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의 밤,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는 상관의 명령이었다.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명령은 중장(별 3개)에서 준장(별 1개)으로, 다시 중령(대나무잎 2개)에게 하달됐다. 그러나 중령은 '국회의사당 주인은 의원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부하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지 않았다. '항명죄'를 각오하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김형기 특전사 제1특전대대장(중령)은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죄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상현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준장)이 "'(국회) 담 넘어가라', '의원들 끌어내라'(라고 했다)"며 "그때 제가 전화 끊고 '국회의사당 주인은 의원들인데 무슨 X소리냐'라고 혼자 욕하는 걸 부하들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대장은 "이때부터 이상함을 감지했다"면서 "이 지시가 정당한 지시인가 옳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정확한 임무를 주면 특전사 요원들은 했다. 문을 부수고 의원을 끌어냈다(끌어냈을 것이다). 그럼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계엄) 며칠 전 군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항명죄로 3년을 구형한 것이 떠올랐다"며 "이걸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어서 부하들에게 임무를 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해병대 박정훈 대령은 지난 2023년 7월 폭우로 실종된 민간인 수색 작전 중 사망한 '채상병 사건' 수사단장으로,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어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군검찰은 박 대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3년을 구형했으나 군사법원은 지난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 대령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이첩 보류 명령은 정당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판시했다. 즉,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김 대대장은 경찰의 협조로 국회 담장을 넘어 본청으로 진입해 시민들과 대치했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제일 먼저 담을 넘었는데, 시민들이 (군인들을) 구타하고 발로 차"는 등 저항했다며 "'강행 돌파' 지시를 받고 본청에 갔"지만 "시민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인데 왜 우리를 때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병력들이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으니까 젊은 친구들이 눈동자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고 했다.
김 대대장은 그럼에도 '문 부수고서 (의원들) 끄집어내', '전기 끊을 수 없느냐' 등 이 여단장을 통한 윤 전 대통령의 지시가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지시를 이행)할 수 없었다. 정당한 지시인지, 부당한 지시인지도 몰랐고 병력들이 더 걱정됐다"며 "'전기 끊어라'라는 지시는 누가 했는지 모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대대장은 여러 차례 부대원들을 감쌌다. 그는 "일부 부대원들이 군 생활에 회의감이 든다고 한다. 주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다고 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담을 받기도 한다"며 "정치적으로 이용 당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투입됐다"고 우려했다.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하라'며 발언 기회를 주자, 김 대대장은 "저는 (제 병력들에게) 단 하나의 지시만 했다. '물러서라. 참아라. 때리지 마라'라는 지시를 병력들이 잘 이행했다"고 밝혔다.
앞서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요지에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김 대대장이 제출한 이 여단장과의 통화 내용을 재생하려고 했으나 윤 전 대통령 측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파일에는 이 여단장이 전한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인 "대통령님이 문 부숴서라도 (의원들) 끄집어내오래"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단장은 지난 2월 국회에서 "(4일) 0시 50분에서 1시 사이에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중장)으로부터) 보안폰으로 전화가 왔다"며 "'대통령님께서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말씀하셨다. 전기라도 필요하면 끊어라' 이렇게 지시받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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