 공직자들의 헌신과 혜안을 바탕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무역 대국'으로 발돋움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는 우리 국회와 정치권의 협력도 절대 불가결한 요소"라며 "앞으로 미국과 호혜적인 통상 협의를 이끌어낸다면 굳건한 '한미동맹'은 번영의 '경제동맹'으로 한층 더 성숙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정치권의 협조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부총리와 산업부 장관을 중심으로 모든 부처가 '원팀'이 되어 지혜를 모으고, 국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대미 협상을 지휘해온 한 대행의 통상적 지시로도 볼 수 있지만, 한 대행이 조만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한 대행은 또한 내수 회복 지연, 글로벌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가 등 대내외 경제 위기 요인들을 언급하며 "어느 때보다 '입법권'과 '예산권'을 통해 민심에 부응해야 하는 국회의 주도적 역할이 절실한 때이지만, 아직도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겨냥했다.
그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경제안보 강화를 위해 한시가 급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안,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안, 지방투자 기업에 획기적인 규제·조세 특례를 부여하는 지역균형투자촉진특별법 제정안 등 하루빨리 처리되어야 할 법안들이 많다. 너무나 절박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지난주 12.2조 규모의 '필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추경의 효과는 '속도'가 좌우한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원칙에 부합하고 '신속한 처리'가 전제될 경우, 정부는 국회의 추경 논의에 유연하고 전향적으로 임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한 대행이 이날 "국경 앞에서는 정부와 국회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민생 앞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와 '현재를 책임지는 행정'이 힘을 모아 나간다면, 작금의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다시 '위로 앞으로' 도약하며 세계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부분이다.
선출직 정치인과 임용직 행정관료들의 협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치는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신이 행정관료로서 한국의 '현재를 책임'져왔다는 자부심 또한 은근히 드러낸 대목으로 보인다. 한 대행이 대선 출사표를 던질 경우, 이 부분의 메시지를 더 가다듬어 재차 강조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정치권과 관가 안팎에서는 한 대행이 오는 30일 방한하는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을 접견하는 일정까지 소화한 이후, 5월 1~3일 중 총리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한 대행을 보좌해온 정무직 참모들은 사표를 내고 대선 캠프 구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손영택 총리비서실장은 전날 사표를 제출했고, 김수혜 공보실장과 신정인 시민사회국장 등 다른 참모들도 '사직 후 캠프 합류'설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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