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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백수’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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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백수’로 살고 싶다

퇴직할 때는 꿈도 많았다. 아내와 세계 여행도 하고, 계절 따라 아름다운 우리나라 구석구석 유람도 하고 싶었다. 글자 그대로 ‘하얀 손(백수 :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아직도 손에 분필 가루를 묻히고 있다.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국어 교수 1세대인 관계로 부르는 곳이 많다. 여기저기 강의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1주일에 7편, 그리고 월간지, 계간지, 소년잡지, 회사의 월보 등 여러 곳에 원고를 보내야 하고, 새벽이면 오래 된(?) 세대를 위해 ‘한국어교실’ 문자도 발송하고, 매주 방송하는 동영상도 여러 편 촬영해야 한다. 그러니 쉴 시간이 별로 없다. 가끔 여기저기서 특강 요청도 들어오고, 자원봉사로 하는 한국어(한문) 교육도 해야 한다. 때로는 번역에 관한 세미나도 2주에 한 번 정도 참석해서 강의하니 정말로 삶에 쉼표가 없다.

오늘은 백수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쉬고 싶은 백수 이야기였지만, 이제부터는 백수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관계에 있는 다양한 어휘들을 살펴 볼 것이다. 동음이의어란 ‘같은 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뜻’이라는 말이다. 한편 다의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단어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들면

여보, 여기 손 좀 빌려 줘.(도움)

우리 엄마는 손이 정말 커.(통, 마음, 씀씀이)

등과 같은 것이고, 동음이의어라는 것은 같은 글자이면서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을 말한다. 우선 오늘의 주제인 백수에 관해 살펴 보기로 하자.

백수(白壽) : 아흔아홉 살을 달리 이르는 말

백수(百獸) : 온갖 짐승

백수(白水) : 맑은 물, 쌀을 씨소 난 후 남은 뿌연 물, 맑은 마음

백수(白首) : 허옇게 센 머리

백수(伯嫂) : 큰형님의 아내, 곧 큰형수

백수(白叟) :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

백수(白袖) : 손을 덮기 위해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소매를 흰 헝겊으로 길게 덧대는 소매

백수(白鬚) : 허옇게 센 수염

등과 같이 다양한 동음이의어들이 있다. 아흔아홉 살을 이르는 백수(白壽)는 지금도 많이 쓰고 있는 단어다.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라고 할 때도 ‘백수’라는 단어를 쓰고 이때는 100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이라는 뜻이다. 큰형수를 이르는 ‘백수(伯嫂)’는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백형(伯兄)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또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이와 같이 ‘백수’와 관련된 단어들은 한자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쌀뜨물’도 백수라고 하고, ‘맑은 물’도 동일한 한자어를 쓴다는 것이다. 아마도 쌀뜨물은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색깔이 흰색인 것도 맞다.

젊은 시절에는 백수건달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진정한 백수로 살고 싶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모르겠다. 친구들은 바쁘게 사는 필자를 부러워하는데, 필자는 진정한 백수가 부럽다.

바쁘게 살면서 돈을 많이 벌면 연금도 깎는다고 하니 더욱 서럽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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