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1일 '대통령 임기 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전국 5대 광역권 확장' 공약을 발표하며 행정절차를 대폭 줄이고, 안전 관련 규제를 간소화해 신속한 건설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장 및 노동계에서는 노동자 안전을 '빠른 공사'와 맞바꾼 "위험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대선캠프에서 'GTX 전국화 계획' 공약을 발표했다. 기존에 계획된 수도권 GTX 노선의 공사 지연에 불만을 표출한 김 후보는 "민간에 맡겼으면 훨씬 더 빠르고 쾌적하게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은 속도보다 안전성, 정확성, 민원을 생각하니 빨리 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사고 안 나는 것을 선택하게 돼있다"며 "그러다 보면 자꾸 늦어진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서류 검토도 한 번으로 줄여야 한다. 모든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도 전부 구청으로 넘겨야 한다"며 "구청장이 하면 인허가 속도는 확 준다. 철도도 똑같다"고 했다. 그는 "철도는 통상 (완공에) 2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너무 늦는다. 기자들이 관심갖고 밀어주면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더 값싸게 시민이 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한민국은 속도를 높여야 한다. 철도, 도로 모든 면에서 (공사)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는 했던 일을 또 한다(는 데 있다)"며 "안전을 너무 많이 주장하면 속도는 늦어진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김 후보는 이처럼 GTX 전국화 공약을 발표하며 여러 차례 '공사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김 후보가 내세운 '빠른 노선의 완성'은 결국 노동자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지만 일터에서 발생하는 안전 문제는 이날 그의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안전 문제에 관해 김 후보는 "기술적으로" 이미 시스템이 완비돼 있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이미 GTX 노선 공사 현장에서는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지난 2022년 3월 서울 종로구 당주동 GTX-A 5공구 공사 현장에서 30대 하청노동자가 약 100킬로그램의 전선 드럼(긴 전선을 감아두는 용도로 사용하는 도구)에 맞아 사망했고, 2023년 11월 경기 화성시 오산동 GTX-A 공사 현장에서는 40대 하청노동자가 작업대 붕괴로 사망했다.
김 후보의 공약대로 노선을 빨리, 더 많이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면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게 될 우려가 제기된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출신의 김 후보는 이미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노란봉투법'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중대재해처벌법 무용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 노동자 안전과 보호에 있어 후퇴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직 철도노동자 백남희 씨(전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김 후보의 공약은 위험하다. 특히나 GTX는 지하 구간이 있어 안전을 중시해야 하는데, 안전 관련 검토 사항을 축소하고 인허가까지 더 간단하게 하면 걸러내야 할 부분도 걸러내지 못할 것"이라며 "빠르게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씨는 "철도는 한 번 건설해 놓으면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 다시 보완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 20년이 아니라 그 이상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안전을 중심에 놓고 해야 한다"며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주는 구조도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김 후보가 '민간 자본 투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관해 그는 "위험하다"며 "GTX에 민간자본이 들어오는 부분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사실상 철도를 알게 모르게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철도 관련 연구자인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또한 통화에서 "지하에 새 노선을 까는 걸 우선하기보다는, 기존 노선 및 타 계획선을 활용해 광역철도망을 구성하는 게 우선이다. 이렇게 해야 위험한 공사현장 자체를 줄일 수 있다"며 "무리하게 추가 사업을 벌이면 많은 요인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위험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인간의 노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겨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데, 사람들이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라며 "뭐든 빨리 만드는 것보다, 인권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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