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새빨간 거짓말."
'피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첫 형사재판에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정치인 체포 명단'의 존재를 강하게 부인하는 등 93분에 걸쳐 직접 '셀프 변론'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은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홍 전 1차장에게 '누구를 체포하라' 또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통해 누구를 체포하라'고 얘기했다는 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모두진술을 포함해 93분여간 직접 변론을 펼친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과정 때와 마찬가지로 홍 전 1차장 쪽지의 증거능력을 흠집 내는 데 주력했다. 윤 전 대통령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먼저 전화한 것도 아니고 홍 전 1차장이 먼저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했고 "(여 전 사령관이 상황에 대해) 대답 안 하니 (홍 전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에게) '통이 도와주라고 했어' 하니까 여 전 사령관이 '주요 인사 위치 파악이, 경찰에 부탁하니 안 되던데 국정원은 가능하냐'(고) 한 것(물은 것)"이라며 "마치 제가 이걸 누구누구 체포 지시한 것처럼 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헌재에서도 "여 전 사령관이 경찰에다가 물어보니 경찰이 어렵다고 해, 국정원은 미행이라도 하고 하니 위치 확인하는 데 좀 도움이 될까 해서 한 얘기를 이렇게 엮어가지고 '대통령의 체포 지시'로 만들어냈다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홍장원 쪽지'와 더불어 내란 혐의 입증의 핵심 진술로 꼽히는 '비상입법기구 예산 마련' 지시 논란과 관련해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같은, 국보위 검토하는 걸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군과 경찰의 국회 봉쇄 시도로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기 위해 국회 담장을 넘어간 일을 두고는 "(검찰 공소장) 72페이지에 '봉쇄'라는 말 나오는데 봉쇄(는) 주로 군에서 쓰는데 어느 거점을 장악해서 질서 유지하고 출입자를 통제하는 그런 질서와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지 완전 차단하는 것 아니"라며 당시에 투입된 군경 병력상 "국회를 차단하고 봉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국회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 다 들어갔고, 엄연히 들어갈 수 있는데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부러 사진 찍으면서 담을 넘는 쇼"를 했다고 폄하하며 "(사진에) 다 찍혔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일체의 정치 활동 등을 금지한 계엄 포고령에 대해 "어떤 현실적인 실행 조치가 아니라 하나의 규범"이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그는 "헌법에 저촉되면 그 자체로 효력이 없어, 포고령에 상위 법규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으면 저희가 사전에 법률 검토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은 있지만 이건 규범이기 때문에 계엄 포고령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며 "(규범이기 때문에) 여기에 따라서 처벌·제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증인들, "'의원 끌어내라' 지시받았다"…尹 "검찰 공소장 난삽"
이날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 모두 직속 상관에게 "국회의원 끌어내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자 증인 신문 중간중간 딴지를 걸어 판사로부터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조 단장은 검찰이 '(12월 4일) 0시 31분부터 1시 사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라는 지시를 받은 게 맞느냐'고 질문하자 "그렇다"며 "(이 전 사령관이) 임무를 줬고, 다 '알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은 "(검사가 한 질문) 헌재에서 다 했는데"라며 검찰의 증인 신문 도중 끼어들었다. 그는 "반대 신문을 제가 할 건 아닌데 저 질문이 굳이 오늘 나와야 했는지 순서상 문제가 있고 이해가 안 된다"며 재판 진행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귀연 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나중에 진술 기회를 주겠다. 그때 하라"며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차단했다.
김 대대장은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장으로부터 '의원 끌어내라' 지시를 받았느냐'라는 검찰의 질문에 "맞는다"며 "(국회 경내 진입 후인) 4일 00시 38분에 '문 부숴라. 유리창 깨라'는 (추가)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검찰이 재차 '이 여단장이 '의원 다 끄집어내라. 유리창 깨고 들어가라. 문짝 부수고 들어가라. 대통령 지시다. 전기라도 끊어라'(라는 지시받고) 들어갔나'라는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은 김 대대장에 대한 검찰 측 신문 과정에서도 불쑥 "재판장님"이라며 "(군인들) 실무장을 하지 않은 채 출동시켰다. 군대가 이동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 박스에 실탄을 넣어간 것이다"이라는 등 설명을 늘어놨다. 지 판사는 "알겠다"며 "검찰의 주신문 (순서니까) 반대신문 통해서 그때그때 물어봐라", "질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맥이 끊기는 기분 들 수 있다"며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만류했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 측 증인 신문이 끝난 후에도 "(증인으로) 지휘관들이 나왔는데 대통령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된 건지, (지휘관들이) 지시한 건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오늘 했던 지휘관들은 증인으로 내세울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찰 조사 내용을) 내란 사건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내란이라면 내란에 대한 법리 사실관계에서 증거 조사를 해야 한다", "내란이 되는지(내란죄가 성립하는지) 안 되는지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가야 한다", "경찰 수사, 공수처 수사, 군사법원 막 뒤섞여 (있는 걸 가지고) 검찰은 한꺼번에 다 늘어놓고" 등 검찰을 향해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들이 퇴정한 후에도 검찰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재판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며 "(검찰의) 공소장이 난삽하고, 증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될 만한 것을 던져줘야 증거 인부를 하고 다투든가 할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진행상 문제를 거론하며 이날 조 단장과 김 대대장에 대한 반대 신문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가 증인들에게 다시 출석해 줄 것을 요청, 윤 전 대통령 측의 반대 신문은 오는 21일 진행하기로 했다.
변호사보다 말 많이 한 피고인…"尹 본인이 제일 많이 아니까 본인이 설명"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변호인단보다 10배가량 발언하며 재판을 주도하다시피 했다. 그는 모두진술을 포함해 약 93분간 발언한 반면, 변호인인 윤갑근 변호사는 약 9분간 발언하는 데 그쳤다.
윤 변호사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이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부분, 변호인단과 사전에 논의된 것인가'라고 묻자 "사전에 긴밀히 논의한 것은 없다"며 "윤 전 대통령이 제일 많이 아니까 본인이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특히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 선고를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윤 변호사는 헌재가 국회 봉쇄 등 핵심적인 탄핵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한 데 대해 "헌재가 인정을 잘못했다. 증거법을 위반했다"며 "형사재판에서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다퉈서 사실이 아닌 것을 입증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취재진의 '헌재의 파면 결정이 잘못됐다는 건가'라는 물음에, 윤 변호사는 "헌재는 단심이기 때문에 법률상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도 "형사 사건은 1심이 2심에서 2심이 대법원에서 법복될 수도 있다. 많은 사건이 재심을 통해 법복되는 경우도 봤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이 반드시 진리고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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