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에서 배부하는 강사 유의사항에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성소수자·인종·인권감수성 등 인권 관련 의제들에 대한 발언을 삼가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혐오표현을 막기 위한 취지라도 인권 관련 발언 자체를 막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교육청 측은 문제를 인지하고 산하기관에 문구 수정을 요구했으나, 일부 기관들에서는 여전히 기존 문서를 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일부 서울시교육청 산하기관들은 교원 및 교육공무원연수 강사들에게 "강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발언,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민감한 내용은 농담이라도 삼가달라"는 내용이 담긴 '강사 유의사항 확인서'를 서약·제출하게 했다.
서울시교육청 명의로 배부된 이 문서에는 성차별, 성소수자, 종교, 인종, 인권감수성 등 주제가 삼가야 할 발언(내용)으로 명시돼있다. 강사들에게 인권과 관련 언급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요청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계와 학계에서는 인권 관련 발언 자체를 막는 형식의 주의사항은 어떤 취지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강사에게 수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수업에서 차별적 요소를 없애라는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을 넘어 (인권 관련) 언급 자체를 말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산하기관인 서울학부모지원센터에서 강의 요청과 함께 해당 문서를 받았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도 <프레시안>에 "인권, 다양성, 평등과 관련한 주제로 강의하고 있어 유의사항에 적힌 예시들을 다룰 수밖에 없다"며 "문구를 수정한 서류로 다시 보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고쳐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와 김 소장은 이러한 유의사항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 홍 교수는 "(강의에서) 민감한 문제 자체를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로 이해된다"고 했으며, 김 소장도 "민원이 접수될 만한 내용을 하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2023년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며 김 소장의 서울학부모지원센터 강의 섭외를 취소하라는 민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교육청 담당자는 "귀하께서 건의하신 일부 강사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했기에 귀하의 의견을 반영해 해당 강사는 교체할 예정"이라고 답했으며, 김 소장은 결국 교체됐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유의사항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인지해 수정 후 재배포했다는 입장이다. 해당 문서를 관리하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관계자는 <프레시안>에 "주요 민원사항을 사전에 안내하는 차원에서 2021년부터 강사 유의사항 확인서를 배포해 왔다"며 "본청 인권센터를 비롯해 해당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들이 나와 각 교육청 기관에 수정본을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지난 1월 6일 교육연수원이 각 기관에 보낸 공문에는 문제가 된 유의사항의 예시가 "성차별, 사회적 소수자, 종교, 인종 등과 관련한 차별적 발언 등"으로 돼 있다.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로 바꿨으며, 제지 대상을 '차별적 발언'으로 한정해 오해의 소지를 줄인 셈이다.
교육연수원이 공문을 보냈음에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일부 기관들이 수정 전 유의사항 안내문을 배부하는 데 대해 교육연수원은 "올해 처음 바뀌는 내용인 만큼 (강사 섭외) 담당자가 실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수원에서 좀 더 안내를 하겠다"며 시정 조치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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