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중 양측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에 구조물을 설치한 것과 관련, 순수 양식 시설이며 한국 측이 직접 현장에 방문해 조사를 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에서 중국 측은 서해 구조물에 대해 필요하다면 한국 측 관계자들의 현장 방문을 주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알려졌다. 이와 관련 24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은 서해상에 설치된 3개의 구조물이 순수한 양식 시설로서 서해상의 영유권 문제나 해양 경계 문제와 무관하다는 점을 저희한테 설명을 해줬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이날 대화를 통해 중국이 잠정조치수역 내에 추가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저희 측은 어떠한 경우에도 추가적인 구조물의 일방적인 설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1월 개최 예정인) 에이펙(APEC) 정상회의 등을 앞두고 양측이 이번 회의를 통해 이 문제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자는 데 공감했다"며 구조물 설치가 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배경을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이 통상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될 경우 회담에 임박해 이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는 20여 명의 각계 대표단이 방한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중국 측이 외교적 수요가 있을 경우 특히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지방 정부 관계자가 보통 중앙(정부)의 대표단에 포함되는 일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지방 정부 관계자가 방한을 해서 우리 측에 설명을 해주는 것"이 있었다면서 협상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실제 중국은 한국 대표가 구조물에 대해 설명을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해당 시설이 양식용이며 서해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양식용이라고 해서 구조물 설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당국자는 "서해에 (한중 간) 해양경계획정 협상이 마무리가 안됐다. 유엔 해양법협약을 보면 최종 해양경계 획정이 이뤄지기 전에 연안국은 특정 이슈에 대해 잠정약정 체결이 가능한데 이것이 한중 간 체된 어업협정이고, 여기에는 그물을 통해 수산업을 하는 내용이 규율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측은 (구조물 설치가) 어업협정 위반은 아니라고 하는데 잠정조치수역에서는 한중 모든 어선들이 자유롭게 항행해야 한다. 그런데 구조물이 설치되면서 우리의 항행과 조업에 불편함이 초래됐고 이에 우리의 해양 권익이 손상되고 있다는 점을 (중국 측이)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양식용 구조물이라고 해도 "(잠정조치수역에서는) 한국과 중국 어민들이 어디든 자유롭게 어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구조물이 설치되면 우리의 어업 활동이 물리적으로 방해된다"며 구조물 설치가 어업협정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조물 이동에 대해 중국 측은 2개는 물에 뜨는 부유식이고 1개는 영구적이지는 않지만 고정 돼있는 형태라며, 당국이 아닌 민간의 자금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시설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은 해당 회담에서 지난 2월 한국이 중국 측 구조물 조사에 나선 것과 관련, 양식장을 운영하는 민간 업자들의 우려가 있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한국 측의 조사를 중국이 막으면서 양측 해경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중국측이 한국에 구조물 조사를 주선하겠다고 하더라도 민간에서 거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는데, 정부는 중국의 사회 특성상 민간의 우려 때문에 당국이 추진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의 구조물 설치에 대해 "비례적 대응 조치를 포함해 실효적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우리도 잠정조치수역에 구조물을 설치하겠다는 뜻인지에 대해 이 당국자는 "어떤 시설물인지는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는 2018년에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한중 언론에 해당 구조물이 첨단 심해저 양식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됐다. 그러다 2022년 해당 시설이 석유 시추 시설과 비슷해지면서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이후 그해 6월에 열린 2차 한중 해양협력대화부터 해당 문제가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중국의 구조물 철거 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으나 일단 추가 구조물 설치를 막는 등 상황을 멈추게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지금은 이를 어업 시설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후 이와 유사한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요새화를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해당 시설이 석유 시추 시설과 유사하다는 점도 양국 간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고정된 구조물'에 해당될 수 있어 차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이날 대화는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국장과 중국 외교부 훙량(洪亮) 변계해양사무국장을 수석대표로 하여 한국은 외교부, 해수부, 국방부, 해경청이 중국 측에서는 외교부, 자연자원부, 국방부, 교통운수부, 해경국 등의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대화는 지난 2019년 12월 양국 외교장관 간 합의에 따라 신설됐으며 그간 두 차례 (2021년 4월, 2022년 6월) 화상으로 개최됐고 대면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는 이날 대화에 따라 △서해 구조물, 불법조업 등 양국 간 현안을 다루는 '해양질서 분과위'와 △공동치어방류 수색구조 등 협력 사안을 다루는 '실질협력 분과위'가 설치됐다며 분과위는 양국 외교부 과장이 주재하고 관계부처의 관계자 참여 하에 사안별로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