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윤심(尹心)'이 모든 걸 망쳤다. 윤석열은 단 한번의 선거(대선) 승리로 착각에 빠졌다. 본인을 프리기아 황금의 왕 '미다스'라 여겼다. 자신을 임명한 문재인, 조국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그는 대선 승리를 온전히 자신의 성과로 생각했다. 영혼의 단짝 김건희 정도에게만 공의 절반을 허했다. 대선의 자장 속에서 이뤄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자, 착각은 망상이 됐다. '윤심'의 탄생이다.
국정 운영을 시작한 윤석열은 당대표 이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지분을 챙겨 '집권 여당 대표' 행세를 하는 그가 꼴도 보기 싫었다. 2021년 말 유튜버들이 제기한 이준석 성접대 의혹 사건을 빌미 삼았다. 당 윤리위원회를 동원해 당대표에게 초유의 당원권 정지 결정을 내렸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사라지자, 윤석열은 당을 장악하기 위해 '윤심 후보' 점지에 나섰다.
윤석열에게 후보 단일화 선물을 안겨준 안철수가 당대표 후보에 나서면서 '윤안 연대'를 언급했다. 감히 대선 승리 지분을 건드린 행위에 대해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윤심'을 오독하지 말고 팔아 먹지 말란 얘기였다. 왕실의 명이었다. 당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나경원에 대해선 "초선 의원들의 집단린치 사태(윤상현의 표현)"의 굴욕적인 일이 벌어졌다. '윤심'에 반하는 이들을 쳐낸 윤석열은 '당원 100% 투표' 룰을 관철시켰고, 기어이 김기현을 당대표에 올린다. 당시 전당대회에 참석한 윤석열은 허공에 어퍼컷을 크게 날렸다. '손바닥 왕'의 대관식이 비로소 완성됐다.
그 사이 윤석열의 지지율은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한국 갤럽 기준 임기 초반을 제외하고 2022년 6월 셋째주 이후 단 한번도 자신의 득표율(48.6%)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기현 당대표 출범 이후에는 20%대와 30%대를 넘나들며 쪼그라든 지지율이 고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전광판을 무시했다.
득의양양한 윤석열은 2023년 10월 재보선에 '윤심 후보'를 하달했다. 강서구청장을 지내다 공무상비밀누설죄 유죄 확정으로 직을 상실한 김태우를 다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내보내는 괴상한 아이디어였다. 결과는 17%포인트 차이 대패. 별것도 아닌 재보선을 정권 심판 선거로 끌어올렸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를 윤석열과 '윤심 당 지도부'만 몰랐다. '윤심 후보'는 그렇게 해프닝으로 사라졌지만, 윤석열은 반성하긴커녕 오히려 폭주하기 시작했다.
'윤심'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김건희가 디자인한 'BUSAN IS READY' 키링을 들고 재벌 총수들을 대동한 채 세계를 누비던 윤석열은 엑스포 표결에서도 '윤심'을 믿고 있었다. 파리 폭탄주 투혼에도 불구하고 2023년 11월 말 2030년 엑스포 개최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됐다. 스코어는 119대 29. 처참했다. 마치 다 따라잡은 것처럼 설레발 치던 윤석열과 그의 정부 수하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무렵 국내에선 집권 여당의 '윤심 놀음'이 한창이었다. 강서구청장 재보선 패배 후 '윤심 대표'였던 김기현에게서 '윤심'이 떠나갔다. 자신의 무능함을 부하(당대표는 부하나 다름없었다)의 무능함으로 돌렸다. 그리고 다음 '윤심'이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황태자' 한동훈이 등장했다. 그는 정치 데뷔 무대에서 서태지의 노래 '환상 속의 그대'를 인용했다.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023년 12월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그렇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새로운 윤심은 한동훈인듯 싶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윤심이 환상임을 깨달은 한동훈은 '손바닥 왕'의 명을 거역하고 '하트 여왕'의 뜻을 꺾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현실을 깨닫는 대신 '분노'로 응수했다. 세상 인기 없는 대통령은 '윤심 공천'을 밀어붙였고, 당은 맥없이 굴복했다. 총선 결과 여당은 108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개헌선을 간신히 지켰다. '야당의 국무위원 탄핵 남발' 환경이 조성됐다. 원인은 윤석열 그 자신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스스로 잘못한 것은 없는 지 돌아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놀라운 건 윤석열이 반성과 성찰 대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부정선거론의 망상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급기야 비상계엄을 선포해 '윤심'을 전 국토에 관철하려 시도했다. 국회 대체 기구를 만들려고 했고, 정치인을 수거할 계획을 세웠다. 군대를 동원해 영구 집권을 꿈꿨다. 그러다 국회에서 탄핵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 '윤심'은 이제 심연이 됐다.
끝까지 5대3 기각을 예상했다는 윤석열은 '전원일치 탄핵 인용' 소식을 "듣자마자 둔기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얼핏 바로 생각나는 게 국가와 국민이라고 그러셨고 이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들이 들기 시작했다"(윤상현의 전언)고 했다. 그 국가와 국민이 윤석열을 탄핵한 주체다. 얼핏 생각난 건 아마 광장에서 윤석열과 망상을 공유하던 전광훈 씨와, 그가 이끄는 시위대였을 것이다. 그들은 '윤심'의 마지막 남은 추종자다.
'윤심'은 이제 열화되어 컬트가 되고 있다. '호러 영화 등급표' 밈처럼 '윤심 등급표'가 있다면 지금 상태는 아마 심연의 단계로 매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윤심'을 관철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대선에 출마한 김문수는 "우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 잘 받으셔서 자유의 몸이 되시고, 국민과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는 시절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덕수는 '윤심'을 업고, 윤석열의 40년 지기로 내란 가담 의혹을 받는 이완규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 여권 지지율 1, 2위라는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은 여전히 '윤심'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냉혹할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윤석열 형사재판이 진행될 것이고, 그가 '헛소리'를 늘어 놓을 때마다 뚝뚝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쯤 되면 '윤심' 반대로만 하면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만도 한데, 국민의힘은 아직도 윤심의 심연에서 헤매고 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정당은 죽은 정당이다. 죽은 정당의 대선 후보가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는가. 심연보다 더 깊은 곳의 '윤심'을 길어내려 애쓰는 사람들을 우린 계속 강제 시청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국민의힘은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윤석열 때문에 완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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